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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용돈을 주지 않았다며 서운함을 토로한 A씨의 사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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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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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터의 풍경


BY 온 미 2005-05-18

낚시터 입구에 차를 대고 장비를 풀었다.

 

마을  가운데  커다란 나무와 정자가 있어 정겹기만 하다.

남편은 서둘러 낚시대를 들고 저수지로 내려가고 나는 밥을 짓는다.

아까 서해안에 들러 사온 조개에 된장을 풀고 미리 준비해온 감자와

양파,마늘을 넣고 끓이니 제법 구수하다.

 

상추를 떠온 물에 두어번 씻어도 아무렇지 않은게 이상하다.

후라이 팬에 구어지는 구수한 삼겹살 냄새가 밭에서 일하시는

마을 사람들에게 적잖이 미안하다.

 

남편을 부르러 물가에 가니  갈대 숲에 커다란 새가 목을 쭈욱 빼고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다.

무슨 새일까 몹시 궁금하지만 물어볼 데가 있어야 말이지..

아! 그런데 또 한마리가 조금 떨어진 곳에 둥지를 틀고 앉아있다.

 아마도 암놈이겠거니 생각이 든다.

 

자연의 소리가 사방 지천에서 넘치고 넘친다.

숲은 이미 커다란 축제와 향연이 무르익고 있었다.

둑에 앉아 도대체 몇 종류들이 이렇게 수선스런 축제에 동참하고 있을까

헤아려 보았다.

 

개구리의 합창은 지겨울 정도로 끝이 없다.

자연의 연작인 셈일 것이다.

냇물에 까맣게 몰려있는 올챙이 떼들을 보고 경악했다.

마치 생물 시간에 도감으로 본 정자들 같은게 정말 묘한 생각이 든다.

알에서 깨어난 올챙이들이 또 하나의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니...

정말 무수히 많은 올챙이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그들의 기나긴 호소와 악다구니와 쾌성들이 나를 전률케 한다.

 

자바라 물통을 들고 마을로 향했다.

이젠 이 깊은 산골 마을에도 타이탄 트럭이나 봉고 그리고 트렉터는

그리 귀하고 신기한 물건들이 아니다.

집 앞에 거의가 최소 경운기 한대 정도는 소유하고 있는게 보인다.

그런데 집 안에 인기척이 없다.

다들 어디 가셨나...밭에 나가셨나 보다.

마을회관 인듯한  제법 번듯한 건물 마당에 수도 꼭지가 보였다.

물기가 전혀 보이지  않아 이게 나올까 돌려 보았더니

콸콸 물이 쏟아진다.

물통을 가득 채우고 일어서 안의 동정을 살피니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정말 모두 밭에 나간 것일까..

 

저녁 때가 되었다.

여덟시가 되도록 날은 어두어 지지 않고

마을 사람들은 경운기나 오토바이를 타고 속속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평균 연령이 육 칠십세 정도의 노인 부부들이

대개는 할아버지가 경운기나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뒤에는 수건과  모자를 넓게 쓴

할머니들이 타고 있었다.

옛날엔 세월아 가거라 하고 걸어서 밭이며 논에 다니셨을 터인데 이젠 오토바이나

경운기를 타고 다닌다.

남은 된장찌개에 저녁을 떼우면서 그들은 저녁을 어떻게 해결할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우리처럼 지져놓은 된장이나 묵은 김치에 고등어를 넣고 졸인 찌개로

대충 떼우고 일찍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으리라.

 

이제 부터 그들의 향연이 관객없이 낮 부터 이어져 왔지만 밤으로 부터

초대를 받아 제법 크고 웅장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아까 낮엔 리허설이 었고 밤엔 정식  공연이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일정하지 않으면서 일정한것 처럼 들리는게 그들 만의 기법인것 같다.

우리는 대지에서 그들의 연주를 꼼짝없이 들어야만 했다.

나는 남편에게 한개의 낚시대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자기 것보다 좀 작은 낚시대를 만들어 주고 잘 해보라고 한다.

물은 어둠에 잠식해 들어가고 형광찌만 한점으로 보인다.

그들의 웅장한 연주와 한점의 형광점이 전부인 초 여름의 밤..

우리는 그렇게 내내 앉아 있었다.

 

아침은 서둘러 우리를 깨운다.

하얀 안개로 저수지며 마을이 가려져 보이지 않고

그들의 축제도 이제 한물 간듯 시들해 들린다.

만취한 개구리들과 새들 그리고 곤충들이 늦도록 아침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남편은 언제 일어났는지 낚시터에 가고 나는 아침밥을 짓는다.

어제 해놓은 식은 밥을 김치를 넣은 된장찌개에 넣어 해장국밥을  만들 참이다.

마을 사람들은 서둘러 오토바이나 경운기를 타고

또 다시 어제처럼 일을 나간다.

