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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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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탁자를 찾습니다.


BY 개망초꽃 2005-01-12

그러니까 그게 저번 금요일이었다.
매장에 들어서는데 일 도와주는 동생 벌되는 직원이
“언니? 허전하지 않아?”그러면서 창가를 내다보았다.
난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허전했다. 옆에 있던 사람이 떠나야만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게 아닌가보다.
작년 봄부터 있던 나무탁자 자리에는 마른 낙엽 몇 잎과 종이조각만 있을 뿐 나무탁자는 없었다.
없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누가 차를 대고 훔쳐 간 게 분명한데 믿어지지 않았다.
진작부터 탐을 내다가 가지고 간 것이 틀림없었다. 중후한 통나무도 값나가는 쇠붙이도 아니고.
낡고 볼품없는 나무로 만든, 길쭉한 의자 두개와 탁자였는데......
폭 좁은 나무를 못으로 박아 니스도 칠하지 않고 아는 사람이 야외에서 쓰다가
쪼개서 불쏘시개로 쓰겠다는 걸 가지고 온 것이었다.

양심도 없다. 쓰고 있는지 다 알면서 가지고 간 것이다. 탁자위에 화분이 두 개 놓여있었는데
그것만 그 자리에 내려놓고 가지고 가 버렸다. 매장 문을 닫았던 밤 8시를 지나 인적이
뜸한 시간에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고 트럭을 대 놓고 급하게 실고 갔을 것이다.
결코 쉽게 가지고 갈 무게와 덩치가 아니였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고 덩치가 큰 편이어서
매일 매장 안으로 들여 놓을 수가 없어서 밖에 놔 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낡고 고리타분한 이것을 가지고 갈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이 우리 매장으로 살려고 온 것은 작년 봄이었다.
부자인 먼저 주인이 더 좋은 걸 장만하는 바람에 불쏘시개로 쓰려고 한쪽 구석에
밀쳐져 있었다고 한다. 마침 내가 나무로 만든 탁자가 필요하다고 몇 사람에게 얘기를
한 적이 있어서 한순간에 불꽃으로 사그러질 운명이 가난하지만 새로운 주인인 나를
만나게 되어서 난 졸지에 생명의 은인이 된 것이었다.
얘는 솔직하면서도 꾸밈이 없이 나에게 첫인사를 했다.
밖에서 오랫동안 살던 얘 치고 때가 묻지 않았고 예쁘게 보이려고 치장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첫인상이 담백했다. 나는 반갑고 감사해서 얼른 받아 질질 끌어서 나무 그늘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물걸레로 먼지를 닦아 주면서 “너 참 맘에 든다. 내가 원하던 게 바로 너였어.”
우린 이렇게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화원에서 얘에게 어울릴 화분을 사왔다. 아무 색도 입히지 않는 탁자와
어울릴 꽃은 화려함 보다는 깔끔하고 수수한 꽃인 하얀색 마가렛을 골랐다.
올려 놓았더니 꽃에 관심이 있는 학교에 갔다 오던 아이들이
의자에 앉아서 꽃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뭐라뭐라 얘기들을 한다.
“애들아? 이 꽃 이름은 마가렛이야. 이쁘지?”
“네...”
아이들은 쑥스러운 듯 살짝 웃으며 꽃에게 향기를 맡으려 한다.
"가방 내려놓고 쉬다가 가라...“
아이들은 가방을 내려놓고 또 뭐라뭐라 떠들다가 고개 인사를 하고 간다.
“꽃 보러 또 와라?”

