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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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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어있는 산으로


BY 동해바다 2005-04-11


    댓재 - 환선굴입구 (4시간 30분)
    05.  4.  10

  
    전 날부터 내리던 비는 산에 가는 당일까지 계속 내리고 있다.
    이제 막 터트려 환히 웃고 있는 벚꽃들이 벌써 이별을 고하며 질퍽한 도로 위에
    나뒹굴텐데...
    펴 보지도 못하고 비바람에 떨어질 꽃을 생각하니 여린 꽃에 대한 안쓰러움이
    마음 한구석 감성 한자락을 자극하고 있다.

    비에 젖어 흐느적거리는 습함 속에서도 발길 서둘러 집을 나섰다.
    우울모드로 도배되어 있는 나의 마음이 조금은 희석될까 싶어 표정을 업그레이드
    시킨다. 연기는 감쪽같아 아무도 나의 우울모드를 알아차리질 못한다.

    지난여름 장마비에 입어보았던 비옷을 처음으로 꺼내입고 댓재에서 멈춘 버스는
    일행들을 뱉어 놓는다.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 봄비 속에서도 산을 향하는 사람들....
    4일전 밟았던 그 발자국 위에 일행 25명은 우중산행임에도 불구하고 한묶음이 되어
    올라간다. 


    

    
    눈녹아 흐르는 눈물과 빗물이 혼합이 되어 산길을 미끄럽게 만들고 있다.
    젖어있는 산은 차분했다.
    가누기조차 힘들 정도로 불어댔던 바람은 어디로 숨었을까. 
    저 넘어 산자락 뒤에 숨어 있을까. 
    다행히 비와 바람이 공존하지 않아 우리들의 몸은 쉽게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삐죽 얼굴 보이며 땅속에서 올라오는 새순들이 빗물로 목욕하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시합하고 있는 봄의 싹들이 아마 며칠후면 몰라볼 정도로 웃자라
    있을 것이다.

    방울방울 맺혀 있는 물방울이 투명하기 그지없다.
    유리알처럼 반짝거리는 그 투명함에 마음 가지치기를 또 하나 하며 연신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아낸다.


    


    생명들이 움트고 있는 산은 알수 없는 미묘한 기(氣)를 뿜어 내면서 정신과 육체를
    맑게 만든다.  내 안에 들어있는 쓸모없는 욕심덩어리들을 하나 하나 비우면서 
    우의(雨衣)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도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가수의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노래가
    있듯 주문을 걸어 행복 속으로 빠져들어가 본다.
    
    숨쉬고 있는 나무들의 모습...
    그 온기에 눈녹아 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나무는 적당한 거리들을 두고 있다.
    살면서 아무리 한몸이라고 명명하는 부부라 할지라도 나무처럼 적정간격을
    유지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우중산행이라 점심은 하산하여 먹기로 하고 잠시 쉬어 간식거리들을 꺼내 약간의
    허기짐을 대신 채웠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약주 한잔도 냉큼 받아 마시며 과일과
    쵸콜렛, 사탕 등으로 칼로리를 올리곤 멈추었던 발길 다시 출발하여 안개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세번째 오는 이 구간은...
    이제 쉽게 찾아갈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희미한 산길을 찾아 용기있게 나서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산은 결코 그리 쉽지만은 않은 상대이기때문이다.
    
    안개에 젖고 비에 젖어있는 고랭지 배추밭길은 질퍽질퍽하여 그야말로 신발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걸어가는 것처럼 그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움푹 파여 고인 빗물에 신발을 씻다가도 다시 진흙옷 입는 일을 번복 또 번복한다.
    오후에 그칠거라는 예보는 엇나가는 듯...가는 실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환선굴로 내려가는 하산길에 환히 얼굴 밝히고 모습보였던 노루귀들이 전혀 눈에
    뜨이질 않았다. 대신 현호색만이 밭을 이루며 비에도 굳건히 자리잡고 피어있었다.
    노오란 현호색이 눈에 띄어 그 신비함에 또 한컷 눌러댄다.

    하지만 노란 꽃은 현호색이 아닌 산괴불주머니라는 것을 집에 와 야생화싸이트에서
    검색, 하나의 지식을 얻어듣게 된다.
    꽃이 피기 전 알수없는 봉우리들을 사진 속에 담아 이름을 알아내고 활짝 핀 모습을
    야생화집에서 보았을때는 그 개화시기를 보지못한 아쉬움에 다시 또 가고픈 충동이
    일어나곤 한다.

    특히 솜털처럼 하얗게 뒤덮힌 전망대에서 발견한 동강할미꽃은 이름도 생소하고
    꽃이 무거워 힘겹게 허리접고 있는 할미꽃과는 달리 꽂꽂하게 하늘향해 피는 것이
    얼마나 우아하고 세련되었는지 그림속으로 한참 빠져들게 만들었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강할미꽃이라는데 큰 횡재인가 싶었다. 
    하지만 보지못한 꽃모양이 아른거릴 뿐이다.

    알수 없는 환상의 야생화 세계...
    수 종의 꽃들을 들여다 보면서 어찌 그 많은 이름들을 지어냈을까 싶다.
    갑자기 식물학자들이 존경스러워진다.


    
    


    앞서 간 사람들은 전망대도 올라보지 않은채 서둘러 내려갔다.
    후미에 천천히 내려가면서 며칠전 보았던 조망을 한번 더 둘러본다.
    안개에 휩싸인 촛대처럼 높이 올라간 바위와 몇미터 바로 앞에서 올려다 보는
    암벽들이 덕항산이 빚어낸 작품들인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 앞에서 사람들은 왜 서둘러 내려가려 하는 것일까. 
    한번 더 오고 싶었던 곳을 4일만에 다시 찾아와 또다른 느낌으로 받아가는 산행...
    '그때그때 달라요'라는 유행어가 있듯 
    산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처음 동굴로 올라오는 관광객들이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동굴안이 그렇게
    질퍽하냐고 말을 건낸다.
    그도 그럴것이 하나같이 신발이 만신창이 되었으니 그리 보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콸콸 흘러 내려오는 계곡물에 흙을 씻어 내고는 모두 환선굴 입구 어느 음식점으로 
    들어가 회원하나가 쏘는 막걸리파티에 점심까지 곁들이고는 짧은 산행시각을 기록으로    
    남기면서 집으로 향했다.

    회색빛 구름이 물러가고 있었다.


    

    언제나 웃으며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