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별 이유도 없이 뚱한 얼굴이다. 말도 별로 고분하질 않고 동생에게도 퉁명스럽다.
이제 며칠 뒤면 또 오랜 시간 이별해야 하니 괜히 짜증나고 심란하겠지.
나는 그렇게 이해하려고 애를 쓴다.
그래도... 그래, 또 그래도...란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민다. 그리고 내가 화가 난다.
그럴수록 더 다정하게, 더 따뜻하게 지내다 가야지. 왜 저렇게 툴툴거리는 거지?
언제나 철이 들까...
처음엔 조금 서운하던 마음이 자꾸 커져만 간다.
하루종일 찌푸린 얼굴이던 딸아이. 결국은 그 얼굴로 잠자리에 들려고 한다.
이미 꼬인 맘이 된 나는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그렇게 집이 싫어? 집 떠나기 심란스러워 우울한 아이에게 말도 안 되는 말로 신경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아이는 기막히다는 표정만 잠시 지을 뿐, 변명조차 없다.
나는 슬슬 약이 오른다.
그래, 그렇게 엄마 하는 말에 대답도 하기 싫은 걸 보니 차라리 우리 떨어져 지내는 게 훨씬 잘 된 일인 것 같아.
속에도 없는 말을 자꾸 내뱉는다.
이런 말을 하면 아이가 <아니야, 엄마 괜히 혼자 속상해서 그랬어. 내가 잘못했어...> 라고 해 줄 것 만 같다.
그런데 등만 돌리고 아무 말이 없다.
등짝이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맘이 생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물리적인 힘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계속 독설 비슷한 말만 퍼붓게 된다.
남편은 일이 있어 한밤중에 사무실로 나갔다.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나, 지금 너무 약이 올라 잠이 안 오네...>
남편도 하루종일 심통부린 딸아이를 봤으니 내 맘을 알 테지...
<괜히 그런 날이 있을 거야. 너무 건드리지 말고 그냥 가만히 내버려둬. 아까 보니 춥다고 하던데 감기 약이라도 좀 먹이고...>
옆에 누운 딸아이를 보니 약도 먹여주고 싶고 안아주고도 싶다. 며칠 뒤면 얼마나 그리워질 아이이던가....
그런데 무슨 심보인지 나도 모르게 딸아이만 방에 남겨두고 문을 쾅 닫고 나와버린다.
딸아이 잠시 따라나온다.
<엄마, 같이 자.> 그러나 쌀쌀한 음성이다.
곧 죽어도 절대로 미안하다, 자기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류의 변명이 없다.
괘씸스러워서 그냥 싸늘한 시선만 던져주었다.
아이가 잠이 들었다.
슬슬 맘이 약해진다.
몸이 좋지 않다는 말을 아침에 했었는데...
아주 잠깐, 집 떠나기가 심란하다고도 표현했었는데...
그래도 그렇지...
손님이 왔는데도 인상쓰고 앉아서 내 맘을 그렇게 불편하게 만들고... 그래서 참 미웠다.
하지만 잠자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노라니 맘이 짠하다.
쌍화탕을 데워와서 자는 아이 깨워 먹였다.
그래도 끝내 안아주진 않았다.
잠이 오질 않아 혼자 컴 앞에 앉았다.
울적한 맘에 뭔가 글을 끄적이려 하는데 바람소린지 문 소린지 덜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님이 거실로 나오신 걸까?
혼자 야밤에 불 켜놓고 컴 앞에서 뭘 하나 언짢아하시지 않을까....
걱정도 팔자라 쓰던 글 날리고 컴 끄고 조심조심 나왔다.
그러면서 내 신세만 한탄한다. 왜 이렇게 사나..
아이 옆에 눕는다. 손만 잠깐 잡아준다.
혼자 생각한다.
참 못됐다.. 누구? 바로 나.
내 속을 못 이겨 자꾸 내가 나를 처량하고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어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
딸도 어머님도 그냥 좀 그럴 뿐인데 내가 상황을 최악으로 자꾸 몰고 간다.
바보 같이 살려면 아예 미움이라도 없던지... 정말 착하고 고운 사람이던지...
내가 조금이라도 투덜대면 사람들은 다들 그래도 나 같은 사람 없다며 칭찬을 하지.
이렇게 꼬이고 꼬인 내 속도 모르고...
정말 착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요즘 난 자꾸 내가 싫어진다.
용감하지도 못하고 착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내 것도 못 찾고 남 속은 긁고
이렇게 글로 투덜대면 내 속이 좀 시원해질까?
또 이 글도 날라가버릴까?
아침에 아이가 방긋거리며 내게 안긴다.
<엄마, 죄송해요. 어젠 정말 아침부터 내내 기분이 안 좋았어요.>
나도 화가 풀린다. 이 말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러나 지금 아이는 하라는 공부를 덜 해서 나한테 혼나놓고도 쿨쿨 잠만 잘도 잔다.
난 정말 도나 닦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