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유학생 살림이었다.
아이들 양말 한 컬레, 반바지 하나 사 줄 여유가 없는 살림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맥도널드 햄버거를 한 번 사 주기 위해서 벼르고 별러 어쩌다 한번씩 갈 수 있던 시절이었다.
먹을 것이 풍성한 나라니 과일이나 고기야 실컷 먹을 수 있었지만 먹는 것외에는 모든 것이 사치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가난한 유학생 살림을 청산하고 귀국하기로 했을 때 남편은 선물을 사야 한다고 하였다.
'해외여행자유화'가 되기 이전이니 귀국하는 사람들이 사돈네 팔촌의 선물까지 들고 다니던 때이긴 했다.
하지만 남편이 정한 선물값에 여편은 기절할 뻔했다.
한달 생활비 300불, 시집 식구들 귀국 선물 4,000불, 이것은 형평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여편은 생각했다.
남편이 시집을 위해 하는 일에 여편은 그다지 반대를 하는 사람은 아니다.
자기를 낳아서 길러 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 생각하고 가능하면 협조하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아니다, 지나치다, 생각되었다.
뜻하지 않은 여편의 반대에 부딪친 남편은 난감했다.
비싸고 좋은 선물을 하자는 남편과 형편에 맞는 선물을 하자는 여편은 귀국하기 전 날까지 의견의 일치를 이루지 못했다.
며칠을 밤을 새워 싸웠지만 누구도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빈 손으로 귀국했다.
남편이 원하던 비싸고 좋은 선물도, 여편이 원하던 형편에 맞는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다.
공항에 총출동해 이들의 환영인사를 벌인 식구들은 허탈했다.
누구도 환영인사에 걸맞는 선물을 받은 이가 없었다.
여편은 고소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 후 가능하면 시집에 갈 때 선물 같은 것은 생략했다.
시집식구들은 차츰 여편과 남편은 그런 사람이거니하고 그들에게서 아무런 선물도 기대하지 않았다.
이들이 다음 해외근무를 가기로 했다고 했을 때 식구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대대적인 환송인파도 없었다.
이별이 아쉬워 주는 선물도 없었다.
미국에서 딸의 친구인 마도까의 엄마와 여편은 친해졌다.
둘이는 비슷한 점이 참 많았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갑내기 아들과 딸이 있었고, 대학에서 전공한 과목도 같았다.
이번이 두번째 미국 생활이란 점도 같았다.
그녀도 아이들이 어릴 때 남편이 해외어학연수를 나왔었다고 하였다.
그녀의 남편은 일본대사관에 여편의 남편은 한국대사관에 근무한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둘의 성격도 비슷해서 죽이 맞았다.
서툰 영어를 서로 고쳐주면서, 낄낄거리면서, 둘이는 같이 쇼핑도 다니고 아이들 데리고 외식도 했다.
미국에 근무하러 온 시기도 비슷해서 귀국시기도 비슷했다.
귀국준비를 하던 그녀가 피곤하다고 하였다.
이 사람, 저 사람, 귀국선물을 사야하는데 무엇이 좋을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렸다.
선물을 할 사람은 많은데 정말 고민이라고 하였다.
이번에도 여편과 자기가 같은 고민을 할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여편은 하하...호호...웃었다.
자기는 선물 같은 것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미국에 나올 때 선물을 받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여편은 그녀에게 남편이 공부하러 왔을 때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자기는 출국할 때 아무런 선물도 받지 않았노라고 하였다.
그녀는 자기는 원하지도 않았건만 출국할 때 이런저런 선물을 받았기에 되갚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였다.
그녀는 여편을 부러워하였다.
자기도 억지가 심한 남편이 있었더라면...하고 진심으로 부러워하였다.
여편이 살면서 가장 많이 마음에 새기는 말이 있다.
'전화위복, 새옹지마, 단점이 장점이다.'
남편이 맘에 안들 때 돌아서 생각한다.
'모르지, 내일 일은..., 지금 이 상황을 언제 누구가 부러워 할런 지 그것은 정말 모를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