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6시에 눈이 떠진다.
항상 똑같이 차가운 생수 한잔 들이켜고
뜨거운 커피 한잔 머그잔 가득 마시고..
차거움이 뜨거움이 뱃속에서 뒤엉켜 드디어 소식이..
음..뭐부터 해야하나?
벌써전부터 머릿속엔 오늘 해야할 일 하나하나 차곡차곡 순서껏 세워 놨는데
다시 확인작업 들어간다..
그리 손이 빠르지 않은 타이틀만 맏며느리인 조그만 여자
무슨일을 하든지 머리속으로 먼저 계획 부터 세우는 여자..
일남삼녀중 둘째로 자라
일솜씨는 영 젬병이고 눈만 입만 까탈스런 여자..
팔자라는게 있기는 한가보다..
어려서 부터 일과는 별로 인연이 없었다.
허약한 체질탓도 있었겠지만 둘째의 특성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던 나는
아부지에겐 믿을만한 딸이었고 엄마에겐 되먹지 못한 계집애 였고
언니에겐 버거운 동생이었고 동생에겐 무서운 언니였다.
난 맏이의 특권을 내세워 힘으로 제압할려는 언니가 항상 우스웠고
언니로서의 인정을 못받는다 생각한 언니는 막내동생을 지 편으로 만들어
나를 외톨이로 만드는 걸로다 나에게 복수를 했다..
항상 바쁘셨던 엄마는 언니에게 집안일이며 당신 아이들 뒤치닥거리
그외 소소한 모든일들을 언니 마음대로 할수 있는 특권을 부여했다.
물론 막둥이 남동생 만은 예외로 두고
언니 진두지휘하에 모든일들이 착착 진행되어 질려는 찰나
항상 딴지를 걸던 되먹지 못한 가스나..
치사하게 먹을걸로다 복수를 하려던 언니는
그것마저도 무시해버리는 내게 참담한 심정이었음을 고백 했었다.
커가면서 살림꾼 언니는 고스란히 막내에게 훌륭한 그 실력 전수했고
둘째는 여전히 열외의 자리에서 그런 그들을 무시했다.
극성맞을 정도로 자식들을 챙기시던 엄마는
먹거리도 당신 손으로 다 만들어 먹이셔야 했고
언니와 막내는 그런 엄마의 훌륭한 조수로 자리매김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아이러니한 부분은
최종적인 맛은 언제나 내게 결정권을 주셨다..
그러니까 소소한 잔일은 언니와 막내를 믿고 맡겼다면
결정적인 마지막 순간엔 나의 판단에 모든걸 맡기신거다..
그러니 언니가 보기에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궂은일은 자기 차지이고 저넘의 가스나는 다 준비해 놓으면
어디선가 슬며시 나타나 '맛이 어떠네..저떠네..' 하며 타박을 놓으니
그건 결혼을 하고나서도 그랬고
언니가 미국으로 가버리기 전까진 계속 되어왔다.
막내며느리로 시집 갔지만 맏이 역활 톡톡이 했던 언니는
결국 그 자리 힘겹게 힘겹게 내어놓고 태평양 건너 머나먼 나라로 훌훌 떠나 버렸고
언니의 조수로 훌륭히 맡은 바 임무 충실히 이행하던 여동생은
아들만 셋있는 집 맏이로 시집가 여직껏 그 무거운 짐에 헉헉대며 살고있다.
둘째인 나는?
외관상으로 볼때 내 삶의 모습은 입 떡 벌어질만하다..
시누님 위로 다섯분에 배다른 시동생에 살아 생전 항상 손님 처럼 쌀쌀맞게 대했던 둘째시어머니..
게다 동서까지도 남만도 못한 사이였으니..
외견상으로 보여지는 내 팔자는 일독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게 분명한데
왠걸?
희한하게 결혼전 살아온 그 모습 그대로였다..
큰시누와 나이 차이 별로 없었던 시모는 왠지 나를 어려워 하셨고
당신 며느리 들이시고는 아예 대놓고 나를 손님 취급 하셨고
나는 여전히 언저리에서 이유없는 미움을 동서에게 받아가며
서성거려야 했다..
이제 둘째시모 돌아가신지 삼년째..
슬그머니 자기 자리 내게 밀어놓은 동서 대신
갑자기 시댁의 중심에서 내가 진두지휘하고 있다..
실속은 하나도 없고 책임만 떠맡긴 형국이라
처음엔 부화가 치밀어 올라 코뿔소 콧김뿜듯 씩씩거렸는데
그래..내가 이 집안의 맏며느리였지..
그동안 잠시 내 자리 다른이에게 뺏긴거였지..
그렇담 그 책임도 원래부터 내꺼였겠지?
어차피 내가 할일이였구먼..
그래..
어차피 내 차지가 될거였다면
어차피 내가 해야 할일이라면
미룬다 해서 미뤄질 일도 아닐텐데
마음 먹기 나름이라더니 그렇게 마음 먹고 나자
갑자기 가슴 한켠이 묵직해 왔다.
맏이는 하늘이 낸 자리라더니..
흠...그렇군..
어차피 해야할 일
오늘도 나는 마음 비우고 부지런히 손놀려
내 능력껏 부지런을 떨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