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쯤 전에 남편과 같이 가구를 사러 간 적이 있다.
신문 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인데 둘러보고 실망을 했다.
물건도 형편이 없는데 값이 터무니 없이 비싸다.
세일즈맨이 진드기처럼 달라붙어 귀찮을 정도로 설명을 하는 것도 불편했다.
둘러보는 것을 대충 끝내고 서둘러 가게를 나왔다.
나오는데 따라다니던 세일즈맨이 뭐라뭐라 영어로 쏼라거린다.
의례적인 인사겠거니 생각한 나는 'Thank you!' 하고 의례적인 대꾸를 하였다.
주차장에 차를 타러 가면서 남편에게 투덜거렸다.
"여보, 속아서 괜히 멀리까지 왔다. 그치?"
"......"
"그리고 그 세일즈 하는 남자도 이상하다. 미국에서는 그렇게 달라붙어 사라고 하는 사람은 못 보았는데..."
"......"
"엉터리 물건에 값은 터무니 없이 비싸고..."
내가 무슨 말을 하건 말이 없던 남편이 말했다.
"아까 그녀석이 우리보고 욕한 것 같아. "
"뭐라고?... 언제?..."
"우리 나올 때, 너희 같은 것들은 여기 올 자격도 없다, 뭐 그런 종류의 말을 한 것 같거든..."
"뭐라구? 그럼 내가 그 말에 웃으면서 Thank you! 했단 말야? 그런데 그 말을 왜 이제서야 가르쳐 주는 거야?"
"나도 그 때는 이해가 잘 안되었었는데 지금 곰곰 생각해보니 그런 뜻 같아..."
"아니, 미쳐... 미쳐... 내가 미쳐!... 그것도 모르고 Thank you! 했으니 그 녀석이 얼마나 재미있고 신이 났을까?..."
나랑 달리 남편은 제법 영어를 잘한다는 사람이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닌 적도 있고, 일도 영어와 무관한 일이 아니어서 나는 남편이 영어를 제법 하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남편도 듣는 순간 이해를 못하고 나중에 이해가 되는 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남편이 아예 영 못 알아듣는 말이 수두룩하다는 것도 살면서 차츰 알았다.
나이들어 영어를 배운 사람의 한계였다.
그 후로 영어에 서툰 나는 미국에 살면서 굳게 결심한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상대방이 하면 무조건 You too!하기로...
욕을 하건, 칭찬을 하건, 인사를 하건, 상대방에게 같은 것을 돌려줄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이 결심 덕분에 비록 영어에 서툴지만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건 적절한 대꾸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이렇게 똑똑한 결심을 한 스스로가 대견할 때도 있었다.
'You too!...You too!' 참으로 두루두루 쓰기 편리하고 좋은 말이다.
며칠 전 가게를 열기로 한 장소에서 꽃밭을 가꾸고 있는데 지나가던 여자가 차를 멈추고 물었다.
"몇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나는 정원사 일을 하는 사람인데 누가 여기 꽃밭을 가꾸는 거죠? 지나가면서 항상 궁굼했거든요. 시에서 하는 것인가요?"
"아니요. 우리가 하는 겁니다. 우리는 여기에 동양 음식점을 열 계획인데 그래서 이곳을 가꾸는 중이지요."
"아, 그렇군요. 정말 이쁘게 잘 가꾸었네요. 앞으로 관리도 계속 할 것인가요?"
"그럼요... 당연하지요..."
여기까지는 잘 나갔다.
미국에서 산 세월이 제법되니 이 정도의 대화는 이제 나도 할 줄 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여자가 뭐라고 하는데 그 뜻이 잘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당황하지 않는다.
이런 때 사용하기 위한 비장의 무기가 있으니까....
바로 이런 때를 대비해 둔 말 'You too!'이다.
여유있게 웃으며 그 비장의 무기를 사용해서 대꾸를 하고 그 여자는 떠났다.
그런데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다.
그 여자가 뭐라고 했지?
머리속에 그 여자가 한 말을 다시 떠올려 보려 애쓰자 비로소 그 여자가 한 말이 확연히 떠오르고 '아, 그말이었구나!' 싶다.
그 여자는 '레스토랑이 앞으로 잘되길 바란다...'고 했었는데...
나는 그 말에 'You too!'라고 대답했으니...
앞으로 못알아 듣는 말에 대한 대꾸는 다시 'Thank you!'로 바꿀까...
아, 헷갈린다.
'You too!'냐 'Thank you!'냐,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