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주머니를 부르는 두 가지 이름이 있다.
정치인이나 유명인사의 딴 주머니는 '비자금'이라고 명명 하지만, 나 같은 서민은 '꼬불쳐 둔 돈'이라고 부른다.
흔히 이 '비자금'은 은밀하고도 비밀스럽게 감추어 둔 돈 인만큼 액수나 출처 또는 용도도 불투명 할 뿐만 아니라 설사 발각이 된다고 해도 투명하게 벗겨지지 않는 음지의 돈이다.
기껏 드러나는 게 수박 겉 핥기식의 형식적인 모양새만 갖춘다.- 유명인사는 특히.........
그러나 '꼬불쳐 둔 돈'은 은밀하게 감추어 둔 돈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출처라든지 용도는 시간이 지나면 투명하게 벗겨질 수가 있으므로 '비자금'과는 비교 될 수가 없는 양지의 돈이다.
내가 이 딴 주머니를 처음 접한 건 친정엄마로부터 간접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할 때부터이다
장사를 하시던 아버님은 수입과 지출이 아귀 맞게 들어맞지도 않았고 또 셈을 해 봐도 머리 속만 시끄러운걸 악용(?)한 친정 엄마의 고단위 수법은 기가 막혔다.
데리고 있던 일하는 아이가 수금해 오는 돈을 절반을 뚝 잘라서 치마를 젖히고 속 고쟁이에 집어넣는 걸 여러 번 목격했다.
그리곤 나머지 돈을 원래 있던 돈에다가 섞어 놓았으니 돈에 돈 섞인 게 아닌 담에야 죽었다 깨어나도 골라 낼 수 없었다.
그 당시 엄마의 행동을 보니 아버지가 몹시 불쌍하게 보였으나 입에다가 가로로 손가락 세우고 입 단속시킨 엄마의 엄포에 그냥 나도 모르게 공범자가 되었다.
그렇다고 입막음으로 동전 몇 개라도 건네 받았으면 양심의 가책을 더 느꼈을 텐데 엄마는 입다문 댓가를 엄포로 대신 할 뿐 공범자의 대우는 눈꼽만큼도 해 주지 않은 보스였다.
그대신 다른 형제들 보다는 조금 더 살가운 대접을 받은 특혜만큼은 누렸던 것 같다.
학용품 살 돈을 달라고 했을때 가타부타 핑게없이 순순히 내 주셨고, 먹고 싶은게 있을땐 은근히 압력을 넣기도 했다.
"과자 먹고 싶은데 아버지 한테 사 달라고 할까?"
내 의중을 눈치 챈 엄마는 눈을 하얗게 홀키셨지만 웃으면서 고쟁이를 들추셨다.
지금 생각해도 별로 영악 스럽지 못했던 내가 어떻게 그런 여우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맏딸인 나는 엄마에게 이용가치가 컸기에 상부상조했던게 아닌가 싶다.
엄마는 그 돈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고액(0.3%)의 사채놀이를 했다.
들어가고 나가는 돈이 원활하게 돌지 않았을 때 아버님은 엄마를 채무자로 몰아 내었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이웃집에서 빌렸다고 엄살을 떨면서 하루도 에누리 없이 아버지로부터 이자를 꼬박꼬박 챙겼다.
애꿎게도 어설프게 둘러댄 이웃 사람 - 엄마 친구 - 은 아버지로부터 지독한 사람으로 찍히게 되었다.
"친구라는 게 빨갱이보다 더 지독해...상종 못할 사람이야........."
엄마가 그 친구하고 어떻게 입을 맞추었는지 몰라도 그 사람과 아버지가 매일 마주쳐도 엄마의 비리는 드러나지 않았다.
내가 걱정 한 건 엄마가 혹시라도 그 돈 가지고 도망 갈까봐 겁을 내고 있었다.
나의 약점을 꿰뚫은 엄마의 야비한(?) 협박에 난 입도 뻥긋 할 수가 없었다.
