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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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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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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는 왜 내냐구........


BY 그린미 2005-03-04

남편은 못 말리는 선천성 다혈질이다.

두 마디만 건너가면 얼굴색깔이 대춧빛으로 염색이 된다.

머리위에 냄비 얹으면 끓고도 남을 열을 발한다.언성도 높아진다. 말도 더듬는다.

그러나 궤변에 익숙해진 남편의 말에 어느 정도 맞장구 쳐 주어야 만 그의 얼굴색은 본색으로 돌아온다. 더럽고 치사해도 일단 발등에 물을 쏟아 부어야 만 뒷탈이 안 생긴다.

시시콜콜 조리있게 조곤조곤 따지다 보면 '정당'이 '부당'으로 몰리게 된다.

대책없고 씰데없이 울컥거리고 나서는 뒷감당도 옳게 못하면서 매번 불끈거린다.

이렇게 얼굴이 대춧빛으로 염색 되는 날 밤은 어김없이 개인 플레이다.

 

잠자리에 들면 남편과 나 사이엔 전날에도 없던 넓직한 도로가 생긴다.

마치 '모세의 기적'에 나오는 홍해와 진도 앞바다가 둘로 갈라지는 현상을 연상케 한다.

이불도 따로 덮는다. 돌아 누운 어깨 높이가 그날 따라 더 높아진다.

이때부터 자라는 잠은 안 자고 신경전에 들어간다.

이불을 따로 덮었으니 밀고 당기는 치사한 짓은 안 하지만 괜시리 돌아 누운 어깻죽지에 바람이 이는 듯한 섬뜩함을 느낀다.

늘 그래 왔듯이 트러블이 생기는 무슨일이 있어도 그날 풀어야 만 다음날 까지 연장전이 발생 안 한다.

주로 화해의 몸짓은 내가 도맡아서 해야 하는, 광대놀음에 신명을 떨어야 하는 비운의 곡예사다.

남편의 곰같고 산같은 자존심은 토네이도에도 흔들리지 않는 붙박이다.

 

강도높은 트러블이 있는날은 매듭풀기가 쉽지 않다.

오장육부 다 개(犬)에게 던져주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팔자에도 없는 간신이 되어야 한다.

충신 노릇 하다보면 삼족이 멸하는 희안한 역사를 내손으로 쓰야 한다.

'에구..당신말이 백번 맞는데.......'

'맞아요, 내 소견이 좀 짧았네요...머....'

'그래요....견해의 차이지만 그래도 당신 의견이 더 일리가 있네........'

겉에 붙은 아첨으로 일단 숨통 트여놓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벼르기는 결코 잊지 않는다.

반격의 기회를 잡는 날엔 남편은 고스란히 내 파편을 맞아야 한다.

그 기회라는게 날이면 날마다 오는게 아니고 가뭄에 콩나듯이 드문드문 찾아들때 포착을 해야 한다. 눈치없이 홍수에 물 들이붓는 어리석음은 쥐약이다.

남편의 기압이 고수위 일때는 어떤 말을 해도 대춧빛을 띄지 않는다.

엉덩이 슬슬 문질러 가며 입으로 달콤한 사탕 물리면 어김없이 내 미끼에 걸려든다.

'부당'이 '정당 내지는 온당'으로 뒤집어 지는 건 순식간의 일이된다.

시퍼렇게 내밀던 궤변이 '당' 이 바뀌면서 고개를 꺽는다

그러나 분위기 파악을 잘못하면 공들인게 말짱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이럴때 대비해서 나에겐 hiddn card가 있다.

남편은 내가 아프다고 하면 슬슬 기다못해 엎어지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더 심하게 표현하면 경기를 한다.

이건 나의 무기지만 자주 쓰면 효력발생은 커녕 양치기 소년 처럼 부작용을 유발하기에 조심해야 한다.

가끔씩 쓰야 약발을 잘 받고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된다.

