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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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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아버지의 지게 짐


BY 예운 2005-02-13

 

  빨강색 장화, 푹 눌러 쓴 모자, 고무장갑 낀 손에 호미

자루를 들고 나는 오늘도 밭으로 간다.

코끝으로 스치는 섣달의 바닷바람에는 해초향이 여전히

묻어나고 목냉기 고개를 넘으니 점점이 떠 있는 섬들과

일렁이는 파도가 내 앞으로 다가 온다.

내밭이 보인다. 온 산을 헤집고 다니며 캐다 심은 구절초밭이다. 심어 놓으면 비가 오고 심을 날이 되면 비가 와

서 빈 땅마다 뿌리가 뻗어 이제 그 뿌리를 떼어다 다른

밭으로 옮겨 심게 되었다.

그 좋은 밭에다 잡초는 뭣한디 심어 상가? 그것이 뭐요?

약초여? 돈이 됑가? 일년내 동네사람들의 물음에 답하기

도 입 아프다시더니 서울 아들네로 가신 할머니의 묵혀

릴 밭까지 한 뙤기 얻어 주신 어머님은 든든한 나의 후원자가 되어 주신다. 이제는 동네 사람들의 물음 정도는

경 안 쓰실꺼란다. 그 밭은 느거 아버지 등 댈 땅이니

그건 알고 밭을 벌라시며 너 하고픈 일이니 원이나 없이

해보 시며 허락 하신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년

지났다. 차디찬 해풍 등으로 맞으며 바닷가 옹벽을 기어

다니며 캐다 심었더니 가을 한하고 하얀 꽃이 피었었다.

따고 돌아서면 다시 피어나는 하얀 구절초꽃 속에서 나

는 아이들의 행복에 겨운 투정을 들으며 즐거웠다.

엄마 꽃 안 징하요? 난 징하요. 인자 꽃 안따고 싶소.

구절초 밭 둑으로 해국과 산국도 심었다. 구절초보다 늦

게까지 피는 산국 보는 재미도 괜찮았고 깨알깥은 노란

산국꽃차 향이 좋아서 올해는 더 심기로 한다.

이러는 나를 두고 사람들은 돈벌이가 좋아서 더 늘린다

고 생각 하는 듯 싶다. 아직은 시작일 뿐인데.

어떤 일이고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힘이 들고 외로운 자

기와의 쌈질에서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이 오늘도 나를

밭으로 향하게 했다. 설날 선물로 돌린 베개와 차가 씨앗

을 물어 날으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는 절반의 성공은 했

다 믿으며 콧노래 흥얼거리며 뿌리를 심고 있는데 동네

어르신이 가까이 오셔서 이것 저것 물으신다.

젊은이가 정초부터 열심인 것이 보기가 좋다시며 지게에

땔나무 한짐을 지고 동네로 내려 가신다.

지게 진 뒷모습을 보며 친정 아버지 생각에 목이 아팠다.

언제나 당신 키보다 높은 짐을 지고 다니시면서도 그도

당신 욕심에 덜 차 하시는 친정 아버지의 지게.

여름내 소풀을 베어다 말려 겨울 날 준비를 하신다. 지금

도 겨울에는 소죽을 끓여 먹이는 것이 마땅찮다고 남들

처럼 볏짚 썰어 사료 섞어 먹이시라 해도 영 고집을 피우

시는 친정아버지는 큰 언니의 애까심이다.

훅 소풀 말리는 향긋한 냄새가 나는 듯 하다.

여름이면 언제나 마당 가득 말려지는 건풀 냄새가 좋아

방문을 열고 코를 내밀고 있노라면 사랍문으로 아버지

키 배로 높이 쌓인 소풀 짐이 들어섰다. 우리 아버지는

기술도 좋다. 저렇게 높이 어떻게 쌓았으까?.

어린 마음 내내 그것만 궁금하다가 철이 들기 시작하면

서 아버지의 지게짐이 싫어졌다.

작대기 밑으로 왼쪽 무릎을 꿇고 오른쪽 다리에 힘을 주

한번에 일어나야 질수 있는 지게짐 질때마다 끙하는

리에 내 귀가 아프기 시작했다.

무섭기만 해서 싫던 아버지 모습은 잊혀지고 지게짐은

무시로 나를 아프게 한다. 소를 키워 동생들 대학을 보내

셨다. 어느땐 한해에 두명이 걸릴때도 있었지만 새끼를

잘 낳아 주는 소가 있어 가능했노라시며 소키우기에 정

성을 쏟으시는 아버지.

한여름에는 마굿간 구유에 시원한 물을 부어 주고, 모깃

까지 피워 키운 소가 새끼를 낳으면 막내 동생은 저건

내꺼 했다고 하더니 막내 시집 가던날 식을 마치고 집에

가니까 아버지 소가 새끼를 낳고 있었다.

아버지한테 우리 일남 육녀는 무거운 짐이었으리라.

아버지 키보다 배로 높이 쌓은 지게짐 보다 훨씬 무거운

짐이 있어 지게짐이 되려 가벼웠던건 아닐까 싶어 또 마

음이 아파 온다. 나는 무거운 짐 아니고 싶어 아버지 떠

나 부산으로 갔었는데 그것이 지금은 아버지의 영원한

짐이 되어 버렸다. 나만 보면 미안해 하신다. " 그 때 너

를 부산으로 보내는게 아니었는데 미안하다." "아버지 내

가 좋아서 그랬는데 아버지가 왜 미안해요" 둘이 손 마주

잡고 엉엉 울다가 친정 식구 다 울려 버렸던 때도 있다.

나한테 미안해 하시는 아버지 짐 벗어 드리려면 내가 잘

살아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