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3. 30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 철마산 (412m)근 한달만의 정상적인 산행이다. 매일 가까운 산을 다니는 것은 조금 높고 시간이 긴 산행을 하기 위한 워밍엎 수준의 준비운동이라 할까 두세번의 3월 산행은 집안행사와 갑작스레 찾아온 손님으로 포기 하고 마지막 날을 하루앞둔 30일 오랜만에 산을 오를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이번의 경우에도 조부모님의 제사와 아들아이를 볼 목적인 서울행이 발목을 잡을 뻔 하였지만 산행전날 밤늦게라도 도착하여 빠지지 않으려는 열정을 보였다. 요즘 한창 영화촬영하느라 북새통인 이곳 죽서루에 아침 8시 도착하니 이미 가기로 한 회원 10명이 모두 나와 있었다. '대단하다'라는 말을 들으며 서울에서 밤늦게 도착하여 피곤할텐데 빠지지 않고 무거운 배낭을 매고 나오는 나에게 모두들 한마디씩 던진다. 승용차 3대에 나누어 타고는 목적지인 호산으로 향한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와 경북 울진까지 이어지는 삼척의 지명 앞에 머리를 비웠었는데 10년 지난 지금 이 지역사람들보다 더 빨리 순서대로 말할정도로 익히게 되었다. 맹방 근덕 궁촌 장호 용화 임원 호산 ..... 크고 작은 해수욕장이 즐비한 동해안의 맑고 투명한 바닷가 이름이요 지역명이다. 전설과 지역문화재 박물관 등을 갖고 있는 자그마한 해안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여러 잡다한 일상사들을 꺼내어 주고받는다. 삼척에서도 가장 아랫쪽에 위치한 호산의 어느 오지산... 심심산중 사람들의 발길이 전혀닿지 않는 곳을 오지라 하였다. 밀림처럼 울창한 숲과 보이지 않는 길, 그리고 야생 짐승들이 살고 있는 오지산... 이젠 그 이미지가 조금 바뀌어 동네산처럼 포근하긴 하지만 주민들 외에 산행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없는 산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하산할 이천리 계곡 쪽으로 이미 차 두대를 정차하여 놓고 호산리 송실에서 출발 시멘트로 도장된 길을 밟으며 산 들머리까지 갔다. 작은 암자인 듯 대원사라는 입간판이 있었고 신도인듯한 사람과 일행이 아는 척 한다. 역시 삼척사람들이라 어딜 가도 그사람이 그사람인가보다. 들에 활짝 핀 매화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전 폭설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눈 속에 피었다는 매화.... 봄이면 가장 먼저 볼수 있는 꽃이라 하지만 정작 매화는 봄이 오지도 않은 한겨울에 피기 때문에 겨울나무에 가깝다고 한다. 또한 산수유꽃과 더불어 산에 자생하지 않기에 봄의 산나무라 보기 어렵다고 한다. 하여 무채색으로 물들였던 겨울산에 가장 먼저 색을 입힌 생강나무(산동백이라고도 함) 를 눈 안에 하나가득 담는다.
산들머리부터 나무는 없고 잡풀이 우거져 칡덩굴과 함께 부등켜 안은채 대지를 휘어 잡고 있었다. 우리가 오를 산이라는 철마산에는 수년전 입었던 산불 피해로 푸른색은 가뭄에 콩나듯 보였고 피폐한 산만이 작은 묘목들을 키워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곳을 뚫고 나오는 봄꽃들이 유난히 두드러져 눈에 뜨인다. 연보라색의 제비꽃과 노오란 양지꽃이 마른 땅을 뚫고 활짝 피어 웃고 있었다. 보는 즐거움으로 한꺼풀 벗겨지는 묵은 찌끼들..
꽃은 요즘에 와서 웰빙이다 하여 보는 즐거움으로는 족하지 않고 먹는 즐거움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진달래먹고 물장구치고...'라는 노랫말이 절로 흥얼거려진다.. 노란 생강나무 꽃을 따서 한입 베어물고 맛을 본다. 처녀 젖꽃지마냥 볼그스름했던 진달래 봉우리가 활짝 열려 그 꽃잎하나 떼어 또 맛을 본다. 달짝지근했다. 먹거리가 풍족한 세상에 아이들에게 먹어보라고 주면 과연 먹을까.. 우리네 역시 옛생각에 젖어 한잎 따 먹으며 향수에 젖어보곤 하니 말이다. 검게 타 숯처럼 변해있는 나무밑둥에 뿌리내리고 봄을 알리는 진달래꽃.. 산 전체를 태웠던 불씨들이 아량을 베풀고 그냥 지나쳐 다행히 살아있는 소나무들과 스치면서 나무만 그을린채 가지에서 새 솔잎을 내보내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생과 사를 연상케 한다. 칡덩굴이 온 몸을 칭칭 동여가며 목죄었던 연약한 나무가 쓰러져 있다. 생명을 끊어놓고도 초연히 남의 생명줄을 노리고 있는 칡.... 독과 약이 되는 덩쿨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얄미워 보인다.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자연공부는 늘 '인생'이란 두 글자를 떠오르게 하니 해이해졌던 마음을 다시금 추스르도록 해주는 삶의 비타민이라는 생각이 든다. 412m라는 높지않은 산까지 오르며 동네야산이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게 만든다. 어려움없이 올라와 숨고르며 주변을 살펴보니 그 피해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직도 몇년이 흘렀건만 손이 가지못한 채 나무들이 제각기 넘어져 있다. 산불에 루사 매미라는 태풍에 그리고 마지막 폭설에..... 누가 견뎌내겠는가 그 누가 이겨내겠는가. 겸허함과 숙연해짐은 산불현장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가르침이다.
