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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사나...


BY 낸시 2005-03-06

여자들 몇이 모여 이야기 하다 그 중의 제일 나이든 사람이 내게 말했다.

"야, 너는 도대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사냐?"

난 그들이 흥미를 느끼고 재미있어 하는 일을 하는 것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우선 해외에서 근무하는 남편을 둔 유한부인들의 공통의 화제 골프, 난 그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결혼기념일 선물로 사 준 골프채, 자기 것보다 두 배는 비싼 거라고 남편이 생색을 낸 것을 조카딸에게 주어버렸다.

레슨 한달, 골프장에 딱 한번 가 보고 골프는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우선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는 사람들 대부분이 즐기는 스포츠라는 것이 맘에 안든다.

난 남과 다른 사람이길 좋아한다.

남과 똑같다면 수 많은 인간 중에 나라는 또 하나의 인간이 존재할 의미가 없을 것만 같아서다. 

시간이 많이 드는 운동이라는 것도 싫다.

인생에서 그 많은 시간을 골프에 소모한다는 것은 주어진 짧은 인생의 낭비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또 하나 그들의 공통의 화제 쇼핑과 선물도 내겐 그다지 흥미있는 부분이 아니다.

가능하면 적게 소유하고 살자는 것이 내가 머리 속에 항상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중의 하나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소유하고 사는 것은 죄악이라고 까지 생각할 때가 있었다.

이 부분 나이들면서 많이 너그러워지긴 했지만 지금도 적게 소유하고 살자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니 살 만한 물건이 그다지 없다.

남편은 그래서 나랑 쇼핑을 가면 재미가 없단다.

여자가 뭘 좀 사달라고 조르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뭘 좀 사려고 하면 옷자락을 뒤에서 당기면서 말리니 무슨 재미가 있냐고 한다.

그런 나는 선물도 달갑지가 않다.

필요치 않은 물건이 생기면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가 고민이니까...

해외 출장이 잦았던 남편이 귀국길에 한아름 들고 오는 선물은 나나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잠시 후 어디론가 다 사라지곤 하였다.

필요치 않은 물건이 집에 있는 꼴을 못보는 사람이니 그런 물건이 생기면 이것은 누구를 줄까 고민하다 누구나 흥미를 느끼거나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주어버리는 것이다.

그 일로 남편과 다투기도 여러번 하였다.

그래서 남편이 출장가기 전  당부는 이런 것이 되었다.

"여보, 이번에는 아무것도 사 오지 말아요. 아무리 신기한 것이 있어도 그냥 눈요기만 하세요."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보석, 그것도 내 흥미거리는 아니다.

여지껏 살면서 결혼할 때 남편이 사 준 실가락지 외에는 내 몸에 몇 달 이상 머문 것들이 없다.

그것도 누구 주어버린다.

사람들이 흔히 즐기는 커피, 나는 그것도 삼가고 산다.

코 끝에 감도는 커피 향이 좋다고 느끼긴 하지만 혀 끝에 닿은 맛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커피를 사지는 않는다.

선물로 들어 온 것도 집에 두지 않는다.

무엇에건 매이는 것이 싫어서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허전하다는 둥, 정신이 들지 않는다는 둥...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아예 커피 마시는 습관을 들이지 않는다.

그저 손님 노릇 갔을 때 얻어 먹는 커피를 즐기는 것으로 족하다.

노래와 춤, 이것과도 거리가 멀다.

타고난 음치이기도 하고 남의 구경거리가 되는 일이 싫기도 하다.

돈, 이것도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 가지건 그게 무슨 상관이랴...하고 살았으니까...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계를 해서 곗돈이 생기던 다음 날, 그것도 누굴 줄까 생각하다 누구 주어버렸다.

그럼 나는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사나...

사실은,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항상 즐겁다.

그 날 할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고 뛰기도 한다.

한동안은 바느질이 내 취미였다.

천을 사다 이것 저것 만들어 나도 입고, 아이들도 입히고, 집안 장식도 하고 이 사람 저 사람 선물도 하고 하는 일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모른다.

뜨게질과 십자수에 흥미를 가졌던 적도 있다.

한땀 한땀 정성들여 놓은 십자수 액자를 벽에 걸어 두는 것도 좋고 선물하는 것도 좋았다.

사람들은 그 선물을 너무도 좋아하였다.

그 다음 내 취미는 꽃과 나무를 가꾸는 일이었다.

이사가서 이삿짐을 풀기도 전에 마당을 가꾸고 이삿짐을 싸고 나서도 물을 주며 정성을 쏟았다.

이사가는 곳마다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게 되었다.

내가 가꾸는 꽃과 나무들이 이웃들의 마음을 내게 열어 준 것이다.

이사할 때가 되면 이웃들은 무척 섭섭해 하였다.

붙들고 우는 사람도 생겼다.

결혼하고 서른 번에 가까운 이사를 다닌 나는 그 사람들과 오랜 친분을 쌓을 기회조차 없었는데...

언젠가 옆집에 살던 유태인 할아버지가 꽃을 열심히 가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You must be a productive person."

그 말을 듣고 생각하니 그럴 듯 하다.

내가 재미를 느끼고 사는 세상은 뭔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남이 만들어 주는 것보다 내가 만들어 가는 내 삶을 더 좋아한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노릇을 하는 것 같아 그것이 더 좋다.

결혼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친구가 내게 물었다.

"너 칼질 잘하니?"

"으~음, 음식은 잘 못하는데 칼질은 그런데로 잘 되는 것 같은데... 왜?"

"칼질을 잘 하는 사람은 자기가 벌어서 남을 돕고 살아야 되는 거래..."

친구는 그 말을 내가 안쓰럽다는 의미로 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단칸 월세방에 살면서 맞벌이 한 돈은 모두 시동생들 학비로 써야 하는 내 처지가 불쌍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평생 남의 도움을 받고 사는 것보다 도움을 주고 사는 것이 더 좋지...'

하지만 그 말은 혼자 속으로 했다.

너무 잘 난 체 하는 것 같아서...

요즘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되어 아침부터 깜깜해지도록 꽃밭 만드는 일을 하면서 한 없이 즐겁다.

 허리도 아프고 팔 다리도 아프고 지쳐서 숨을 헐떡이기도 하지만 재미있다.

지나가는 이들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보는 것이 그리 즐거울 수가 없다.

달라지는 그 지역 풍경이 얼마나 가슴 벅차게 신나는 일인지 모른다.

'오늘은 어제 잡풀을 걷어낸 배롱나무 뒤쪽으로 미국 파리똥 나무를 심고, 그 앞엔 쩔쭉을 심고, 그늘을 좋아하는 철쭉을 위해 철쭉 앞 쪽엔 칸나를 심고, 칸나 앞 줄에 코스모스를 심어야지... 어제 심어 둔 맥문동이랑 잘 어울릴거야... 이번 일이 끝나면 육가와 칠가 사이 지저분한 뒷골목을 정리하고 분꽃씨를 뿌려 두어야지...'

날마다 눈을 뜨면 그 날 할일들을 머릿 속에 그리며 흐뭇하기만 하다.

예쁜 옷 차려입고, 곱게 화장하고, 남편 따라 파티에 가서 내가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유명 메이커 가방이니 옷이니 보석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모른다.

내가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사냐고?

내게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