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제부터였는지 북한산의 개구멍은, 여기서 개구멍이란 매표소를 지나가지 않는 곳을 말한다.
한마디로 나라님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공짜로 산을 들어가는 것이다.
아무튼, 북한산은 단단한 쇠철망으로 휘둘러져 있었다.
입장료를 아끼기 위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소나무 두 그루를 지지 밟고 올라서야했다.
지하수를 퍼서 돈을 벌 듯, 산이 거기 있고 싶은 곳에 있었을 뿐인데
그 산을 이용해 나라에선 돈을 뭉텅이로 챙기는 것이다.
그래도 난 돈을 내고 떳떳하게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지만
소나무를 디뎌서 높은 철망을 넘는 일은 가슴 덜컹거리는 스릴이 있었다.
(2)
바위가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는 산은 저마다 다른 표정의 바위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바위에 앉아 나도 바위가 되어 세상에서 조급하게 살았던 표정이 아닌
덤덤한 바위 표정이 되어 세상을 내려다 보았다.
어떤 바위는 사모관대를 한 벼슬아치 같았고, 어떤 바위는 치마를 펼쳐 논 아낙네 같았다.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바위틈에 서서 자연의 경이로움에
“와~~여기에 깔리면 압축이 되겠지” 칭찬에 인색한 농담을 했다.
바위틈에나 산 길가엔 진달래가 유독 많았는데 꽃눈이 성냥개비 같았다.
성냥개비는 한달이 지나면 횃불처럼 활활 타오를 것이다.
온 산이 진달래 꽃으로 타오를 4월이면 너도 나도 꽃에 데이고 싶어 산을 오르고,
꽃불에 데인 듯 사람들은 탄성을 지를 게 뻔하다.
(3)
오늘 올랐던 곳은 약사사,족두리봉,향로봉,비봉,사모바위,응봉능선이었다.
난 지명을 몇 번 듣고서는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래서 간 곳을 적은 메모지를 배낭 주머니에 넣어왔다.
이름도 빨리 외우지 못할 뿐더러 얼굴도 기억해내지 못할 때가 많다.
특징 있게 생기거나 내게 말을 걸었거나
나에게 도움을 주거나 했을 경우엔 저절로 외우게 되지만
특징이 없이 수더분 하다던가 대화를 못 나눴던가 도움을 주고 받지 못했을 경우엔
두 번째 만나는 자리에서 상대방이 저번에 뵈었지요? 하고 인사를 해도
모르겠는데요 하고 쑥스럽게 웃어 넘겨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4)
갑작스레 올라온 산행 공지였고, 갑자기 결정한 산행이어서 간식이나 점심 준비를 못했지만
점심은 능봉능선을 지나 진관사로 하산하는 숲속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컵라면이 아닌 끓여 먹는 라면을 먹기 위해 숲 속을 찾아 들었고
햇살이 다정하게 안아주는 바위 아래 신문을 깔았다.
바위아래 누가 두고 갔는지 모를, 얼음이 둥실 떠 있는 물병의 물을 마신 일행에게
아무거나 마시면 안되는데... 요구르트에 독극물 넣은 사건도 있었는데...했더니
산에 오는 사람들은 그런 짓을 안 한다고 했다.
삶의 터전인 도시의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 외면을 하고 지나치지만
산에서는 수고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를 자연스럽게 주고 받는다.
자연은, 커피 맛을 부드럽게 만드는 프림처럼 사람들 마음을 녹아들게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5)
산 밑엔 진관사 스님들과 함께 해우소를 쓰는 전통찻집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일행은 만장일치로 그 찻집에 들어섰다.
오래된 나무 대문과 그것보다 더 오래 된 듯한 나무지붕으로 덥힌 ‘성시산림’이라는 찻집은
산사음악을 고즈넉하게 풍겨준다.
풍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게 하고,
어디 무릉도원 정자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을 자아내게 한다.
난 갈화차를 시켰다. 칡 꽃차. 칡꽃은 보라색으로 피어나고,
우리나라 산 도처에 자리를 틀고 사는 넝쿨식물이다.
시골에서 살던 사람들은 누구나 질경질경 씹고 다녔을 유년의 칡뿌리.
씁쓰름하고 들적지근하고 끝 맛은 단맛이 오래도록 입속에 남아 있던 그 것.
문간방에 앉아 갈화차를 앞에 두고 창호지 밖으로 놓인 두 길을 보았다.
길 하나는 진관사와 산길로 접어드는 길이고, 하나의 길은 해우소를 가는 길이다.
사람은 항시 두 길 사이에서 갈등을 한다.
지금의 내 모습도 두 길에 서 있으니...
(6)
어느 산악인이 말했다고 한다.
산은 자라지 않으니 내가 자라서 산을 오르면 된다고...
오늘도 나는 자라지 않는 산을 내가 자라 올라갔다.
오늘도 나는 자라지 않는 바위에 올라 자꾸만 자라는 세상을 내려다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