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3일
새벽부터 시작된 진통을 벌써 10시간째 겪고 있었다.
'아이가 커서 자연분만 하긴 힘들텐데 산모는 키가 크고 젊으니까 한번 해보죠'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도 내가 품은건 오로지 희망이었다.
내 아이에게 내가 줄수 있는 행복은 무엇이든 다 해주겠다 약속했었기에
첫 아이만큼은 차디찬 수술대가 아닌, 엄마의 품에서, 엄마의 숨소리를 느끼며,
세상의 빛을 보도록 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었다.
기나긴 산고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내가 힘든 시간을 견딜수 있었던 것은,
내 손에 쥐어진, 작은 목걸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
그것은,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내손에 손수 쥐어주신 십자가 목걸이 이다.
푸른 빛을 내며 반짝이는 십자가는, 할머니께서 가장 소중히 아끼셨던 것이고,
더불어, 내게도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다.
사춘기 무렵, 부모님의 이혼으로 나는 참 많은 방황을 했어야 했다.
하루아침에 엄마라는 존재 대신, 할머니를 엄마로 받아 들이기엔 나는 너무나도 어렸었고,
너무나도 커다란 충격에 휩쌓였다.
그래서 인지, 할머니를 참 많이 미워했었다.. 아무 이유없이, 창피하다는 이유만으로,
할머니를 무시하고, 투정만 부리고, 화만 내고..
그런 못난 손녀였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오히려, 엄마 없이 자라야 하는 우리 남매가
불쌍해서였는지,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고, 또 베푸셨다..
어느날, 그날도 어김없이 학교를 무단결석 하고 말았다. 그 당시, 나는,
학교보단 친구와 어울리는데 더 신경을 썼던 아이였고, 나를 혼내 줄, 엄마가 없었기에,
더욱 막 나가는 삶을 살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학교를 무단결석 하고, 다음 날, 선생님의 부름으로 교무실에 갔더니,
할머니께서, 그곳에 계셨다.. 당신의 막내 딸 뻘되는 담임선생님 앞에서, 할머니는
무릎을 꿇은 채, 용서를 구하고 계셨다..
어떻게든, 학교만은 졸업 시키고자 했던 할머니의 마음은, 나로 인해, 자존심까지
내 팽겨 쳐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려야 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였던것 같다.. 내가 할머니를 이해하고, 조금이나마, 할머니에게 마음의 문을
연 것은.. 어느 날 새벽,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 났는데, 그때 할머니는 혼자 마당에 나와
계셨다.. 그리곤, 그곳에서 처음으로 할머니의 십자가 목걸이를 보았고,
덜컥, 목걸이의 주인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 너희 할아버지가 나랑 결혼하기 전에, 선물로 준것이란다. 내겐, 결혼반지보다, 더욱 소중한
선물이야.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기에, 너에게 주고 싶단다. 그리고, 기억하렴.
신은, 너를 지켜주시는 분이라는 걸..'
할머니의 목소리는 울음 섞인 듯, 떨리면서도, 또한 평화스러웠다.
내가 과연 이런 귀한 선물을 받을 자격이나 있는지.. 돌이켜 보면 늘 할머니에게
죄스럽고, 또 죄스러운 마음 뿐이다..
7년이나 지난 지금, 할머니는 그때처럼 강하지도, 튼튼하지도 못하신다.
더욱 작아진 어깨에, 더욱 작아진 키.. 그 모든 세월의 흔적이, 내 탓인것 만 같아서
나는 아직도 죄스럽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보니 이제야 조금은 알것 같다..
할머니가 내게 준 사랑과, 내게 준 꿈을..
할머니가 주신 십자가 목걸이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건강하게
출산을 할수 있었던 것 같다..
할머니의 가장 소중한 선물이 내것이 되었으니, 이제는 내가 할머니에게 소중한 선물을
할 차례인것 같다.. 내 선물을 받으시는 그날 까지, 늘 건강하게 사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