이른 아침부터 건너편 포도 밭에서 열심히 일을 시작하신 할아버지가 가끔 내 쪽을

바라본다.

지금보다 옛날엔 저들의 집에 아들과 며느리들이 있었을 거였다.

그리하여 저녁엔 가마솥에 밥을 지어 손주들과 오손 도손 밥을 먹었을 것이었고

새참 때가 되면 며느리 들이 먹을 것을 만들어 걸죽한 막걸리에  맛깔스런 김치를 담가

광주리에 이고 그들을 찾았을 것을..

그들의 자식들은 지금은 모두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노후는 논과 밭에서 그들 스스로 이루어 져야만 하는 거였다.

그립고 쓸쓸한건 이루 말할 수 없는 거고 웬지 자꾸 야속한 생각만 드는게

그래서 그런 것들을 잊으려 일에 몸을 맡기는 것일 지도 몰랐다.

철철이 나오는 곡식이며 채소나 과일을 잘 보관해 두었다가

그나마 기운 있을 때 바리바리 이고 지고 갖다 주기도 하고

자식들이 가끔 오는 차편에 실어 떠나 보내면 서운하면서도 든든한게

자신들의 배가 불러오는 것 같았을 거였다.

농촌의 저항은 젊은 사람들의 전유물이었을까.

그들은 그 곳에 갇혀 있기를 원하지 않았다.

단절된 사고와 보수성에 저항하면서 탈출을 시도했음은 물론이며 과감한 의식을

표출했다.

이제 농촌엔 젊은 사람들이 없다.

늙고 힘없는 그들의 부모들만 지키고 있을 뿐이다.

농촌은 이렇게 낚시군들이 찾아와 온갖 패트병과 라면봉지와 낚시 떡밥 빈 봉지로

더럽혀 지는걸 그저 바라만 보는 그들의 구도로 변해버린 것일까.

나는 안개가 걷히고 해가 서서히 번져오는 마을언덕을 바라보며 생각해 보았다.

 

정말 지지리도 복도 없지..

피래미들만 건져지는게 영 알 수 없단 표정으로

낚시대를 챙기는 남편을 나는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래도 제일 큰 붕어는 내가 잡았는데..

남편은 여나믄 마리의 물고기들을  배를 따고 손질해서 빈 떡밥 봉투에 담아가지고

올라왔다.

"에그..놓아주지 않고서..쯧!"

 

차속과 주변 정리를 하고 시동을 켜니 겔겔 거리고 꿈쩍을 않는다.

"밧데리가 나간 모양이네"

햐! 이런 시골에서 우짜면 좋노..

마을에서 할아버지 한분이 트럭을 몰고 내려 오시고 시동켜고 연결하여 기다리고

그래도 시동 안걸려 또 뭐가 나갔나 보네..걱정하다가 화재보험에 연락해서

기사 부탁해놓고 언제쯤올까 꽤 오랫 동안 기다릴거 각오하며 잠 한숨 때리자고

시트 젖혀 놓고 등을 뉘이니  입구에 소나타 한대가 느기적 거리며 낚시터로 닥아오고

있었다.

 소도 때려 잡을 만큼 힘이 좋아 보이는 젊은 남자가 아이들을 잔뜩 태우고 입구에 차를 대었다.

물론 기사가 오기로 되어있지만 시간이 좀 걸릴 거고 해서 밑져야 본전인 셈 치고 한번 이 사건을 의뢰해 보는게 어떻겠느냐고 남편에게 의견을 제시했더니 헛짓일 거란 거동으로 느릿하게 차문을 열고 나간다.

진짜 소도 때려 잡을 것처럼 건장하게 생긴 남자가 차를 갖고 나타났다.

그는 뒷 트렁크에서 밧데리 연결선을 꺼냈다.

아까 할아버지 연결선과는 비교가 안되게 아주 크고 새거였다.

차는 이내 시동이 걸리고 남편은 기사 취소하는 전화 하느라고 바쁘고 나는 아이들에게 줄 빵과 참외 술 한병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불러 과일칼 까지 챙겨 먹으라고 주었다.

남자는 뭘 이런걸 주셨느냐고 고마워 한다.

자기도 얼마전 만해도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귀향했는데 사업하면서 중고차를 자주 사다 보니까 자동차에 대한 식견이 어느정도 생기드라고 얘기했다.

아닌게 아니라 그의 차는 상당히 낡아있었지만 그의 소견으로 잘 굴러가리란 생각이 든다.

 

남자가  아이들과  얽혀 낚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뒤로 한채 우리는 그곳을 떠났다.

마을 어귀엔 꼬쟁이 막대를 잔뜩 실은 경운기가 우리 차를 앞질러 가고 있었다.

어르신께서 늦잠을 주무셨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