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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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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이발사...


BY 낸시 2005-02-24

아버지에겐 밀고 당겨서 여닫을 수 있는 책상 서랍보다 약간 큰 나무 상자가 있었다.

그 속에는 날렵하게 생긴 가위, 머리깎는 기계, 면도기, 비누칠 할 때 쓰이는 솔, 머리카락을 털어내는데 쓰이는 솔, 면도기 가는데 쓰는 가죽 끈, 빗, 머리깎을 때 몸에 두르는 천... 등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가끔 농사꾼에서 이발사로 변신하곤 하였다.

그런 날은 언니도 동생도 모두 머리 깎는 날이다.

사촌들도 불려와 아버지의 손님이 되었다.

이발사가 된 아버지는 앉은뱅이 책상 밑에 달린 미닫이 문을 열고 그 상자를 꺼냈다.

먼저 가위랑 면도기를 가죽 끈에 문질러 날을 세웠다.

그 다음 광 앞에 재봉틀 용 동그란 의자를 내 놓고 앉힌 후 머리 깎을 때 쓰는 천을 몸에 두르고 옷핀으로 목에 고정했다.

머리에 물을 묻히고 빗으로 머리를 싹싹 빗어내렸다.

그런 다음 앞머리는 눈썹이 보일락 말락, 옆머리는 귀보다 약간 위로 싹뚝싹뚝 잘랐다.

빗질을 뒤에서 앞으로도 하고, 앞에서 뒷쪽으로도 하며 다시 잘랐다.

바람이 불어도 머리가 가지런하게 보이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다 자르고 나면 솔에 비누를 묻혀 거품을 내고 뒷 목에 고루 바른 후 면도기로 밀었다.

그리고선 옷솔을 이용해 잘려진 머리카락을 털어내었다.

좀 길게 잘라달라고 해도 항상 짧게 잘라서 깍끌깍끌한 목 위를 만지며 나는 간혹 투덜거리곤 했다.

중학생이 된 언니 머리는 내 머리처럼 앞을 싹뚝 자르지 않는다.

핀을 꽂을 것을 생각해 가르마를 타고 자른다.

뒷머리도 나처럼 짧지 않다.

면도자국이 파스르름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언니 머리를 자르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도 그런 머리가 하고 싶어 어서 크기만 기다렸다.

남자 머리는 그냥 기계로 박박 밀면 된다.

기계에 덧 씌워 머리를 좀더 길게 보이게 하는 덧집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어린아이들은 그것을 이용하지 않고 그냥 박박 밀었다.

 

나는 지금도 단발머리를 좋아한다.

하지만 아직껏 우리 아버지처럼 가지런히 머리를 잘라주는 미용사를 만나본 적이 없다.

집에 와서 머리를 빗다보면 여기저기 삐죽삐죽 보이는 머리카락이 있다.

우리 아버지처럼 바람이 불 때를 생각해서 앞에서 뒤로, 뒤에서 앞으로 여러번에 걸쳐 빗질을 하며 머리를 잘라주는 미용사도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