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달성군 유가면 비슬산 (1084m) 자연휴양림(9:30) - 소재사 -조화봉 - 대견사지터 - 수성골 - 유가사 - 주차장(14:40) 05. 4. 28 봄을 심히 앓던 어느 해... 개나리꽃과 진달래가 어우러진 산야를 눈에 넣고 갑작스런 설움이 북받친 적이 있었다. 10여 평 남짓한 작은 공간 안에서 그 설움에 펑펑 눈물 쏟으며 소리없는 봄앓이를 겪었다. 노랑과 분홍색의 조화는 봄의 대표적인 색깔이다. 그들 원색의 손짓에 힘없이 무너져 자꾸만 나를 밖으로 불러내려 하지만 웬지모를 틀 안에 갇혀 있다는 그 느낌이 심한 봄앓이을 앓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 후부터였을까 눈에 들어오는 꽃분홍 색깔이 너무 예뻐 옷과 악세서리 등 내 몸에 걸칠 수 있는 장신구를 봄이면 늘 분홍색으로 하나씩 사는 버릇이 생긴 것 같다. 버릇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어폐가 있긴 하지만 그만큼 그 색깔이 주는 유혹이 쉬이 나를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 봄이면 여느 꽃보다 더 살갑고 그리운 색깔의 진달래가 나를 설레게 한다. 꽃을 술에 담가 마시기도 하며 화전의 재료로 쓰이기도 하는 진달래꽃, 봄이 왔음을 성큼 알리는 대표적인 꽃, 진달래 꽃길따라 떠나는 산행이 어찌 설레지 않았을까. 참꽃축제로 유명한 대구의 비슬산행에 합류하기 위해 두어시간 눈붙이고 일어나 집을 나오니 아직도 골목안 주점에서는 떠들썩한 음악과 함께 술손님들이 하루의 끝을 그곳에서 보내고 있었다. 새벽 3시 45분경 내 하루의 시작이었다. 아직도 하늘의 별이 총총, 대구의 날씨가 30도를 웃돌 것이라는예보를 접하고 서울보다 더 먼 달성군 유가면 용리에 위치한 비슬산 자연휴양림 입구에 도착하니 아침 9시가 넘어 있었다. 비파(琵)와 거문고(瑟)의 형상을 띈 바위에 신선이 앉았다하여 이름도 참한 비슬산, 도착하여 내린 산초입의 싱그러운 아침공기가 무척이나 상쾌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참꽃을 보러 온 행락객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고, 깨끗하게 단장한 휴양림은 가족 단위로 찾을수 있는 안온한 휴식처인 만큼 곳곳 명찰두른 나무들과 식물이름이 붙은 방가로가 즐비하니 정렬하여 있었다. 산행초반은 항상 힘이 들었다. 시작해서 30여분 지나면 그때부터 발에 가속이 붙어 속력이 나면서 빨라진다. 지난 북한산행의 오름길 못지않게 숨이 찬다. 흰 튀밥처럼 붙어있는 조팝나무와 미색과 분홍이 함께 섞여 조화로운 색을 보여주고 있던 병꽃나무, 그리고 여린 느낌의 물푸레 나무가 줄지어 서있고 땅아래 양지꽃과 제비꽃들이 어우러져 환상의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크고 잘게 부숴진 바위들이 경사를 만들어 너덜지대를 이루며 산 오르는 곳곳 많은 돌이 산재해 돌산임을 입증케 한다. 부는 바람에 떨어져 산아래까지 흩날려 내려온 진달래 꽃잎이 사람들의 발에 밟히며 최후를 맞고 있었다. 힘들게 올라가는 길에 어느 80 노파의 하산모습을 보게 된다. 이가 없어 잇몸이 쭈글쭈글한 할머니의 행차에 우리의 입에서는 절로 '오래사세요'라는 말이 나온다. 일반인들도 힘들어 잘 오르지 못할 곳을 다녀오다니, 물론 일행이 있긴 했지만 팔십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섰을 소풍에 우리들의 박수까지 받았으니 내려가면서 아마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주어졌다. 바람이 아니면 이내 지치고 말았을 산행, 시간 반을 오르니 갈림길이 나온다. 임도인 듯한 콘크리트 길에 잠시 서서 물을 마시며 숨 고른다. 큰 키를 자랑하는 진달래꽃 아래 노란제비꽃이 저들만의 키작은 동산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하나는 외로워 외로움 달래기 위해 무리지어 있나보다. 하지만 외로워도 슬퍼도 혼자 꿋꿋하게 피어 당당한 모 습을 뽐내고 있는 한송이 꽃 앞에서 버팀목없이 혼자서 독립할수 있는 강건함을 엿본다. 안쓰러움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홀로임이 당당해 뵈는 꽃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4월 마지막 주에 해마다 펼쳐지는 비슬산 참꽃축제는 며칠 전 모두 마치고 휘날레를 장식하고 있는 꽃들이 온 몸을 흔들고 있었다. 조화봉으로 이어지는 서쪽 능선따라 진달래 물결이 인다. 부는 강풍에 왼손은 모두 머리위로 올라가 있다. 몸이 휘청할 정도로 불어대니 여리디 여린 꽃잎들이 어찌 지탱할 수 있을까. 