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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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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며느리


BY hayoon1021 2005-05-10

[내 몸이 편하자고 들면 끝이 없다.]

첫애를 임신한 뒤 늘어지는 몸 하나를 주체못하고 허덕일 때, 다니러 오신 어머님이 내게 슬쩍 하신 말씀이다.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나중에 출산할 때 수월하다는 뜻이었다. 

혼자 자취하며 만화 그린답시고 게을러터진 생활을 하던 나로선, 처음 해보는 살림과 육아의 고충이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았다. 결혼생활이란, 내 몸 하나만 어찌어찌 건사하면 되던 미혼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난 주기적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남편이 결국 만화를 접게 된 것도,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여편네의 협조가 없이 더는 못해나간다는 결론 때문이었다. 뻔뻔하게도 난 그 얘기가 가끔 나오면 [첫째는 재능이 없었던 게지] 라며 남편 가슴에 못을 박아버린다.

둘다 집에만 있어 서로 망가지나 싶어 직장을 나갔다. 돈이 필요했고 남편이 집에서 일하던 때라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애들을 돌봐줄 수 있었다. 그렇게 맞벌이를 하면 될것 같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못된 계산이었다. 가족 모두 천 근 만 근 하루하루를 이겨나갔다. 그렇게 2년을 다니고 나니 남편도 나도 녹초가 돼있었다.

결국 남편이 나가고 내가 집에 들어앉았다.

직장 핑계로 소홀했던 집안일이며, 애들한테 정말 잘해야지.... 기특한 각오만으로도 내 마음은 설렜다. 하지만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건 아니었다.   

그 어떤 일이건 그 어떤 상황이건 힘들다고 징징대는 허약한 내 체력에 애초부터 문제가 있었다. 심각한 병을 의심해볼 정도로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사람만큼 간사한 게 또 있을까? 언제 직장과 살림을 병행했냐 싶게 이제는 해도해도 끝없는 집안일이 힘에 부치고 재미없다고, 나보다 힘든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남편한테 투덜댄다.

덩치가 아깝다고 남편은 늘 말한다. 그리고 곧잘 어머니와 비교한다.

[우리 엄마는 젊었을 때 쌀가마도 져 날랐어.]

사실이다. 어머니는 아담하고 깡마른 체구인데 웬만한 남자 몫은 해내신다. 물론 젋어서부터 농사며 살림이며 다 어머니 몫이니까 이를 악물고 했겠지만, 연세가 칠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아마 나랑 시합해 보면 어머니가 이길 것이다.

처음 시집가서 어머니의 그 일사불란함에 기가 팍 죽었다.

어머니에 비하면 나는 뻣뻣한 나무토막이었다. 거기다 뭘 모르면 눈치라도 빨라야 할텐데 그렇지도 못하고 늘 엉거주춤 부엌과 마루의 중간지점에서 서성였다. 날쌘돌이마냥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어머니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그건 흉내내서 될게 아니고 타고난 천성이었다.  

그래서 첨엔 고민을 좀 했다. 그러다가 편한대로 적응해 버렸다. 예전에는 며느리니까 뭐든지 다 내가 해야할 것 같은 조바심에 동동거렸지만, 지금은 어머니가 하면 하는대로 시키면 시키는대로 아무 갈등없이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내가 시댁에 머무는 동안 하는 일이라곤 잘해야 설거지 뿐이다. 내가 할 기회를 안주고 어머니가 잽싸게 다 해버린다. 며느리 고생 시키기 싫어서도 아닌것 같고, 단지 일을 앞에 두고 가만 못 있는 성격 탓인듯 하다. 놀라운 것은 어머니가 하루에 해치우는 그 일의 양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나는 김치 하나도 하루를 꼬박 잡아야 하는데, 어머니는 밭일 하며 다른 일 하며 덤으로 김치를 담으신다. 힘든 농사일을 해야하는 어머니한테 집안일이란 일 축에도 끼지 않는지 모른다. 그래서 뭐든 얼른얼른 후딱후딱 해치운다.

처음에 밥을 어찌나 빨리 드시는지 덩달아 그 속도에 맞춰 정신없이 먹다가 체할 뻔 했다. 내가 서너 숟갈 떴나 싶으면 이미 어머니는 물을 마시고 빈그릇, 수저를 챙기고 계신다.

왜 그렇게 빨리 드시냐고 했더니 얼른 먹고 논에 나가봐야 했던 옛날의 습관이 그대로 몸에 익어서 그렇단다. 나도 그 입장이었다면 그렇게 됐을까? 아니다. 굼벵이는 용을 써도 굼벵이니까.

어머니는 머뭇거리는 법이 없다. 해야할 일 발견하는 즉시 바로 실행이다. 난 일이 생기면 아휴 저걸 언제 하지, 어떻게 하지, 안할 수는 없나, 머리 굴리느라 에너지의 절반은 이미 써버린다.

어떤 일도 한꺼번에 못하고 잘게 나누어서 며칠에 걸쳐 해야한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잠시도 몸을 놀리지 않고 일을 하신다.

농촌 일이 시작도 끝도 없는 일이라곤 해도 마음이 안됐고 한편 존경스럽다. 아마도 어머니는 당신 며느리가 이렇게 게으른 지는 상상도 못하실 거다.

시골에 가서는 그나마 젖먹던 힘까지 다 짜내서 부지런을 떨었으므로.

어머니 앞에서는 솟아나던 기운이 집에 오면 사라지는 걸 보면 정신력이 어느정도 좌우하긴 하나본데..... 그러나 무엇보다 체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