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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사십대의 마지막 생일 선물!!


BY 고우리 2005-03-10

사십대의 마지막 생일 선물!!

어느덧 해 놓은것 하나 없이 이 나이를 먹어 버렸다.
무심한 세월만 덧없이 흘러 보낸것만 같다는 생각이 때론
내 자신을 지배하므로 나름대로의 힘겨운 갈등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두가 지난일이 아니겠는가?
현실에 충실한 삶을 영위하면 그만인것을...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신앙생활 열심히(나름대로)하며
살고 있던 어느날 남편의 질병을 발견했구 그 질병으로 인해서
삼년 육개월여의 투병생활 하는데 온몸과 마음을 바쳤겄만
건장했던 장정도 암이란 무서운 존재앞에 더이상 버틸수 없었고
참혹한 현실로 이어질수 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나의 마음은 정말 처절하리만큼 아파왔고
그 누구도 달래줄수 없었던 현실속에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로 다가 와 있었다.

그 사람이 내 인생의 전부였던 까닭에 그가 떠난 빈 집에
언제나 텅빈 가슴을 안고 아무것도 할수없어 장롱에 기대어
앉아 있기를 몇개월!
아장아장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세상으로 한걸음 두걸음
홀로서기의 연습에 들어갈수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할수 있도록 내게 힘을 준것도 아컴이 있었기에
그리고 띠 아지트의 많은 친구들이 있었기에
어디까지나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살아가야할 의미를 잃어 버리구 있었던 작년
잔인한 사월의 마지막 며칠을 남겨두고 있던 어느날!

난 한 남성을 만나게 되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난 지금도 알수가 없지만...

익히 얼굴은 알구 있었지만 말은 한번도 해 보지 않았으므로
그의 얼굴을 보게 된건 거슬러 이개월 전부터 보게 되었지만
내 자신이 먼저 말을 건네지 못한 내성격인 점도 물론 있다.

지금도 상대방이 먼저 말을 건네야만 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하는
남 보기엔 활달하구 발랄한 성격처럼 보이건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바보같은 성격의 소유자다.

그날 이후 그이와의 급속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어 버렸다.
내 자신 나두 잘 모르게 그의 포크레인 처럼 강하게 밀어 부치는 바람에
순식간에 하나가 되었고 지금까지 십개월이 지난 지금도
사랑하는 여보 당신으로 호칭을 부르며 지내구 있다.

지난 삼월 팔일날 내 사십대의 마지막 생일날이었다.
그는 집으로 친구들을 부르라 했다.

떡 케잌을 맞추고 킹크랩 젤 큰걸루 두마리를 사왔다.
물론 오는길에 시장에 들려 감 한박스와 딸기도 사왔다.
집에 사과랑 감이랑 있으니 그냥 오라구 몇번이구 당부를
했건만 친구들앞에 내 자신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정오까지 올수있는 친구들 오라구 했기에 네명의 친구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많은 친구들이 올수 없슴은 직장생활 아님 장사를 하구 있기에
이 네명밖에 올수가 없었다.

한 친구는 생일전날 함께 남대문 시장에 가서 친구랑 똑같은 곤색 바탕에
한얀 줄무늬가 있는 남방 티와 회색 예쁜 바지를 함께 입자며
사주었고 또한 친구는 십만원짜리 티켓을 또한 친구는 금일봉(오만원)
또한 친구는 맛있는 고구마 케잌과 굴 무침을 만들어 오기도 했다.

그리고 사랑하는이가 핸드빽 사라구 준 이십만원으로 가죽
쌕을 샀구 그가 마련해준 떡 케잌과 킹크랩...

드디어 케잌에 촛불을 켜고 생일축가를 부르는데
내 두 눈에서는 알수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지만
감출수 밖에 없었던 나의 자신...

삼년전에 아파서 내 곁을 떠나버린 그 사람에게도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 그 모든걸 알구있던 친구들 앞에서 부끄러워서
눈물을 감출수밖에 없었다.

난생처음 이 지상에 태어나 푸짐하구 거창한 생일이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 사십대를 보내면서 잊을수 없었던 날이 아니었을까?

남편이 살아 있을적에 물론 이모양 저모양으로 생일선물
많이 받아 봤지만 이번 생일처럼 감동 먹은적은 아마도 없었던것 같다.

남편이니까 당연히 해 주는게 아닐까 싶었기때문이다.
허지만 당연한게 아니구 어느 누구에게나
아름답지 못한 불행이란 단어가 찾아 올수도 있슴을 이젠 잘 알기 때문에
내 자신이 아픔과 행복함이 교차되어 눈물을 흘릴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