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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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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들려 준 옛날이야기 하나...


BY 낸시 2005-02-08

옛날에 며느리 꼴을 못보는 시어미가 있었다.

들어오는 며느리마다 꼴을 못보고 내쫓았다.

위로 두 며느리를 쫓아내고 셋째 아들 혼처를 구하는 그 집에, 인근에 시어미 소문이 자자한지라 딸을 주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어떤 처자가 그 집에 며느리로 들어가기를 자청했다.

부모가 말렸지만 자기에게 생각이 있으니 염려말라며 그 집의 며느리가 되었다.

며느리가 된 그 여자는 첫날밤을 치르고 다음날 아침 부모에게 아침인사를 드리기 위해 준비하는 신랑을 가지 말라고 붙잡았다.

신랑이 뿌리치고 가고자 하였으나 새신부가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는 바람에 신랑은 부모에게 아침인사를 드리지 못했다.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신부는 신랑을 붙들고 아침인사를 가지 못하게 하였다.

사흘이 지나 결국 화가 머리꼭지까지 오른 시부모가 아들내외를 불러 물었다.

"너희 친정에서는 그렇게 가르치더냐? 아침마다 문안인사를 거르지 않던 내 아들이 어찌 결혼하자 마자 이리 변할 수가 있더란 말이냐?"

공손하지만 분명하고 또박또박하게 며느리가 대답하였다.

"저희 친정에서 배운대로 부모님께 문안인사를 여쭙기 위해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부모님께서 사당에 다녀오시는 기척이 들리지 않는 지라 그만 그리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말은 공손히 하였지만 시부모가 조상에 대한 예의를 다하지 않으면서 자식에게만 효를 강요하는 모순을 꼬집은 것이었다.

며느리의 말이 이치에 어긋난 것은 아닌지라 다음날부터 늙은 시부모는 새벽에 일어나 찬물로 세수하고 의복을 갖춰입고 조상을 모신 사당에 아침인사를 갔다.

추운 겨울 날 차마 못할 짓이었다.

결국 며칠이 못 가 시부모는 아들내외를 불러 우리도 사당에 매일 문안인사를 생략하기로 했으니 너희들도 아침 문안인사는 하지 않아도 좋다고 하였다.

처음부터 밉보인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곱게 대할 까닭이 없었다.

온갖 트집을 잡고 못살게 굴었다.

그런 시어머니에게 다른 사람이 있으면 한없이 공손한 며느리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시어머니를 공격했다.

꼬집기도 하고, 쥐어 박기도 하고 머리채를 잡아당기기도 하였다.

늙은 시어미가 힘으로는 젊은 며느리를 당할 수가 없다.

시어머니가 비명을 지르고, 이 년이 날 죽인다고 소리질렀지만 아무도 시어머니 말을 곧이 듣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들 혀를 끌끌차며 비웃었다.

"예전에는 그래도 몇 달 혹은 몇 년 씩은 꼴은 보더니 이번에는 들어오자 마자 쫓아낼 생각이군...ㅉㅉㅉ"

결국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내가 잘못했으니 제발 때리지는 말아다오."

"어머니, 그러시면 쫓아내신 두 형님도 불러들이실 건가요?"

"무엇이든 네가 하자는 대로 할 것이니 제발 날 때리지만 말아다오."

그제서야 며느리는 눈물을 흘리며 시어머니에게 무릎 꿇고 자기 잘못을 빌었다고 한다.

그 후 그 시어머니는 쫓아냈던 며느리들을 불러들여 며느리 시집살이 시키지 않고 온 가족이 화목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를 옛날 이야기 책에서 읽기도 하였지만 아버지에게서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왜 반복해서 들려 주었을까?

시집가는 딸에게 시부모에게 효도하고 잘 사는 것이 부모에 대한 효도라고 무조건 시부모에게 잘하고 살라고 신신 당부하신 분이 말이다.

무조건 참고 인내하고 희생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으셨을까?

차마 직접은 말 못하고 옛날이야기를 빗대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결혼하고 좋은 며느리 노릇도 하고, 못된 며느리 노릇도 하면서 세월이 흘렀다.

며느리 노릇을 하면서 내게 그런 옛날이야기를 들려 준 아버지가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참으며 속앓이 하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아버지의 덕이었다.

책 속의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내 아버지의 입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였기에 더욱 생생한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아마, 내 며느리가 될 아이도 이 옛날이야기를 알고 있을런지 모른다.

아니, 틀림없이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때처럼 동화나 옛날이야기 책이 귀한 시절을 보낸 아이들이 아닐테니까...

옛날 이야기 속의 며느리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만이 내 입장은  아니다.

나도 며느리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그 이야기 속의 시어머니가 내 모습일 수도 있다.

며느리에게 잘못하면 그리 망신 당할 수도 있음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할 나이다.

아무리 내 아들을 빼앗긴 상실감이 커도, 폐경기 증후군에 시달려도, 며느리에게 화풀이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심할 일이다.

아버지가 들려 준 이야기는 늙어도 버릴 것이 없는, 내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