아침부터 남편은 신경질이다.
내가 그 신경질에 하나두 무서워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두 습관적으로 해댄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부지런히 목욕탕이며 주방이며 별 할일없이
왔다갔다 했다.
분명히 무슨 할 말이 있는데
그 할말이 시집에 관계된 일이면
먼저 남편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미 난 도가 트여 그 다음 진행사항두
머릿속에 착착 외워놓고 있지만...
쫒겨날 때 업고 온 딸이 벌써 초등학교 오학년이다.
나두 나이를 먹었지만
얘는 그런사실을 모르고 그렇게 커 버렸다.
언젠가 나에게 할머니 애기를 했는데
도무지 해 줄말이 떠오르지 않아
대충 얼버무린 친할머니의 추억이 전무한 것을
아이한테 또 다른 상처가 되지 않을까..
이런 노파심에 성질한 번 죽이고 협상아닌 타협으로
무수한 궁리를 해대곤 했었다.
어찌 한 번에 무자르듯이 간단치 않은 생각에
나두 나지만 시어머니 며느리 잘 못 만난 탓으로 돌려놓기도 했다.
큰아들에게 당연히 유산의 몫으로 따로 만들어 놓을거라며
남편의 인감을 요구했었나본데 난 그거받고 생색내는 부모의 무수한요구에
대응할 처지가 못되니 그 몫을 시동생들에게 골고루 분배시키라고 요구했다.
남편에게두 그 유산받으면 이젠 나하고 상관없이 살자고 했다.
남편은 황당했었나 보다.
다른집은 더 안주냐고 재산싸움하는라 난리인데
물려준다고 하는 재산을 도로 가져가라고 하냐?
나중에 뭐 먹고 살라고 하는 겨?
받고 싶으면 나랑 안살아도 되!
까짓거 쫒겨날 때 뭐 집어주고 챙겨 보냈남?
당신 마음에 드신 며느리 있으면
그 며느리보고 모시고 하라고 하던 제사를 모시라하던 당신마음이지?
안그려?
이렇게 난 단호하게 거절했다.
죽는 것이 더 순리였을 것이다.
성질두 죽이고 예 예하면서 주는 것 다 받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형제것 더 줬네 안 줬네도 충분히 할 수있다.
그러나 난 싫었다.
그놈의 돈 때문에 비오는 날 돌배기 딸 업혀 내보내는 시어머니의 생각이
나에게 몸서리쳐질 만큼 싫었다.
그 때 내쫒지 않고 배려를 알게 해 준 유산이었다면
내 기꺼이 받을 수도 있으련만.
이생각 저생각에 젖어 남편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 아 ! 안들리는 겨?"
" 뭐?
" 엄마가 같이 나와보래! 점심두 같이먹구?"
그러지 .. 그거야 어렵지 않지.
남편이 그런다. 옛날일은 다 잊으라고 그런다.
그런일 때문에 내 며느리가 아니라고 그런다.
어째 남편의 말이 아니다.
이미 시어머니에게 남편은 사과를 받은 것처럼 답을 내린다.
난 이제 시작일 뿐인데...
그래두 난 사과를 받고 안받고 재산은 물려받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