 

돌아누워서 곰곰이 머리를 굴렸다.

이럴땐 구미호의 기지를 발휘 해야 하는데 돌아누운 남편의 숨소리가 불규칙 한걸 보니 아직 잠이 안 든 모양이다.

잠이 들어야 효과 만점인데 이런 기분으로 쉽게 잠들긴 틀려 버렸고...어쩐다......

서로 뒤척거리는 소리와 불규칙한 숨소리 만 들릴 뿐 캄캄한 방안은 적막이 흐른다.

오늘은 결코 간신배가 되지 않으리라.잘못한거 없이 무조건 조아리고 셀셀거리는 따위의 낯 간지러운 짓은 하지 않으련다.이 나이 되도록 목에 깁스하고 언성 높힌 적 없는 내가 시도하기엔 가슴이 떨려왔지만 오늘은 본때를 보여 주리라.

언년은 승질업냐?

 

돌고 돌아가는 것 보다는 지름길을 택하는게 경제성이 있다.

매듭을 풀려고 머리를 쓰다보니 갑자기 배가 아파온다..........정말로.....

이상하다...저녁에 뭘 잘못 먹었나......생리때도 아니고............

은근히 꾀병을 할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화장실을 몇차례 들락거려도 여전히 아프다.이젠 戰意를 거의 상실하고 나니  불안한 맘이 생겼다.예전에도 이런 증세로  한밤중에 응급실을 찾았는데 왈칵 겁이 났다.

오른쪽 아랫배가 찢어지는것 같이 아프고 속도 자꾸 메스꺼웠다.

오른쪽이라면 맹장염?..아니면 여성 특유의 질병??

혹시 암이 아닐까.......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암 생긴다는데...

그렇다면 원인 제공자는 당연히 남편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아픈 거 보다는 분한 생각으로 속이 더 끓었다.

 

혼자서 한동안 씨름하다가 할수없이 남편을 흔들려고 했지만 그만 두었다.

아무래도 내가 티를 내는것 보다는 남편이 놀래서 일어나는 성의를 보고 싶었다.

이 와중에도 이런생각을 하는 내가 참 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순간적인 빳빳한 오기가 꺽이지 않는다.

짐작대로 남편이 일어나서 불을 켠다...한마디도 않고......

엎어져서 꼬부리고 누워 있는 나를 보고 어떤표정을 짓고 있는지 쳐다 보고 싶었지만 고개들 용기가 없을 정도로 진짜 아팠다.

"이봐.....어디가 아픈데?"

갈라서 누운 뒤로 처음 입을 뗀 남편의 음성은 걱정으로 풀이 죽어 있었다.

"몰라!!........"

앙칼지게 쏘아 붙히고 나니 한편으로는 미안했고 또 한편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옷입어..응급실로 가자..내려가서 차 뺄테니까..."

남편은 주섬주섬 옷을 챙기는 게 실눈 뜬 틈새로 보였지만 제어할 맘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많이아팠다...내가 죄 받았나.....

일어서는데 갑자기 설사가 났다...그리고 어지럼증과 토악질까지.....

위 아래로 토하고 나니 온몸이 덜덜 떨리면서 진땀이 비질 거렸다.

몸에 붙은 진기란 진기가 다 빠져 나간것 같아서 그대로 자리에 엎어졌다.

속이 조금은 진정 기미가 보이자 걱정스러이 들여다 보는 남편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와 있었다.

"괜찮은가.........."

머리에 손을 엊어보는 남편의 손을 잡아 내리고 기어이 한마디 뱉았다.

싱겁게 막 내리자니 쪽팔리고 그래서 아픈 핑게거리는 남겨 놔야 재발을 않을 것 같았다.

한귀퉁이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그러게 화는 왜 내냐구?......스트레스성 복통이란거 몰라여??"

 

꾀병 부리려다가 정말로 응급실 신세 질뻔 한 이 헤프닝을 두번다시 겪지 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