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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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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 핀 카네이션


BY 김경란 2005-05-09

 곰팡이 핀 카네이션 
                                      
어버이 날이다. 오늘만큼은 일 년 동안 잊고 살았던 부모의 은혜를 감사히 생각하고 자식의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 뜻있는 날이다. 일 년 동안 못다한 효도를 오늘 하루에 다할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버이의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감사의 뜻을 전하는 날이기에 어제 저녁 컵에 답가두었던 카네이션을 들고 6시에 집을 나섰다. 첫 차로 가야만 아버지께서 출근하시기 전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안개에 싸인 빨간 카네이션은 볼수록 이쁘고 화려했다.



대관령을 넘는 버스 속에서 무심코 들여다본 카네이션.
'어머, 왜 테이프로 감아놨지? '
카네이션의 목둘레가 스카치테이프로 한 겹 둘러져 있었다.
'휘청거리지 말고 꼿꼿하게 서 있으라고 그랬나?'
그래도 낮에 보니까 눈에 띄는게 좀 보기 흉한 것 같아 집에 도착하는 대로 다시 풀어서 손을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트명한 테이프 속에 푸릇푸릇 하고 마치 털이 돋은 것 같이 북실북실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곰팡이구나'하는 불쾌한 확신이 들어 줄기를 감싸고 있는 은박지를 풀고 - 세상에! 안개꽃의 그 가는 줄기와 꽃이 누렇게 떠있었고 냄새를 풍기며 썩고 있는 중이었다 - 테이프를 풀었다. 세상에! 세상에 이럴 수가! 한 쪽 면은 이미 썪어 문드러져 있고 반대편 쪽은 곰팡이가 슬어 썪는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는게 아닌가!



나는 혹시 누가 볼까 부끄러워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다행히 몇 안 되는 승객들은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눈을 감고 있었다. 얼른 다른 한 개를 풀어 보았다. 마찬가지였다. 그건 마치 내가 지리산에서 심하게 화상을 당했을 때처럼 움푹 패고 시커멓게 썪어 있었다. 차마 보기가 끔찍해서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걸 내 부모님이 가슴에 달고 하루종일 다니시면서 뿌듯해 하고 기특해 하시겠지...
'엄마, 아빠, 죄송해요. 큰 잘못을 저지를 뻔했어요. 나는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며 덤으로 준비한 다른 꽃으로 바꿔 만들면서 어제 저녁의 성급했던 나의 행동을 반성했다.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내렸고 그 비는 밤에도 여전했다. 오후에 꽃과 선물을 준비하여 시골엘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 저녁 8시가 넘어서야 겨우 시간을 내서 택시를 타고 시내 중심가로 나갔다. 비는 억수 같이 오고 있었지만 여기저기서 꽃을 파는 사람들은 눈에 많이 띄었다. 카네기 홀 극장 앞에서도 그냥 바닥에 꽃을 펴놓고 카네이션을 팔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둘러 서서 꽃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카네이션이 금방 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봉오리 진 것보다는 조금 피어있는 걸 선택해서 네 송이를 5천원에 구입, 집으로 돌아와서 컵에다 담궈 부엌에다 두고 - 방은 더워서 금방 다 펴 버릴까 싶어서 - 아침에 일찍 들고 나섰던 것이다.



실내가 아니었고 또 비가 많이 오는 상태였으므로 꽃의 요모조모를 살펴볼 겨를도 없었으며 전혀 꽃의 상태가 불량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게 나의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그러나 그 꽃장사 하던 두 아가씨는 한 나절만 가슴에 달면 되니까라는 생각으로 자기들의 어머니, 아버지 가슴에도 그 냄새나는 꽃을 달아드렸을까? 아니면 일 년에 한 번 있는 대목이니까 왕창 돈 좀 벌어보자는 욕심으로 오래 되어 곰팡이 슬고 문드러진 꽃을 내어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어버이날'이라는 이 날의 의미를 망각한 채 재고처분을 한 걸까?



아무튼 씁쓸하고 불쾌한 기분은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 무척 우울하지만 그렇게 썪어 문드러지는 몸을 하고도 여전히 아름답고 고결한 자태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카네이션이 마치 부모님들의 희생과 사랑을 그대로 보여준 것 같아 더 큰 깨달음을 준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고 자위하기로 했다.



아울러 나와 같은 곳에서 꽃을 산 많은 사람들과 그 꽃을 가슴에 단 부모님들이 다만 카네이션의 고귀한 의미만을 되새기고 무사히 하루를 넘겼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그러나 새벽의 버스 속에서도 보이는 그 '붕대 감은 카네이션의 목' 이 대낮의 밝은 태양 아래에서 감춰질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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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5.20. 강원일보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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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은 매년 있는데 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이 글이 생각난걸까.

  어머님이 부쩍 늙으셨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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