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어렸을 적 엄마가 밥상에 수저를 놓으라고 하면 차라리 아버지를 따라 논에 가서 일을 하겠다고 하였다.
땡볕에서 땀 뻘뻘 흘리는 것이 부엌에서 수저 놓는 것보다 차라리 나았다.
학교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아오라는 숙제을 받은 아들이 물었다.
'엄마는 무슨 음식을 제일 좋아해?...'
'난 내가 만들지 않은 음식이 제일 좋아...'
이런 나는 외식을 좋아한다.
미국에 살다 한국에 들어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던 때 아이들에게 날마다 햄버거와 피자를 사주었다.
한국에 가면 비싸서 사먹기 힘드니까 질리도록 먹자가 핑계였다.
아이들이 사정했다.
'엄마, 집에서 밥 좀 먹자...'
그 말에 정신이 들었다.
햄버거와 피자가 건강에 좋은 음식이 아니었기에 더욱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부자는 아니라도 외식하고 싶은 때 돈 계산을 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은 형편이 되었다.
그런데 돈이 있어도 갈 곳이 없을 때가 많았다.
지나치게 기름지고, 달고, 조미료냄새가 물씬 풍기고, 영양의 균형과는 거리가 멀고...
남편은 주미대사관에서 근무를 했다.
처음 근무하러 왔을 때 공사 부인이 다른 여자에게 나에 대해 물었단다.
어디 여자래...
전주여자랍니다...
그래? 그럼, 일 좀 시켜야겠군...
전주여자라면 음식솜씨가 당연히 좋을테니 손님 치를 때 도움이 될거란 말이었다.
난 그리 애향심이 강한 사람은 아니다.
지역감정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에 걸쳐 쌓여진 전주여자의 명성이 나로 인해 무너질 것 같아 미안했다.
아무도 몰래 집에서 연습을 했다.
전주여자의 명성에 먹칠을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공사부인은 아들이 셋인데 며느리 중의 하나는 꼭 전주여자를 골라야겠다고 하였으니까...
이런 저런 이유로 내가 식당를 하겠다고 하였을 때, 모두들 날더러 무모한 짓이라고 하였다.
경험도 없는 사람이 식당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건강에 좋은 음식을 팔겠다고 하는 것도, 한국음식을 미국사람을 상대로 팔겠다고 하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하였다.
남편은 밤에 잠도 안자고 한숨을 쉬고 말마다 빈정거리고 화를 냈다.
말대로 이혼을 하였으면 수 십 번 했을 것이다.
청개구리 기질이 강한 나는 남들이 모두 하는 일은 하고 싶지가 않다.
모두들 말리고 하지 말라는 일은 더욱 하고 싶어진다.
쉽다고 하는 일은 흥미가 없다.
모두들 혀를 내두를만큼 어렵다고 하는 일이어야 비로소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제 나이도 모르고, 능력도 모르고, 설치는 것 같아 가끔은 이런 내가 스스로도 우습다.
드물긴 하지만 정말로 가끔, 이런 내가 사고를 낼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런 내가 좋다.
사는 것이 신나고 아침마다 눈을 뜨면 그날이 기대와 설렘으로 다가와 좋다.
기왕에 하는 일이면 잘하고 싶다.
식당하나 성공시키는 일이 내 목표는 아니다.
맥도널드 만큼은 아니라도 피자헛 정도는 체인점 숫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메뉴도, 컴퓨터 시스템도, 종업원 훈련도 체인점을 예상하고 준비 중이다.
난 잘 난 체하는 일에 망설임이 없는 사람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이미 부우자가 될거라고 큰소리를 쳤다.
언니에겐 포르쉐라는 차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자동차에 대해 잘 모르는 나도 그게 비싼차라는 것은 안다.
이제 그 식당을 오픈하는 날이 멀지 않았다.
모든 검사를 통과했으니 아마도 열흘 쯤 후가 되지 않을까...
그런데 가슴이 두근거린다.
백미터 달리가 출발선에 섰을 때처럼 가슴이 뻐근하다.
제대로 출발할 수 있을까...
가다 넘어지지나 않을까...
정말 일등할 수 있을까...
흰선에 가슴을 제일 먼저 갖다 대고 결승선에서 환호하는 기쁨이 정말 내것이 될 것인가...
남편이 오늘 말했다.
자기 인생에서 잘한 짓이 하나 밖에 없는데 나랑 결혼한 것이란다.
물론 우스개 소리다.
하지만 언젠가 그 말이 진심에서 우러난 소리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