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수학여행을 떠난 아들 녀석이 밤에 전화를 해서 그런다.
자신은 재미있는 시간 잘 보내고 있고 아픈 곳도 없다고.
엄마가 싸 준 도시락도 맛있었고
친구들과 아주 신나게 보낸 멋진 봄날이었단다.
그런데 뒤에 잇는 말이
"그 중에서 아빠가 써 주신 편지가 제일 압권이었어. 나, 감동 먹었어" 한다.
아마도 몇 번인가 아빠로부터 편지를 받았을 테지만
대부분이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에
다분히 의도적으로 쓴 통과의례 같은 글이었기에
처음 긴 여행을 보내면서 도시락 위에 곱게 접어놓았던 편지가
딴에는 '사건'으로까지 각인되었나 보다.
사람은 살면서 많이 변한다고 했지만
남편을 보면서 그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지금껏 아이들에게 쪽지 편지를 건네거나
잔신경 가는 일은 늘 내 몫이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남편의 손길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많이 고맙기도 하면서 일면은 놀랍기도 하다.
엄마와 주고받는 쪽지편지는 일상이다 보니
아이들에게는 그 감동의 파장이 줄어들기도 했거니와
익숙하기 때문에 영향력 또한 잃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너무 견고하게 다져 놓은 엄마의 자리가
혹여 남편에게 다가서기 부담스러운 영역이 되었던 건 아닐까
아이들이 이젠 이 엄마의 그늘에서
조금씩은 벗어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런 저런 반성을 하면서도 은근히 서운함이 앞서는 건 또 뭔지...
아빠의 따스한 편지 한 통의 위력은 실로 엄청난 것임을
달뜬 아이의 목소리를 통해 확인하면서
앞으론 터무니없이 넓혀 놓은 내 자리를
조금씩 남편에게 양도하는 연습도 해야겠구나 싶다.
섭섭함은 잊어야지.
역할이 미미한 자리이동을 했다고 생각하자.
아빠의 편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 아니던가!
내일이면 녀석은 좀더 훌쩍 커진 모습으로 돌아오리라.
문을 열어 주는 현관에 남편을 앞세워
반갑게 서로를 덥석 안는 부자의 모습을 지켜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