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의붓자식을 한 놈 키우고 있다.
姓은 분명 남편의 姓이었지만 겉모양이 닮지 않은 건 물론이고 사사건건 남편의 눈 밖에서 총알을 맞아야 하는 어설픈 놈이었다.
더 답답한 건 총알을 맞고도 아픈 시늉 한번 하지 않는 무감각에 난 항상 애가 탔다.
아들을 향해 발사한 총알은 나에게로 튕겨서 날라 왔고 그럴 때마다 난 번번이 총알을 대신 맞아주며 아들녀석 치마폭으로 둘둘 말아 감싸야 했다.
아비의 총알 세례가 뜻하는 게 뭔지 조차도 꿰뚫지 못한 눈치 없는 녀석 데리고 설교한다는 게 어불성설이었지만 그렇게 눈치코치 없는 녀석이 억센 미군들하고 어떻게 한솥밥 먹고 군 생활하는지 내 상식으로는 불가사의 한 일이었다.
"너 군대 생활에 애로사항 없냐?"
이렇게 물을 땐 당연히 애로 사항이 있을 거라는 답을 미리 내려놓고 노파심으로 던져 본 소리지만 아들녀석은 없다고 한마디로 잘랐다.
없을 리가 없는데 라는 시늉으로 고개를 모로 꼬았더니 아들녀석은 도리어 날 이상하게 생각했다.
"엄마가 묻는 의도가 애로 사항 있기를 바라는 소리 같아요......정말 없는데..........."
없으면 천만 다행이고 이 녀석아.
그 의붓자식 때문에 남편하고의 싫은 소리 기분 나쁜 소리 다 감수해야 했고, 모든 게 내 죄 인양 밑으로 고개 꺾으며 의붓자식을 대신해서 없는 죄 만들어서 남편의 화를 삭혀 주어야 했다.
아들 녀석의 죄가 곧 내 죄로소이다................
'그래요..당신 말이 맞아요..그 자슥이 워낙 부실한 놈이라서....'
' 에구..언제나 철이 들려나....'
'내가 잘못 키웠나 봐유....다음에 만나면 이 자슥 정신게임을 시켜야 돼'
군바리 주제에 폰 요금이 11만원에 육박하자 남편은 입에 거품을 물고 펄펄 뛰었고 나도 덩달아 뛰는 시늉을 해야 의붓자식이 그나마도 명 보전 할 것 같아서 남편보다 먼저 쐐기를 박았다.
옛말에도 상주보다 곡쟁이가 더 슬피 운다고 했다.
내가 더 난리를 쳐야 남편의 기가 꺾인다는 건 아들녀석 도마 위에 오를 때마다 써먹던 수법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아들녀석 나이가 듦에 따라서 늘어나는 걱정거리는 남편의 홀대가 아니더라도 늘 가지고 있는 근심이었다.
눈알이 반들 거려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 너무 여유롭고 유약한 아들녀석을 볼 때마다 조마조마 한 가슴은 남편의 일격이 급소를 조준할수록 숨이 막히는 거였다.
무얼 믿고 그렇게 느긋한지 도무지가 급한 게 없고 바쁜 게 없는 녀석이다.
벼락이 떨어져도 피해갈 생각은 커녕 벼락이 피해 갈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진 게 남편이 혈압 올리는 이유였다.
'어떻게 되겠지' 라든지 '아직은 급하지 않다' 라는 쉽게 말하면 運이 따를지도 모른다는 뜬구름 잡는 식의 거품성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남편 입안은 갈수기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지고 있었다.
물론 미리미리 준비 해 두면 좋지만 남편은 아들녀석의 그릇을 함지박 만 한 걸로 착각하고 있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아들에 대한 믿음보다도 환상이 두 부자 사이에 틈을 만든 게 아니었을까 싶다.
뭐든 할 수 있는 녀석인데도 불구하고 하지 않는다는 어렴풋한 환상.......
난 환상보다는 믿어주고 싶은 백지수표를내 밀었다.
