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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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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이라는 덕목을 빼고 살아보니...


BY 낸시 2005-02-15

"이 사람 사는 것이 처음엔 이샹했는데, 같이 살면서 보니까 참으로 편한 방법이더라구요. 그래서 나도 이제 그렇게 삽니다."

교회 식구들과의 모임에서 남편의 말을 들으면서,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싶다.

하긴 강산이 변해도 두 번하고 반이 변할 시간이니...

남편은 모범생 중의 모범생이었다.

삶이 정해진 틀에 꼭 맞길 원했다.

조금만 그 틀에서 벗어나면 화를 내고 비난하였다.

그 틀은 너무 좁아 사실 자기도 그 틀을 벗어날 때가 종종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가진 그 틀에 아내와 자식을 끼워 넣으려고 하였다.

난 가능하면 틀같은 것이 없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

물론 그렇게 바란다고 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도덕도 있고 예의, 염치, 체면도 있다.

단지 너무 엉성해서 때론 다른 사람의 눈에 없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난 권위나 질서에 도전하길 잘한다.

어쩌면 그런 것의 존재를 무시하고 사는 지도 모른다.

윗어른을 대하는 공손함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에이, 아버지 그냥 편하게 살아요.

양반이 뭐  좋은 것이라고...

아버지가 젊잖은 표정 짓고 무게 잡으면 난 웃기더라..."

어렸을 적 젊잖은 어른이라고 동네에 소문 난 아버지를 꾹 찌르며 한 말이다.

아버지랑 나는 친구 같았다.

내가 화가 나면 아버지는 무게 잡고 꾸짖기 보다 실실 놀렸고 화가 나서 굶고 있던 나는 발딱 일어나 아버지 밥을 빼앗아 먹었다.

"에이, 우리 할아버지가 무슨 선비야.

팔난봉에 날건달이지..."

고모들이랑 작은 아버지들이 제사에 모여 할아버지를 정말 학처럼 고고한 선비였다고 추억했다.

그말 을 듣고 내가 한 말이다.

할아버지는 제법 유명인사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족들 생계보다 자신의 품위 유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평생을 산 할아버지가 나는 못마땅 했다.

가족은 굶거나 말거나 당신은 선비 행세를 했다는 할아버지에겐 따르고 흠모하는 여인도 많았단다.

그런 할아버지를 팔난봉에 날건달이라고 깍아 내린 것이다.

고모들과 작은 아버지들은 그런 나를 유리그릇 다루듯 조심했다.

아마도 자기들의 약점이 내 입을 통해 나올까 염려되었을 것이다.

"할머니, 아버지가 미쳤나 봐요!"

시할머니에게 한 말이다.

사실 해 놓고 나도 깜짝 놀란 말이다.

시아버지가 사리에 맞지 않은 말을 그 무렵 많이 하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모르겠다."는 말로 시할머니는 대답했다.

시아버지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긴 하지만 손주며느리의 그 말에 동조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시할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나 시아버지는 엉터리 같은 주장을 멈추었다.

내가 못마땅하면 남편이 말했다.

"할머니도 당신이 보통은 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ㅋㅋㅋ

"에이, 어머니는 욕심이 너무 많아요.

그렇게 욕심이 많으니까 신경성 병에 걸려 정신과약을 먹어야 하는 것이라구요.

맘을 비우세요.

어머니 만큼 가진 사람이 어디 흔한가요.

더 가지려고 욕심부리면 맘이 불편해서 몸도 따라 아픈 것이라구요.

욕심 그만 부리고 맘을 편히 가지세요."

아픈 시어머니에게 인정도 없이 아픈 곳을 찌르기도 한다.

시어머니는 여전히 욕심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욕심을 버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중이라고 하였다.

"그건 사모님이 잘못한 거예요."

남편이 이등서기관 시절 공사 부인에게 한 말이다.

거기 모인 부인들 얼굴이 모두 파랗게 질렸다.

"내가 화 안나게 생겼냐?"

화가 난 소리로 공사부인이 받았다.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 있는데서 그렇게 화를 내면 듣는 사람 입장이 뭐가 돼요. 둘이만 있는 조용한 자리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요."

조금도 기 죽지 않고 말대꾸를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부인이 나중에 말했다.

자기 딸에게 나처럼 살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자기가 보니 샐샐 웃으면서 할 말 다하고 사는 모습이 부러웠단다.

공사부인은 날더러 말했다.

"나도 못하지만 너도 참 내조를 못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몇 년 뒤 남편의 진급에 그 때 공사였던 분이 힘써 준 것을...

"목사님, 왜 십일조를 내야 한다고 하지요? 성경에 보면 우리보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던데... 예수가 그랬잖아요. 세상의 임금들이 자기 자녀에게는 세금을 안 받고 백성에게만 세금을 받듯이 하나님의 자녀는 성전에 들어갈 때 성전세 같은 것 필요 없다고... 구약시대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이니 십일조를 냈다고 하지만 신약에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데 왜 지금도 십일조를 내라고 하지요?"

성경공부 지도를 하던 목사는 웃고 말았다.

전도사는 처음 듣지만 그럴 듯한 말이라고 노트에 적어야겠다고 적었다.

난 교회를 가도 다른 사람이 인정하는 목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들만 셋이라는 그 목사는 나 같은 며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나는 아이들을 키울 때 윗어른에게 공손하라는 덕목은 빼고 가르쳤다.

어른들 말을 잘 들으라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그보다 나는 내 아이들의 영혼이 자유하기를 바란다.

누구에게든 할 말은 하고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손해보다 이로울 때가 많은 것을 경험으로 안 것이다.

남편은 이제 자기도 나처럼 살려고 한다고 하였다.

공직에 있을 몇 년 동안 자기도 그리 했었는데 정말 좋더란다.

윗사람에게 버릇없다고 찍히기 보다 오히려 윗사람들이 그런 자기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하더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