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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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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부탁


BY hayoon1021 2005-04-28

늦을테니 먼저 밥 먹으라는 남편의 전화가 왔다.

세식구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아들이 문득 말한다.

[엄마, 나 부탁이 있어요.]

[뭔데?]

[이따가 아빠 오시면 화내지 않기...]

[내가 왜 화를 내?]

[엄마는 맨날 아빠 늦게 오시면 소리 지르니까요.]

일곱 살 짜리 큰 애의 말이다. 통화 내용 만으로 아들은 벌써 몇 시간 뒤에 벌어질 일을 예측하는 것이다. 아들이 똑똑한 건 반가운데, 충격이다.

내가 그렇게 화를 많이 냈었나? 사실이긴 하다.

근데 아들이 잘못 알고 있다. 아빠가 늦게 와서 엄마가 화내는 줄 아는데 그건 아니다. 그럼 술을 먹고 들어와서? 꼭 그 이유만도 아니다.

늦게 온다는 건 당연히 술을 먹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늦게 오는데 관대한 내가 술 먹는 자체로 화가 나는 건 아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내가 남편한테 화낼 이유는 하나도 없다.

남편은 술을 곱게 먹는 사람에 속한다. 술을 먹은 뒤의 말과 몸짓은 마치 흥분한 아이처럼 과장된 면은 있어도 악의있는 행동은 안 한다. 

일단 우리 아버지와 비교했을 때 남편은 양반이다. 하긴 아버지와 비교해서 양반 아닌 사람은 또 어디 있을까만... 그럼 그렇게 곱게 술 먹는 사람한테 왜 화를 내는가?

나는 누가 됐건 술에 취한 모습만 보면 숨이 턱 멎을 듯이 기분이 가라앉고 가슴이 벌렁벌렁 뛴다. 어렸을 때 골목끝에서부터 술에 취한 아버지 목소리만 들려도 엄마랑 나랑 불안에 떨던 그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이다. 

남편의 술주정은 귀여운 편이다.

아이들 예뻐하고 나 귀찮게 하고 그러다가 머리가 바닥에 닿는대로 곧 잠이 든다.

남편은 집에 들어와서 내가 10분 정도만 상냥하게 대해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얌전하게 잠자리에 들 사람이다.

근데 아들 녀석도 잘 맞추는 그 비위를 난 맞춰줄 수 없다.

일단 술에 취한 남편이 현관에서 신발을 벗을 때부터 눈살이 찌푸려지고, 그가 뭐라고 -늦어서 미안하다, 아직 안잤냐는 등- 몇 마디만 해도 짜증이 나고 어떤 좋은 말에도 대꾸할 기분이 안 난다.

[얼른 들어가서 자.]

싸늘한 내 한마디는 남편의 좋았던 기분에 좌악 찬물을 끼얹는다.

[내가 뭘 어쨌기에 그래?]

남편도 정색을 한다. 그렇게 몇 마디 오가다 보면 내가 먼저 소리를 지른다.  

남편은 극과 극을 달리는 내 성격을 잘 아는 지라 더 건드리지 않고 말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 속은 얼마나 상할까?

그렇다. 남편이 뭐 어떻게 한 것도 없다. 식구들을 패지도 않고, 뭘 던지거나 부수지도 않고, 자학하지도 않고, 다만 술을 먹었을 뿐이다.

그런데 난 그게 싫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그 모습에서, 흐릿한 그 눈동자에서 난 아버지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는.... 한 마디로 술을 마시면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난 어렸을 때 받은 충격을 간직한 채 산다. 남편이 온화하고 섬세한 사람이라 날 많이 보듬어 주었다.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파괴적인 내 성향을 따뜻하게 감싸안아 주었다.

난 남편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사람이다. 남편에 대한 감사는 해도 해도 모자란다. 그런 남편인데도 술 만큼은 용납이 안 된다. 

남편은 술을 좋아했지만, 만화를 그릴 때는 바깥 출입 자체가 별로 없으니까 술을 마실 일이 크게 없었다. 지금 하는 일로 바꾸면서 육체적인 그 고통을 술로 이기려는 것 같다. 술로 고단한 하루 일과를 끝내는 것이다.

일의 특성상 남편이 술을 안 마실 수는 없다면 내가 그런 남편을 따뜻하게 받아주는 수 밖에 없는데 어쩐다? 나 스스로도 약속하기 어려운 일이다.

몇해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돌아가신 뒤에도 내 인생에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 부부 사이에 큰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하루 빨리 아버지에 대한 우울한 기억에서 벗어나야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것이다.

이런 나를 돌아볼 때 마다 한 인간의 어린 시절 가정 환경과 그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는다. 내 아이들을 키우는 마음이 마치 살얼음 위를 걷는 듯 하다.

어린 아들 눈에 벌써 엄마가 그렇게 비쳤으니 어쩌면 좋을까? 지난 삼십여 년 비뚤어진 채로 굳어버린 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막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