너무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은 아들녀석한테 좀 유식한 말을 인용하면 설득력이 높을 것 같아서 '생각하면서 살지 않으면 살면서 생각하게 된다'는 '스콧 니어링'의 말을 인용했더니 이 녀석은 그 말뜻보다도 내가 그 말을 기억하고 있는 게 더 신기해서 박수를 치던 놈이다.
'다 생각하고 산다' 는 말로 내 유식한 논리를 면전에서 묵살한 놈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들녀석이 일일이 다 의붓자식으로 몰리지는 않는다.
가끔씩 가다가 에비에게 친자식의 감동을 먹일 때가 있지만 이 콧등 찡한 감동의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가 않다.
딸애는 남편에게 바른 소리를 했다.
'아빠가 아들 사랑하시는 건 아는데요, 그건 사랑이라기보다 지나친 배려고 아량 이예요'
즉, 아빠가 아들이 커갈 기회를 은연중에 빼앗는다는 거였다.
힘들고 어려운걸 뼈저리게 느껴서 自生하도록 버려 두어야 하는데 아빠가 그걸 막고 있다고.
애초에 군대생활도 고생스럽게 하길 바랬던 내 바램도 물 건너갔고, 돈이 없어서 돈 고생 좀 시키고 싶었으나 남편이 그럴 기회를 주지 않고 아들녀석 계좌로 용돈을 부쳐 주는데서 문제가 생겼다고 딸애가 지적하는 걸 수긍하면서도 아들녀석에게는 또 다른 욕심을 내는 것이었다.
모든 게 지 입맛대로 되는데 자생을 할 수 있냐고..........
모이도 주지 않고 근대(무게)부터 달려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온실에서 따스하게 컸는데 비바람 눈바람이 뭔지도 모르는 녀석한테 강해지길 바라는 게 무리한 욕심이라는 거 모르지는 않는데 현실과 남편의 욕심이 아귀가 맞지 않고 어긋나 있었다.
남편은 고기를 잡아만 주었지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고는 고기 못 잡는다고 타박을 했다.
남편이 아들녀석을 데리고 들어온 남의 자식 대하듯 할 때는 목구멍부터 기어오르는 불쾌감은 무언지 모르겠다.
반대로 내가 아들녀석 나무라면 남편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지는걸 보았다.
자식 나무라는 건 자기혼자만의 전용으로 착각하는데서 오는 이기심이 내 염장을 질렀다.
아들녀석에 대한 성토가 쏟아질 때면 내 가슴은 늘 조마조마했다.
변명이나 해명이 통하지 않는 남편의 독단적인 편견은 어떤 말로도 합리화되지 않았다.
듣기거북해서 속으로 삭히다가 드디어 내가 소리를 질러 댄 적이 있었다.
"갸가 옆집 남자 자슥이유?....그 자슥이 李가유?.....金가 잖우?........."
드디어는 마지막 카드인 姓을 덜 먹이며 남편의 입을 봉쇄 해 버렸다.
남편의 약점은 姓을 거론하면 두말 않고 꼬랑지 내리는 건데 약점을 이용하는 내 맘도 편치는 않았다.
차라리 그 자슥이 내 姓을 따라서 李가 였으면 남편의 약점을 들출 필요가 없는데 뻔한 게임에 번번이 딴지를 거는 남편이 딱해 보였다.
남편은 아들 녀석이 있음으로 해서 든든하고 흐뭇한 반면에 욕심이 앞 지르다보니 필요이상으로 걱정거리를 만들었다.
아직 4~5년이나 남은 앞날에 대해서 미리 부정적으로 단정 지울 때면 내 혈압은 서서히 올라갔다.
유독 아들녀석에게만 부정적인 남편의 처사가 못마땅했지만 드러내놓고 반박할 수 없는 게 또한 에미 된 입장이었다.
하찮은 불똥이 자칫 대형 화제로 번질까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아들녀석은 모른다.
이 에미가 얼마나 많은 총알 가슴에 맞고 사는지..........
아들녀석은 더 모른다.
이 에미가 얼마나 넓은 치마폭 거머쥐고 있는지...........
그러나 아들 녀석은 알고 있을것이다.
아비가 어미가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아들녀석은 또 알고 있을 것이다.
아비가 어미가 얼마나 믿고 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