그래도 끄떡없는 비슬산 의 요정은 꽃분홍으로 수를 촘촘히 놓으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초록이라고 는 드문드문 보이는 소나무 외에 전혀 볼수 없는 참꽃들의 축제, 산악회 소속이 아니고선 나 혼자 도저히 와 볼수 없었던 비슬산, 이 모두가 나의 선택이긴 하지만 앞에서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산행이 아니었나 싶었다. 봄이면 참꽃과 철쭉축제 , 여름에는 수많은 야생화잔치, 가을에는 곱게 수놓을 단풍 그리 고 겨울에는 설원 잔치속 선녀가 되어 산에 오르는 일은 생각만 해도 벅차고 뿌듯하다. 지난해 6월부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면서 여름과 가을 겨울, 그리고 새 봄을 맞이하여 이젠 수십번의 산을 오르고 내렸다. 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터득해가는 산지식에 얻어지 는 기쁨 또한 큰 수확이였고 이제는 정말 산이 아니면 낙이 없을것 같은 잘못된 생각도 가끔씩 하곤 한다. 즐기면서 사는 삶은 약없이 살 수 있는 큰 특혜를 받을수도 있다.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 자들이 장수할 수 있는 큰 이유이다. 가늘고 길게 보다는 굵고 짧게라는 후자(後者)에게 더 점수를 주지만 사람이 어찌 짧게 살고 싶겠는가. 어느 누구든 건강하면서 오래 살고 싶은 것이 당연지사일 것이다. 50을 치닫는 나이로 과속하고 있으면서 내 사전에 병약함 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산행하여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1058m의 조화봉에 잠시 머물러 기념촬영과 조망을 둘러본 다음 정상을 향하여 오던 발길 갈림길까지 되돌려 진달래 꽃길 속의 여인이 되어본다. 오고가는 등산객들로 붐비고 있는 비슬산, 그 속에 묻어있음을 행복해 하며 먼지가 이는 산길에서도 씩씩하게 비슬산의 주봉인 대견봉으로 향한다. 로프타고 오르는 오름길과 수많은 바위를 넘어 올라가니 비슬산의 산세가 훤히 보인다. 대견사라는 옛사찰 터가 비슬산 꼭대기에 쓸쓸 히 탑하나만 남긴 채 소실되어 흔적을 남겨놓고 있었다. 절터가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서 관망을 하고 대견봉까지 올라보곤 그 아래 마른 잡풀 평원위에 고픈 배 채우는 일을 시작 한다. 센 바람에 날아오는 지푸라기는 우리의 찬과 밥에 고명을 띄워주고 그래도 희희낙 락 좋아하는 웃음 하나로도 배를 채우며 그야말로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후딱 중식을 해 결한다. 오후 1시를 조금 넘어 하산지 유가사를 향하여 내달음친다. 발걸음이 무척 빨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눈에 들어오는 야생화 하나 카메라에 넣는 여유 로움은 잊지 않는다. 오를 때 보았던 구슬붕이를 찍지 못했던 것이 무척이나 아쉬워 혹여나 볼 수 있을까 기대감에 빨라진 보폭에도 눈은 옆으로 돌리며 보랏빛 구슬을 찾았 다. 가파른 하산길에 수십명의 등산객이 줄지어 올라온다. 수성골이라 부르는 계곡따라 내 려간 길은 사람들이 삼림욕 즐기기에 적격인 장소로 보였다. 넓디 넓은 산속의 쉼터와 어 울려 흐르는 계곡 물소리 그리고 큰 키의 나무들이 빼곡한 숲, 모두가 일체되어 자연의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개별꽃이 지천으로 널려있고 연분홍 줄딸기 꽃이 새악시 수줍은 볼색깔로 낮게 드리우 고 조팝나무역시 산초입 휴양림 못지않게 많이 피어 하얀 얼굴로 나를 한번 만져주세요 하는 듯 보였다. 얼마나 빨리 내려왔는지 한시간 조금 넘어 유가사가 나무 틈 사이에서 나타났다. 대웅전 뜰앞 샘물 한모금 마시고 처마에 달려있는 풍경의 쉼없이 울려대는 모습을 쳐다 본다. 바람불어 제 몸을 열심히 부리고 있지만 그 청아한 소리가 아무리 들어도 질리질 않는다. 천년고찰인 유가사 역시 새로이 단장하느라 여념이 없다. 고즈넉한 분위기와 옛스런 맛 을 고스란히 간직한 산사가 마음에 드는 나로서는 별로 달갑게 보이지 않는 모습들이었 다. 절을 지켜주는 듯한 커다란 나무그늘 아래 일행을 기다리며 물로 목을 축였다. 비슬산 다섯시간의 산행을 마치는 지점, 고개들어 하늘 올려다보니 햇살이 눈부시다. 한여름 못지 않게 찾아든 더위에 오염에 찌든 도시속 사람들은 어찌 지내고 있을까. 산이 좋아 산을 찾는 사람들은 시원한 바람 하나만으로도 배를 불린다. 진달래 꽃길 속에 남겨놓은 그리움은 언제 또 찾을 수 있을까. 하늘은 뜻이 없어 맑고 산들은 말이 없어 푸르고 꽃들은 생각이 없어 곱다 그냥 맑고 그냥 푸르고 그냥 곱다 의미가 없지만 있는 어느 글 귀에서 나는 또 배운다. 하지만 맑고 푸르고 고운 의미 있는 것들이 순간 화마로 타들어가는 아픈 광경을 바로 눈 앞에서 보게 된다. 어둠이 깔려있는 강원의 산이 또 불타고 있었다. 진달래로 불타고 있었던 비슬산과 무섭게 타올라가는 산불광경이 오버랩되는 양면을 만들었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