앗! 고라니다 외침 속에 얼른 고개돌려 보았건만 얼마나 동작이 빠르던지 꼬랑지 조차도 볼 수 없었다. 야생짐승들이 나무없는 민둥산에 출현하여 먹이를 찾느라 기웃거리는가 보다. 인간들의 사욕이 곳곳에 배치된 올무로 인하여 멧돼지나 고라니 등 야생동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한다. 재넘어 얼른 도망간 고라니가 혹 보이지 않을까 계속 쳐다보았지만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높지 않은 정상에서 제를 올리고 묘지 앞 넓은 평지에 자릴하고 점심시간을 갖는다. 누구 묘인지 모를 묘소 앞에서 술한잔 올리고 싸가지고 온 먹거리들을 펼쳐 배를 채우며 그 시간을 즐기며 포도주며 매실주등 과실주 한잔 한잔이 건내진다. 산속에서 마시는 술 한잔... 피곤을 풀게 하는 동시에 추위를 몰아내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술은 아니지만 산 위에서 마시는 술 한잔은 보약이라 생각하고 꼭 받아 마신다. 검봉산(682m), 철마산(412m), 사금산(1092m)등 산으로 둘러쌓였다는 이천리 쪽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오름길과는 반대로 길이 없다. 이젠 제대로 된 오지산행이라며 너도나도 입맞추며 선두따라 내려갔다. 내려가다보니 두릅나무가 지천이다. 4, 5월에 새순을 보이며 독특한 향이 있어 산나물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 나무이다. 기함을 토해내는 일행들.... 산주인이 있을꺼야, 텐트치고 자지 않는 이상 다 따가겠지, 새순돋길 벼르며 기다리고 있는 주민들이 있을거야 하며 입에 군침만 일게 하는 두릅나무... 산나물을 봐도 값비싼 희귀한 약초를 보아도 잘 몰랐던 나는 두릅을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비싼값을 주고 사먹는 것을 생각하니 자연히 탐이 날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그림의 떡인걸... 아직 새순이 돋질 않아 그냥 보고만 지나쳐야 하는 아쉬움 속에 두릅밭은 가도가도 끝이 없다. 가시가 박혀있어 내림길 버팀목으로 잡을수도 없다. 몸으로 중심을 잡으며 두릅나무 사이로 헤치며 나간다. 수액을 뿜어내고 있는 나무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오름길에서 누군가 가져온 고로쇠 물을 마시며 지금이 적기라는 말을 들었는데 잘려진 나무 위가 흥건히 젖어있어 물어보니 한창 수액이 뿜어 나오는 시기라고 하였다. 오리나무... 습지에서 자란다는 오리나무가 젖어있었다. 숙취를 없애주며 알콜중독을 풀며 간기능을 강화시켜준다는 나무, 갈색껍질은 염료로도 사용한다는 오리나무는 거리를 나타내는 이정표로 오리마다 심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 이라 한다.
얌전히 피어있는 노루귀가 고운 자태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천상의 요정인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꽃잎 속으로 쏘옥 빨려들어갈 듯 하얀 꽃술들이 춤을 추고 있다.
겨우내 땅 속에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기쁨에 찬 환희였을까 연보랏빛 꽃잎 안의 재잘거림이 노루 귀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꽃잎을 간지럽히고 있었으니 그 모습만 보아도 가슴이 두근두근 거릴 정도로 벅차오른다. 시작이었다. 봄꽃들의 잔치가... 내 집에서 본 자란과 방울철쭉, 동백과 허브꽃 등이 먼저 나에게 봄을 알려주었고 고개숙여 노지에서 본 개불알꽃과 꽃다지, 냉이꽃 그리고 괭이밥과 양지꽃 등이 먼저 선을 보였고 흐드러지게 피어 몸살앓을 목련과 벚꽃이 서서히 그 준비하고 있다. 해마다 꽃잔치가 열릴때면 숨어있던 감성들이 곱으로 되살아나면서 모든이들을 설레이게 한다. 호산의 철마산에서 본 봄꽃들을 시작으로 이제 눈이 마주치길 기다리는 수많은 산중의 꽃이 질서정연하게 서열을 맞추어 하나 둘 필 것이다.
하산길의 습지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한모금 받아 마시며 발길을 재촉하여 내려온 마을 이천리였다. 삼척시 원덕읍 이천리.. 마을어른인듯 노부부가 구부정하니 엎드려 일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일행들이 한두마디 건내니 물고기가 물만난 듯 일손놓고 부지런히 말씀하신다.
강원도의 여늬 산골 마을과 마찬가지로 점점 주민들의 수가 줄어 노인들만 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힘겹게 농사짓는 손길에 일행들이 잠시지만 가세하여 거들어 드린다. 계곡물 또한 풍부하여 깊숙히 파고들어 자리한 이천리는 그야말로 오지의 한 마을이었다. 동년배의 일행은 이곳이 친정이라며 주차해놓은 자그마한 분교를 나왔다고 한다. 오래전 학생수가 300명이 넘었으며 그때는 학교건물이 몇채 더 있다며 향수에 젖은듯 두런두런 주변을 살펴본다. 예전의 분교는 재넘어 있었는데...말끝을 흐린다. 모두가 도회지로 읍내로 이주해 살면서 점차 줄어든 주민들로 학교또한 분교로, 폐교로 이름을 남겼나보다. 깊은 산중이라 폐교를 맡아 어느누가 유용하게 쓰려는지 자못 궁금하다. 오후를 사알짝 들어선 시각... 하산한 우리 일행은 이천고을과 졸졸 흐르는 냇물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린다.
이젠 임원항 횟집을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