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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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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가르기


BY 그린미 2005-04-01

우리 집에서 난 열세의 자리에 있다. 남편을 비롯한 아이들까지 모두 金가이다.

하긴, 내 姓을 고집할 수 없는 우리나라 가부장 제도에다가 종 주먹을 들이대어야겠지만 굳이 내 姓을 따르길 원치 않는다. 왜냐구?? 자칫 호로 자식이라는 둥 사생아는 둥.....둥둥거리는 소리 듣기도 싫지만 내가 시집을 왔지 남편이 장가를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남들은 에비 성 따르는데 우리 애들만 에미 성 따르는 데서 불거져 나올 부작용과 고금천지에도 없는 희안 한 요물을 집안에 들였다고 거품 물고 넘어질 시댁 식구들이 장애 요인 이었다. 한 시대만 더 늦게 태어났다면 호주제 폐지에 따른 혜택을 볼 수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시대를 잘 못 만난 내 사주를 탓 할 수밖엔 없다.

그러나, 난 호주제 폐지를 전적으로 반대한다. 호주제 폐지된다고 여권이 우리 여자들 구미에 딱 맞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내 사고에 모순이 있을지라도 公과私의 차별화는 있어야겠기에...........

내가 공직에 있을 때 호적업무를 여러 해 보았었다. 그때 '入婦婚'이라는 제도가 있었던 걸로 안다.- 내 기억이 틀릴 수도 있지만 - 즉, 쉽게 말해서 데릴사위제도가 바로 그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 기억으로는 남자가 여자 호적에 얹히는 건 단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그러니 아이가 아버지 성 따르는 건 어쩌면 관습법의 일종이라고 하면 무리수가 따르려나.

 

요즘 우리 집에는 편가르기가 은근슬쩍 고개를 쳐든다.

딸아이는 무조건 지 에비 편이다. 어려서는 에미 편 들더니 차츰 이 집안을 틀어쥐고 있는 곰팡이 냄새를 아이는 은연중에도 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三從之道의 그 화석 같은 굴레를 아이가 답습하고 있는 것 같아서 영 맘에 안 든다.

아빠를 우선순위를 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러다 보니 난 차선으로 밀리는 게 당연지사로 인식되다보니 은근히 서운할 때가 많다.

나 혼자 외출하는걸 아이는 싫어한다. 될 수 있으면 아빠랑 다니라고 주문한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항상 열려있는 전화기는 일거수 일투족을 투명하게 전달하는데 손색이 없다.

어떨 때는 같이 있다고 거짓말하면 지 에비 바꾸라고 한다. 잠시 자리를 떴다고 하면 눈치 빠르게 지 에비에게 확인작업에 들어간다. 나이 들어가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고 관심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은 하지만 너무 편애하는 모양새가  내 심기를 건드릴 때면 난 의붓에미 노릇을 했다.

'당신 딸 말 이유........' 이런 식으로 남의 자식이라고 밀어냈다.

 

그런데 아들녀석은 죽어도 에미 편이다.

에비 눈치 봐가면서, 재가(再嫁)한 에미 따라온 자식 역할을 내 맘에 쏘옥 들게 한다.

비밀스러운 얘기, 에비가 들으면 펄펄 뛸 얘기 나한테만 슬쩍 찔러 줄 때면 나 역시나 데리고 온 자식 치맛 폭에 둘둘 말듯이 에비 몰래 뒤로 감출 때가 많다.

유일하게 에비 편 들때가 있다. 주머니가 궁하거나 아쉬운 소리 할때는 친 에비로 대우 해 준다. '아빠~~' 하고 여운이 길어진다. 남편은 이때다 싶어서 속 창자까지 다 빼어주지만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는 못하는 편이다.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남편은 '자네 아들이 말이야.........'로 역시 성 다른 남의 아들 부르듯 한다.

그리곤 둘이 마주보며 낄낄거렸다.

둘이 머 하는 짓이냐구................

 

네 식구가 그려내는 그림은 색상이나 구도 면에서 완전히 다르다.

남편의 그림은 투박하고 짙은 색이면서 선명하고 확실하다. 아래가 무겁고 위가 가벼운 안정된 진분수다.

그러나 내가 그리는 그림은 옅으면서도 선이 확실하지도 않지만 뜯어보면 구분은 가는 편이다.

때때로 가분수의 형태를 나도 모르게 드러낼 때가 많다.

딸아이의 그림 역시 무게가 있고 라인이 뚜렷하고 밝다.

아들녀석은 아직 철이 덜 들어서인지 모든 게 선명하지가 않지만 깔려있는 바탕색은 수수하고도 정감이 가는 편이다.

그림을 들여다보면 서로 닮은꼴이 발견된다.

그래서인지 편가르기에서도 그 특색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어제도 혼자 외출하고 온 나에게 딸아이는 은근히 타박을 했다.

이젠 나이가 드는지 딸아이의 한마디 한마디에도 서운함이 가슴 한 켠을 뚫어 놓았다.

시댁 일로 늦게 귀가한 남편에게 기어이 한마디 쏟았다.

"당신 딸이 말 이유, 지 에비한테 잘해 주라고 압력 넣더이다."

그러자 남편은 내 서운함이 자기 탓 인척 능청을 부린다.

"미안 허이...내 딸 교육을 잘못 시켜서.............."

이렇게 되면 내가 밀리는 것 같애서 한마디 더 보태야 했다.

"울 아들 오면, 당신하고 당신 딸이 나한테 한 거 모두 일러 바칠 거유"

내가 불리한 건 또 있다.

딸아이는 지 에비에게 자주 전화를 하는데 울 아들녀석은 손가락에 깁스했는지 소식이 깡통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내가 열세이다.

하긴 군바리 녀석에게 애시 당초 기대하는 게 무리지만 아들녀석 제대할 때까지는 그냥 밀릴 수밖엔 없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내편 하나 더 맹글 수도 없고.

편가르기에서 나한테 유리하게 작용시킬 지름길이 있다면 딸아이를 내편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그러나, 이 녀석을 내편으로 만들자면 딸아이 입맛에 맞게 내가 양념을 치고 고명을 뿌려야 하는데 그러자면 남편에게 엎어지는 일 뿐이다.

어디를 가든 같이 가 주고, 먹을 일 있으면 같이 먹어주고, 즐길 일 있으면 같이 희희낙낙 해 주는 게 적을 없애는 길이다.

 

비록 우스개로 편가르기를 하고 있지만 커 가는 아이들이 부모를 애틋하고 측은하게 보아  주는 것만으로도 난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애정과 사랑 그리고 관심이 많을수록 부모에게 기대하는 지수도 늘어나는 것 같다.

量적으로는 목구멍까지 채워 주지는 못하지만 質적으로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면 그것이 바른길이고 곧은길이라면 난 기꺼이 적군도 되고 아군도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