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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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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보는 가게(2)


BY 개망초꽃 2005-06-10

가게에 딸린 화장실은 넓은 편이다. 거기다가 겨울엔 따듯하고 여름엔 시원하다. 겨울내내 수돗물이나 변기통 물이 얼어서 내 속을 썩인적이 한번도 없는 말 잘듣는 착한 화장실이다. 볼일을 보려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아늑하다 못해 졸립다. 지지난 해 볼일을 보려고 앉았는데 눈앞 위치에 거미 한마리가 살고 있었다. 여름에는 물론 겨울에도 산다. 화장실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거미는 미리 알고 자리를 잡고 죽을때까지 떠날 생각이 없는 것이다. 몇년전부터였는지 몰라도 거미는 우리 화장실에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다. 등기도 하지 않고 전세계약서도 쓴적이 없고 월세도 내지 않았지만 난 그 거미에게 주인으로 등기를 해 주기로 했다. 급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난 매일 거미를 살피며 볼일을 보곤했다. 그러니까 지난 겨울, 내가 보기엔 거미가 힘이 없어보였다. 겨울잠을 자는 건가해서 거미줄을 건드려 보았더니 얼마나 빠르게 위로 올라가던지 줄타기 선수였다. 잠을 자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래, 겨울이라 날파리도 없고 모기도 얼씬 하지 않으니 굶주려서 그런가 보다. 가게로 들어와 곤충을 생포하기로 했다. 설거지 물이 흘러 들어가는 곳을 살펴보니 날파리들이 몇 마리 놀고 있었다. 잡았다. 산채로. 들고 뛰어갔다. 거미줄에 날파리를 매달아 주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볼일을 보듯 앉았다. 거미는 한참을 꼼짝 안하다가 먹을걸 두고 가만이 있을 리가 없다는 표정으로 날파리에게 다가와 사정없이 둘둘둘 말아버렸다. 난 기분이 좋았다. 올 해도 거미 너는 화장실을 지키는 주인인 걸 내 인정하마. 화장실 변기는 좌변식이 아니고 쪼그리고 앉는 쪼변식이다. 그리고 제일 문제가 큰 건 화장실 물이 안 내려 간다는 것이다. 물론 고치려고 했다. 근데 잘 내려가는 계곡처럼 만드려면 화장실을 다 뜯어 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화장실 안에 딸린 수도꼭지에 호스를 길게 늘어뜨리고 볼일 본 건 내 손으로 물을 뿌려 없애 뜨려야했다. 그래도 난 화장실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힘들어 눈물이 나오면 화장실로 달려와 눈물을 흘려내고 코를 풀고 마음을 진정시키던 나만의 공간이었기에 안 볼 거 다 보여준 화장실이 편하다.

오전에 한번 화장실에 다녀왔다. 혼자 가게를 보기 때문엔 화장실을 가려면 빠르게 볼일을 보고 빠르게 옷을 추스려야 했다. 그래서 거미를 확인하지 못했다. 핑계라 해도 어쩔수 없다. 오늘 뿐만아니고 한달동안 거미를 찾아볼 여유가 전혀 생기질 않았다. 핑계라해도 할말은 없다.


가게안에서 혼자 밥을 먹으면 밥 맛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밥 맛이 거짓말 많이 보태서 모래씹는 것 같다. 그래도 노점을 펼쳐 놓고 길거리에서 먹는 밥은 아니니 다행이다. 반찬은 집에서 가지고 오고 밥은 가게에서 한다. 커피물을 올린다. 쌀도 물도 커피도 뭐든지 일인분이다. 경비가 반으로 줄었다. 무엇보다도 부담이 줄어든 건 월급이 안 나간다는 것이다.그러나 6월달부터 배송비가 오십만원이 가산된다고 물건을 대주는 곳에서 전화가 왔다. 자기네들도 인건비와 기름값 때문에 어쩔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나보고 직접 물건을 가지러 오면 배송비는 빼주겠다고 했다. 근데 혼자 가게를 열고 닫는 내가 가지고 갈 여력이 없다. 속성으로 운전을 배운다고 하자 그럼 차를 한 대 사야하는데, 그것도 물건을 실을 수 있는 승합차는 사야하는데 앞뒤를 아무리 따져 봐도 더 이상의 방법이 찾아지질 안았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동안 손님은 없다. 편하게 먹으라고 배려해 주는가 보다.

“언니? 남자직원 뽑아서 물건 가지고 오라하면 어떨까? 그러게 차를 사야하네, 유지비 빼면 밑지겠다. 차라리 가게 내 놓고 마트에서 일하는 게 낫겠어. 마트에 다니는 언니 친구가 알바자리 알아 봐 준다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게 낫겠다.”


종일 앉아 있음 기분이 가라앉는다. 밖에 나가서 맞은편 아파트 담장을 본다. 넝쿨장미가 한창이다. 흰색 빨간색이 섞어 있어서 화려하면서도 변화가 있어 보기가 한결 좋다. 벌써 여름이구나. 작년 여름부터 매출이 줄어들기 시작했지. 저렴하게 물건을 대주던 곳도 부도를 맞아 두달전부터 물건이 끊겨서 비싼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른곳에서 물건을 받아야했다. 그러더니 6월달부터는 배송비를 따로 받아야한다니...저리도 장미는 처녀 유방처럼 부풀어 오르는데, 혼자서 한달동안 많은 고민속에 있었어도 대책은 가게를 내 놓는 수 밖에 없었다. 가까운 부동산에 내 놓았다. 인터넷에도 쫘악 깔았다고 부동산 아줌마가 얘기해 주었다. 그래도 보러오는 사람이 없었다. 급기야 벼룩신문에 이주일동안 광고를 하기로 했다. 한줄 간단하게 들어가는 것 보다는 박스에 넣으라고 일러주었다. 사방 2.5센티 사각형에 광고문구를 넣는 걸 박스라고 했다. 인쇄된 걸 보니 꼭 깍두기만 했다. 단 한사람 가게를 보러온 게 깍두기 박스의 효과라면 효과였다. 부동산에서 권리금은커녕 시설비도 못 건진다고 했다. 보증금만 빼는 게 빠르고 손해를 덜 본다고 했다. 어치피 가게 계약은 올 12월까지니까 그때까지 가게가 안나가면 월세를 내가 다 물어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