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흘리지 말고 빻아요....아깝구만"
방앗간 하는 시동생을 도운 답시고 며칠째 강행군을 하고 있는 나에게 제일 처음 떨어진 어떤 할머니의 타박이었다.
설 명절을 앞두고 그동안 집에서 빈둥거리기만 했던 나에겐 소일거리이기도 해서 한달음에 쫓아 나갔지만 엉거주춤하게 서투른 솜씨로 손님들 - 특히 할머니들 - 비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머슴이 군소리 하기엔 손님들의 기세가 등등했다.
기어가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받쳐 놓을 그릇도 없이 위에서 쌀을 쏟아 부었으니 그대로 바닥으로 흘려버린 쌀가루 - 한줌 정도 - 를 보고 감시 차 지켜보고 계시던 할머니의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세상에 이 아까운 걸......이삭 주워 먹었던 게 얼마 되었다고......"
혀를 차면서 바닥에 흘린 가루를 손으로 쓸어 담으셨다
다 쓸어 담아봐야 한 줌 정도 밖에 안 되었지만 몇 섬을 쏟은 것 같이 역정을 내셨다.
짐승 갖다 준다고 비닐봉투를 찾으면서 한마디 주의를 주신다.
"쌀 한 톨이 무서워서 죽 쒀 먹고 살아왔수 ....늙은이 잔소리라고 흘러 듣지 말고......."
무안하고 미안해서 낯이 뜨거웠다
서투른 솜씨였다고 변명을 하기엔 궁색하다
조금만 주의했으면 실수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
며칠 일 거들면서 느낀 건 젊은 사람들이 훨씬 물렁했다는 거였다.
너그러워서 물렁한 게 아니고 쌀가루 한 줌이 별로 아깝거나 소중하다는 느낌 가질 수 없게
끔 한 풍족한 생활이 만들어낸 부작용이었다
엄마를 따라 온 아이가 가래떡을 먹다가 맛이 없었는지 바닥에 버렸다.
할머니는 아이의 어미를 힐끗 보더니 주워서 쌀가루가 든 봉지에 주워 담았다.
아이의 어미는 아무런 느낌도 받지 않은 듯 해서 내가 대신 변명을 해 주었다.
"요즘 애들 입에는 이 떡가래가 입에 맞지 않나 봐요...달지를 않아서요."
이것도 내 탓인 양 민망했다.
할머니는 연신 혀를 차면서 '요즘 젊은것들은 아까운 걸 몰러...'를 입 속에 넣고 우물거렸다.
방앗간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가 연세 드신 어른들이다
집에서 마땅히 하실 일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쌀이 바뀌거나 주인이 한줌이라도 덜어 낼까봐 의심이 갔기에 지키고 있었다
내 것에 대한 애착은 - 특히 쌀(양식)에 대한 것 - 집착에 가까웠다
젊은 사람들은 맡겨 놓고는 그냥 가 버린다.
어련히 알아서 잘해 주겠냐는 믿음이 앞섰는지 몰라도 한치의 불신도 엿 보이지 않았다.
시시콜콜 간섭하는 것도 이 어른들 몫이다
'뜸을 푹 들여라.......'
'물을 좀 많이 줘라.....'
'간을 알맞게 해라....'
'깨끗한 물로 행궈 달라........'
'쌀 흘리지 마라.....'
사전에 들은 지식 - 노인들이 유별스럽다고 했다 - 이 있어서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실수로 인한 것에 너무 야박을 부릴 때 엔 슬며시 화가 나기도 했다.
주인(시동생)은 실실 웃으며 한쪽눈을 찡그렸다.
모른 채 하고 그냥 넘어 가라는 무언의 제스쳐 였지만 간혹 속사정 모르는 손님들이 머슴 취급하고 삐딱하게 나올때면 헛 웃음이 나온다.
내 일거수 일투족에 시선을 박고 있는 손님(할머니)들 눈초리에 등어리에서는 식은땀이 났다.
괜히 잘 하다가도 지켜보는 시선을 의식했을 때 엔 꼭 실수를 한다
어렵고 힘든 시대에 살아온 어른세대와 물질이 풍족한 시대에 살고있는 젊은세대와의 가치관은 엄청나게 차이가 있다
맛없고 영양가 없어도 배만 부를 수 있으면 무어든 먹거리가 되었던 시절에는 어느 한 가지라도 소중하고 아깝지 않은 게 없었다.
그러나 요즘의 먹거리는 선택할 수 있는 풍요로움으로 인해서 예전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조건들이 달라붙었다.
영양가 있고, 맛있고, 살 안찌는 다이어트 식품에다가 건강식품 장수식품이라는 거창한 팻말까지 가세를 해서 먹거리에 대한 소중함은 잊고 산 지 오래다.
예전에는 명절이 곧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이 날 만큼은 배도 부르고 세뱃돈도 얻고 새 옷도 입을 수 있다.
그러기에 명절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그 시절의 동심은 너무나 깨끗하고 순수했던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집에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디딜방아가 있었다.
20여 호가 채 안 되는 작은 동네였지만 명절이면 불티가 났다.
동네 사람들이지만 다 친척이었다...씨족 마을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왠지 유세를 부리고 싶었던 건 동네 아줌마들이 우리 집에 오면 엄마에게 뭔지는 모르지만 고개를 수그리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아버지의 항렬이 높아서 대우 해 준 것 같았다.
디딜방아에 빻아진 가루는 몇 번의 손을 거쳐야 보드라운 가루로 나올 수 있는데 비해서
전기 넣어놓고 수분도 안되어서 뽀얀 가루로 나오는 요즘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그 정성 그 마음이 배어있는 명절날 음식을 먹고 컸기에 되바라진 요즘 아이들과는 분명 무언가가 다른 것 같았다.
두부를 만들고 돼지를 잡아서 순대 만드는 것도 보았다.
할머니는 손주들 설빔 옷을 만드셨고 밤에는 한말이나 되는 떡을 밤 세워 쓰시는 엄마를 보았다
참으로 정겹고 흙 냄새 고향냄새가 묻어나는 기억들이었다.
돌아가고 싶었다.
다른 건 몰라도 명절만큼은 내 아이들에게 그런 명절을 보여주고 싶었다.
진정으로 소중하고 귀한 게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먹는 음식 소중하게 생각하는 맘 있으면 모든 것을 다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엥겔계수가 높을수록 생활수준이 낮아진다는 것하고 함수관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카녀석에게 '설' 이 뭐냐고 물었다.
'돈 받는 날'이라는 대답을 듣고는 아연했다.
잘 못 가르친 어른들의 잘못에 회초리를 들고 싶었다.
'조상을 기리고 숭배하는 날이며 한 해를 새롭게 출발하는 날'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통하지 않는 요즘의 아이들에게 어떤 방법, 어떤 매개를 통해서 올곧게 가르칠 수 있을지 이 또한 어른들에게 맡겨진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