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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02

동갑내기 부부


BY 후지 2005-02-02

남편과 나는 유독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대학 1학년때 만나 10년 연애 끝에 결혼했으니 그동안 친구로, 연인으로 같이 다니면서

들었던 '닮았다'소리는 셀 수 없을 정도다.

당사자들이야 '닮았다'는 소리에 경기를 일으키지만 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눈웃음 치는 눈매가 조금 닮았으려나? 숱 많은 머리카락 정도???

쌍꺼풀과 외꺼풀, 높은 코와 낮은 코,  덜 펑퍼짐한 얼굴과 아예 펑퍼짐한 얼굴.

세목세목 따져도 뭐 하나 닮은 구석이 없는 얼굴인데 말이다.

하기사, 닮은 부부가 부부금슬이 좋다고 하지 않던가. 좋은게 좋은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출고 날짜가 달랑 3개월 앞선 남편과 나는 동갑내기이다.

어찌어찌 연인 사이로 인식이 되었을 쯤, 친구라는 딱지를 떼려고

아예 내놓고 알랑알랑 사랑놀음을 해대도 "남매유?" 라고 물을 정도이니

'닮았다'는 소리가 우리 부부에게 있어 얼마나 익숙한 말인지 알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어느 누구도 '오빠'냐, '누나'냐 묻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첫아이를 낳고 병실에 누워 있자니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께서 한 말씀 던지신다.

"어째 남동생이 산바라지를 다할까 몰라."

그 아주머니의 눈이 나를 향하고 있던터라, 설마 '나'일까 싶어 주위를 휘익 둘러보니

'너한테 하는 소리가 맞다'라는 분위기다.

"저 말이예요?"

"그래, 새댁 남편은 뭐하고 남동생이 와서 산바라지를 하냐고."

"제 남편인데요..."

허참, 눈이 삐셨군요. 그냥 그렇게 흘러 넘기기로 했다. 그때는 말이다.

세월이 무심히도 흘러흘러 40줄을 넘어섰건만 그 무슨 망령처럼 이런 일들이

잊을만하면 한번씩 일어난다.

며칠 전 일도 그렇다.

"xx엄마, 일요일날 ㅈㅈ갈비집에서 ㅇㅇ엄마 만났었다며? xx엄마 신경써야겠다고 하더라.

xx아빠가 xx엄마보다 훠~얼씬 젊어 뵌다고, 남동생 같다고."

그래, 일요일 그 갈비집에 갔었다.

뿌연 연기 사이로 전작이 있었던 듯  발갛게 들뜬 ㅇㅇ엄마의 얼굴도 보였고, 맞은 편에 앉은

ㅇㅇ아빠도 보였고, 양 옆에 앉은 듬직한 두 아들들도 보았었다.

눈인사만 나눴을 뿐인데 간간히 우리 자리를 넘겨 본 모양이다.

"어머, 자기네는 어떻고? 연하 남편하고 살면서..."

남편 '젊다'는게 욕이 아니고 칭찬일진대 마치 욕을 먹은 것처럼 부아가 날려고 했다.

그 말은 곧 내가 '늙었다'는 소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까닭인 것이다.

14년만에 만난 여고 동창생도 그랬었다.

"어쩜 그리 똑같으세요? 세월이 비껴 갔나봐요." 남편에게 한 소리다.

그래, 나만 늙는다. 나만 늙어서 이제는 남들이 '누나'와 '남동생'으로 본다. 어쩔래?

유전인지 흰머리가 유난히 많은 나는 염색으로 감추기 바쁘다.

우리집 남자는 흰머리가 가뭄에 콩나듯 하다.

나잇살이 그대로 드러나는 나와 다르게 우리집 남자는 여전히 날씬하다.

머리카락이 빠진다며 아침마다 발모제 바르고 대나무 빗으로 정수리 두드리는 일만 없으면

남편과 나는 정말 다른 세대를 사는 사람쯤으로 알 것이다.

'그나마 머리카락이라도 빠지니 나하고 발맞추는 기분이유.'

이런들 어떠하리,저런들 어떠하리,

누가 더 늙었거나 젊었거나 출고 날짜가 비슷하니 유통기한도 같았으면 좋겠다.

니가 앞서고 내가 앞서지 말고, 같이 이 생을 마감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우리는 동갑내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