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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은 놀아도 논두렁에서 놀아야...


BY 낸시 2005-05-17


아버지는 평생 가난한 농사꾼이었다.

가난한 농사꾼 아버지를 떠올리면 내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고 가슴이 뿌듯해진다.

 

아버지는 새벽잠이 없었다.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무엇인가를 읽거나 일기수첩을 꺼내놓고 무엇인가를 적고 있었다.

내 어린시절도 가난했는데 아버지의 어린시절에 비하면 부자라고 하였다.

열 살 무렵부터 산에 올라 나물을 뜯어다 팔아 식구들이 먹을 양식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렇게 바꾸어 온 잡곡에 나물을 넣어 죽을 끓여 멀건 죽을 한사발씩 끼니대신 먹곤했는데 노냥 배가 고팠다고...

열대여섯에 할아버지가 소작논을 얻어 주었는데 식구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기쁨에  농사짓는 것이 즐겁기만 하였다고 한다.

일이 하고 싶어 날이 밝기도 전에 눈을 뜨고 앉아 날이 왜 이리 더디 새나...하고 기다렸단다.

그것이 평생 습관으로 굳어졌다고...

 

농촌지도요원은 아버지랑 친했다.

새로운 품종의 벼가 나오면 아버지는 누구보다 먼저 심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다수확농민상, 증산왕...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면서 상도 많이 받았다.

감나무 접붙이는 것도 잘해서 우리집엔 누구네 집보다 여러종류 감나무들이 많았다.

산에는 접붙인 밤나무도 많았다.

수박이랑 참외 농사도 짓고, 오이랑 가지도 많이 심어 시장에 내다 팔았다.

가난한 농사꾼 자식인 우리 형제는 부지런하고 재주 많은 아버지 덕에 누구보다 풍요로운 어린시절을 보냈다.

집 주변을 한바퀴 돌거나 원두막이나 텃밭을 돌아다니면 싱싱한 먹거리들이 지천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농사꾼임을 부끄러워하지도 한탄하지도 않았다.

"농사꾼이 참 좋다. 누가 뭐라는 놈도 없고...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놀고 싶으면 놀고..."

하지만 농사일에 최선을 다했다.

품삯을 받고 남의 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농사꾼은 놀아도 자기 논두렁에서 놀아야 한다. 그래야 병충해도 일찍 발견해서 조치를 취할 수가 있는 법이지... 괜히 품삯 한 두 푼 벌겠다는 욕심에 남의 일 다니며 내 논에 소홀하면 오히려 손해가 큰 법이지... 할 일 없이 어슬렁 거리는 것 같아도 그저 내 논두렁을 어슬렁 거리다 보면 얻는 게 많은 법이야..."

부동산 붐이 아무리 일어도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땅을 팔아 은행에 넣어놓고 은행 이자만 받아도 땀 흘려 일하는 것보다 소득이 높다는 계산이 나왔지만 그 계산에 혹하지 않았다.

이유를 묻는 내게 말했다.

"나는 평생 농사꾼으로 살았다.

내가 이 일을 그만 두면 이제 무엇을 하겠냐? 그리고 세상 사람 모두 돈만 쫓아 산다면 누가 농사를 짓고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산단 말이냐... 난 농사꾼이다. 그러니 부동산 값이 아무리 올라도 땅을 팔아 놀고 먹고 사는 것은 온당치 않다."

 

나는 나이 오십이 넘어 음식점을 열고 싶어 한다.

내 아버지처럼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고 싶다.

작은 일 일지라도 항상 연구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고 싶다.

아버지가 상을 받았던 것처럼 남보다 뛰어난  장사꾼이고 싶다.

장사꾼은 돈 버는 것이 목적이라니까 돈도 많이 벌고 싶다.

아버지가 우리의 어린 시절을 풍요롭게 해주었던 것처럼 내 주변의 사람들이 그로인해 풍요로워졌으면 좋겠다.

남들은 힘들다는 농사일을 즐길 줄 알던 아버지처럼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장사꾼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고 싶다.

여지껏 살면서 아버지가 평소 즐겨하던 말을 곰곰 새겨보면 항상 많은 도움을 얻곤 하였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할 일이 없어도 음식점을 열 장소에 가서 논다.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도 하고 개업 날자도 가르쳐 주고 메뉴에 대해 물으면 그도 설명해 준다.

나는 여가시간이 있으면 자꾸 그리 달려간다.

어제도, 오늘도, 논두렁에서 놀다 왔다.

내일도 논두렁에 놀러 갈 것이다.

아버지가 농사꾼은 놀아도 논두렁에서 놀아야 한다고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