"니 아부지에게 이르면 난 니 동생들 업고 도망 갈 거다 "
어린 마음에 엄마가 죽는다든지 도망가는 게 치명적이었는데 엄마는 눈썹 하나 까딱 않고 내가 불고지죄를 범하게 만들었다.
그리곤 그 일을 차츰 잊고 있었다.
우리가 성장해서 돈 들어갈 곳이 점점 늘어나자 아버지는 몹시 힘들어 하셨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는지 번번이 뭉터기 돈을 내 놓으시는걸 보고 난 무릎을 쳤다.
아하..........
그래서 엄마가 그런 일을 저지르셨구나............
엄마는 그 돈 가지고 엄마를 위해서는 한푼도 쓰지 않고 우리가 손 내밀 때마다 쥐어 주시곤 했다.
아버지보다는 엄마로부터 돈 타내는 게 훨씬 부드럽고 쉬워서 툭하면 엄마를 졸랐던 기억이 났다.
내가 결혼을 하고 남편에게 생활비를 탈 때마다 조금씩 챙겼지만 엄마처럼 사채놀이는 하지 못했다. - (남편이 은행에 있기 때문에 다른 집과는 달리 돈 관리를 남편이 했다.)
불안한 이웃을 주느니 이자가 적더라도 은행이 미더웠다.
남편이 금융기관에 있으니 혹시라도 발각이 될까봐 다른 은행을 이용했다.
가계부를 쓸 때 매일 10%씩 지출을 불려서 기재를 해서 그 10%를 모았다가 적금을 넣기도 했고 남편눈을 피해서 - 남편이 싫어했다 - 이웃들과 어울려서 수출품 뜨게질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적금 탄 돈을 둘곳이 마땅치 않아서 장판밑에 넣어두고 깜박 잊고 있었는데 맘좋은 주인집에서 장판을 새로 깔아준다고 했다.
난 아무생각없이 남편보고 장판을 좀 걷어 달라고 하자 남편은 장판을 둘둘 말다가 돈봉투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뭐라고 얼버무렸는지 몰라도 별 의심없이 넘어간것 같았다.
남편의 씀씀이가 생활비를 초과하자 남편의 버릇을 고치고자 이 '꼬불쳐 둔 돈'을 몽땅 내 놓으면서 그동안의 고초를 눈물 찍어내며 실토를 했을 때 남편의 충격은 굉장했었다.
그리곤 남편의 씀씀이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난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재주 좋은 사냥꾼이었다.
그 뒤로도 난 계속 딴 주머니를 가지고 있지만 이젠 남편에게 드러내지 않았다.
은근히 '꼬불쳐 둔 돈'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될까봐 속주머니 뒤집어 보이면서 무일푼을 선언했다.
그동안에 두어 번 발각되었지만 '곗돈'이라고 둘러댔는데 속아 주는 건지 정말 속고 있는 건지 몰라도 더 이상 나에게 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
결코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남편은 알고 있으려나.
정말 보잘것없이 적은 액수이지만 나름대로는 사연 많은 돈이었다.
그러기에 이 돈만큼은 정말 기억에 남는 지출을 하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듯 했다.
내 아이들이 더 커고 더 많은 지출이 늘어나면 나도 엄마처럼 도깨비 방망이 휘둘러야 될 것 같다.
여자들의 딴 주머니는 지출이 뻔하다.
살다보면 남편이 모르게 쓰일 곳은 생기게 마련이다.
첫손에 꼽는 건 친정 일이고 두 번째는 아이들에게 세 번째는 나에게 소용이 된다.
남편에게 미주알 고주알 알리지 못해서 속앓이 할 때를 대비해서 이 딴 주머니는 꼭 필요한 것 같다.
유명인사들의 '비자금'은 구린내와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지만 우리들이 차고 있는 '꼬불쳐 둔 돈'은 짙은 향내가 난다.
'비자금'은 개같이 모아서 개같이 쓰지만 '꼬불쳐 둔 돈'은 정승같이 모아서 정승같이 쓰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