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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시부모님에게 떡케이크 선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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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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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청년의 모습으로


BY hayoon1021 2005-05-09

제임스 딘이나 마릴린 먼로는 일찍 죽어서 가장 배우다운 인생을 살았다고들 한다.

팬들에게 젊고 아름다운 모습만 영원히 남겼으므로...

배우들이야 그렇다 치지만,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우리 시아버님은 가족들한테 오래도록 그리움과 상처로만 남아있다.

남편 나이 두 살 때 일이다. 시동생은 갓 돌을 지났고, 맏이인 시누는 네 살이었다.

남편과 내가 만나 연애란 걸 시작했을 때, 내 나이 서른이었다.

남편은 술에 취한 어느 날, 전혀 하지 않던 엄마 얘기를 하며 울었다.

[딱 지금 자기 나이에 우리 엄마는 혼자 되셨어. 옛날에는 그걸 잘 실감할 수 없었는데, 이렇게 자기를 앞에 두고 보니 우리 엄마도 이렇게 젊고 좋은 때가 있었다는 거야...]

남편의 그 애틋한 마음이 내게 그대로 전달돼서였을까.

난 결혼 후 명절은 가끔 빠져도 시아버님 기일만은 꼭 내려갔다.

시댁은 전남이다. 기차만 여섯 시간을 타야 한다. 집에서 역까지 나오고, 도착해서 시골집에 들어가는 시간까지 치면 하루를 잡아야 한다. 왕복 이틀은 길에다 그냥 버리는 것이다. 경비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간혹 남편이 올해는 그냥 넘어가자고도 한다. 그때마다 내가 박박 우겨서 내려간다.

기일은 음력으로 3월 23일이다. 한참 봄이 기지개 펴는 때다. 난 이 때의 시골 풍경이 참 좋다. 그래서 그 맛으로 가는 지도 모른다. 아이들한테도 자연 그대로의 놀이터보다 더 좋은 건 없다고 믿는다. 말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날을 골라서 가신 시아버님께 문득문득 고맙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내가 꼭꼭 기일에 참석하는 이유의 잔가지에 불과하다. 

가장 큰 이유는 이제 더이상 어머니 혼자 젯상을 차리게 놓아두기 싫어서다. 만물이 싱싱하게 살아나는 이 명랑한 계절에, 남편의 제사음식을 홀로 준비하면서 해마다 어머니 심정이 어떠했을지... 이제 며느리가 있으니 그 쓸쓸함은 지난 30여년으로 끝내야 하지 않겠는가.

사진속 시아버님은 너무나 매끈하게 생긴 미남이다. 어머니는 이제 67세의 할머니가 다 됐는데, 여전히 훤칠한 청년으로 남아있는 거다. 

함께 텔레비젼을 보다 보면 50년, 60년 해로한 부부의 결혼식 장면이 나온다. 식구 모두 흐뭇한 표정으로 보긴 하지만, 어머니 심정이 어떨지 마음이 쓰인다. 한세상 살면서 뭐가 더 필요한가. 오래도록 옆에 있어주고 함께 늙어가는 것, 그 이상 가는 복도 없을 것 같다.

남편은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아무런 경험도 없는 자기가, 제대로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을지 늘 불안해했다.  난 우리 친정 아버지 같을 바에는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남편을 위로했다. 지금 현재 우리 모습을 보면 그 말이 맞다. 남편은 다정하고 좋은 아빠인데 난 정서적으로 꽤나 불안정한 엄마가 돼있다.

밤이 깊어 당신 아들이 젯상에 술을 따르고 절을 올릴 때면 어머니는 좀전의 부산하던 손놀림을 딱 멈추고 조용히 앉아 바라보신다. 어머니의 깊고 나직한 한숨이 폭풍처럼 방안을 휘돌아치는 듯 하다. 손주들이 절 한답시고 엉덩이를 치켜세우며 떠는 재롱도 그 순간의 숙연함을 물리치지는 못한다.

어머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린 자식들과 나이든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일찍 가버린 남편에 대한 원망? 모질었던 지난 세월에 대한 회상?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고생?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는 내 마음도 착 가라앉는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우울한 감상에 오래 젖어 있을 분이 아니다. 잠깐의 그 상념은 흩날리는 지방에 다 날려 버리고 금방 씩씩한 모습을 되찾으신다.

나로선 상상하기도 싫은 그 세월을 어머니가 꿋꿋이 버텨온 힘도, 어머니의 활달하고 낙천적인 성격과 타고난 부지런함에 있다고 본다. 강한 의지는 물론 기본이다.

아직도 어머니는 당신 아들을 최고로 대접한다. 정작 아내인 나는 남편을 툭툭 함부로 대할 때가 많은데 어머니는 절대 아들을 가볍게 대하지 않는다. 매번 나는 놀란다. 그리고 곧 어머니의 그 사랑은 결코 내가 넘볼 수 없는 경지임을 인정하게 된다.

어설픈 엄마를 둔 우리 애들이 가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