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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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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줄것이 있으니


BY 예운 2005-02-02

 

  진갈색 감물염색천에 분홍, 초록, 남색, 노랑, 옥색 조

각천으로 가장자리 디자인 된 베갯잇을 받아 들고 좋아

서 어쩔줄을 몰랐다.

마침내 해냈다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쓸쓸 생

기기 시작하면서 나는 또 이걸 어떻게 포장을 해야 할까

연구에 들어갔다. 보는이로 하여금 첫 눈에 반하게 할수

있는, 받고도 흐뭇할 수 있는, 주고도 행복한, 빈 박스가

쓰레기통에 버려지지 않을 포장박스.

밤을 꼴딱 새면서 기와집을 몇채씩 지었다 허무는 공상

과 인터넷 뒤지기 몇일 뒤 한지를 생각해 냈다.

은은한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이 내 베개와 어울려 줄것인지, 나는 샘플을 만들었다. 단단한 하드보드지를 주문하고 한지를 재단하고 풀칠해서 붙인 뒤 마지막 꾸밈까지

하고나서 구절초베개와 구절초차, 향주머니 그리고 리필주머니까지 담아 놓고 보니 와! 환상적이었다.

일차 성공을 자축한 나는 아들 방하나를 아예 공방을 차

려 버렸다. "하이튼 못말리는 우리 엄마!" 아이들의 원성

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느들도 이리와서 해봐 얼마나

재밌는데, 막내야 너 방학숙제 만들기 있지? 이걸로 해"

우리 막내 신나서 팔 걷어 붙이고 덤비더니 척척 잘도 만든다. 이게 속지야? 이건 엇다 하라고? 복작복작한 방에네명이 한지와 쌈질을 했다.

빈 방 하나 가득 찬 한지함과 베개들이 주는 포만감은 먹지 않아도 배부름으로 다가온다.

만들었으니 이제 소비를 시켜야한다.

지지리 궁상이라 자기가 봤을때 이건 채산성이 없다. 괜

히 우리 애들 고생시키지 말라던 남편이 제일 먼저 들고

나갔다. 지금까지 받기만 했으니 이번 설날은 자기도 한

번 주는 사람 되자며 들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그라

시요. 받는 즐거움인지 주는 행복인지 제대로 맛보시요.

그리고 나서 나도 손가락을 꼽는다.

우리 아버지 엄마, 큰언니 큰형부, 몇해전 나를 찾아 친

정으로 전화 주셨다는 초등학교 4학년때 담임선생님,

나를 학교에 취직시켜 주신 김주사님과 사모님, 베갯잇

디자인 해주신 김혜경님, 이세상 탈탈 털어 하나밖에 없

는 우리아버지 엄마 아들 내 남동생, 여동생들, 우리 형

님, 우리 형님을 항상 보살펴 주신다는 성당 자매님, 구

절초 밭을 사연으로 상받은 농촌생활체험수기를 편집해

서 전원생활에 실어준 손수정기자, 최수연기자님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 남편도 이렇게 꼽으며 얼마나 좋았을

까.

많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많이 받으면서 살았는지 알

겠다. 고마운 사람들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어서 너

무나 행복한 설이다.

나간 베개상자 수와 앞으로 나갈 수가 우리가 지금까지

받은 사랑이라쳐도 우린 참 많은 것을 받았다.

준것 없이 받기만 했으니.

받은 사람들로부터 전화가 온다. 고맙다고 받기만 해서

어쩐다냐고, 선물을 하고 싶으니 주문할란다고, 무엇을

바라고 준것은 아니지만 되로 준것이 말로 돌아오니 세

상은 이래서 살맛이 난다.

어쩌면 나는 올해 수지 맞는 장사를 한 셈이다.

해마다 설, 추석 같은거 없었으면 하다가 올해는 신이

났으니, 지난 설에 받아 먹은 한우갈비가 이제사 소화가

된다.

내게도 줄것이 있으니, 쭈삣거리며 미안해하며 건네지

않고 내가 만들었습니다 자랑하며 줄것이 있으니, 아직

은 형편 아닌줄 뻔히 아는 그들이 받아도 기분 좋아할

것이 내게도 있으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