여름엔 비가 자주 내려 나무그늘에 있던 얘를 매장 창가에 데려다 놓았다.
몸둥이가 매장 처마보다 좀 길어서 비가 오면 한쪽이 빗물에 스며들었다.
비가 갑자기 오는 날이면 길가던 사람들이 잠시 비를 피하려 나무의자에게
허락없이 앉아 있곤 했다. 여름엔 대나무로 만든 작은 통에 풀꽃을 심어서
탁자위에 올려 놓았다. 꽃이 피면 스님머리와 닮았다고 해서 중대가리라는 풀과
고향 밭에 끈질기게 살았던 쇠비름이라는 풀이었다. 손님에게든 지나가는 누구에게든
들꽃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일라치면 난 냉큼 달려가서 꽃 이름을 알려주고
꽃이 여기에 살게 된 동기를, 꽃은 자신의 고향 얘기를 꺼내지도 않는데
난 자존심도 없이 술술 다 털어 놓았다. 그렇게 들꽃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면 차 한 잔을
대접하고 평소엔 말이 없던 내가 수다스러운 성격으로 변하게 된다.
그래서 맞은편에 있는 운동화세탁집 주인아줌마가 나의 가게를 들꽃가게라고 붙여 주었다.
전에 살던 동네에선 꽃순이라고 했었다. 아파트 화단에 앉아 꽃을 보고 있음 윗층 베란다에서
“꽃순아~~”하고 불렀었다.
더위를 식히려 노인네들이 신발을 벗고 발 냄새를 퐁퐁 풍겨도 얘는 그 분들이 가실 때까지
불평도 안하고 상대방이 민망할까봐 코를 막지도 않았다.
어떤 날은 중년쯤 되는 부부 같지 않은 연인이 오랫동안 데이트를 하고 가도 안 들은 척
못 본 척 눈감아 주곤 했고, 어느날은 함암 주사를 맞아 입맛이 없어서 우리 매장에 왔다길래
제주도 무농약 오렌지를 권했더니 여기서 먹고 가면 안 되겠냐고 하셨다.
그래서 얘를 소개해 주었더니 그 자리에 앉아 오렌지 하나를 다 드시고는
입맛이 돌았다며 또 하나를 사서 두 개를 먹고 이제 살 것 같다며 웃으실 때,
얘도 흡족하게 웃고 있는 걸 나는 보았었다.

가을엔 보라색 쑥부쟁이 꽃을 올려놓았다.
커피 한잔을 타서 쑥부쟁이와 마주보고 있음 세상 것이 하나도 안 부러웠다.
꽃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그냥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보라색 쑥부쟁이와 나무탁자는
흔한 표현이지만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꿈결 같은 사랑과 어울리는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인터넷에 시와 함께 올라오는 아름다운 영상시 같았다.
난 가을날이면 언제나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한참씩 하늘도 보고,
남들 눈엔 화단 같지도 않은 나무 밑 작은 화단을 보았다.
이 곳에 앉아 있으면 손님 때문에 속이 터질 것도 터지지 않고 가라앉았다.
장사에 잘 안되어서 앞이 어둡다가도 긍정적이 되어 밝아졌었다.
옆에 두고 싶은 사람이 떠나가도 허전함을 달래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안식처였다.

난 비어있는 탁자 자리를 한참 동안 보면서 탁자를 가져간 이유를 분석해 보았다.
나처럼 가게 앞이 넓고 한적한 가?
집 뜰 가에 놓고서 가족들과 차를 마시고 싶었을까?
시골에 마당 너른 집이 있어 농사를 짓다가 힘들면 앉고 싶었겠지?
그래도 그렇지 도둑질해 간 탁자를 가게 앞에 놓으면 뭔 복을 받아 장사가 잘 되겠어.
가족이 이 탁자 왠 거냐고 하면 버려서 주워 왔다고 할 수 있었을까?
식물도 사람의 말을 알아 듣는 다는데 탁자를 훔쳐간 사람은 그럴 모르나 보다.

내 꿈은 몇 년 동안 장사를 잘 해서 시골집을 사면 마당 가장자리에 느티나무를 심으려 했다.
그리고 추우나 더우나 나와 같이 장사한 이 나무탁자를 느티나무 그늘 밑에 두고
내 좋아하는 사람이 오거나 내가 좋아 찾아오는 사람들과
배가 터지도록 삼겹살을 구워 먹고 편하게 차를 마시며 늘어지게 얘기하고 싶었다.

다음날 2절지 도화지를 사 왔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나무 탁자를 찾습니다. 제 추억이 담긴 거예요. 제 자리에 갖다 놔 주세요.“
그리고서 탁자가 보이던 넓다란 창에 누런 테이프로 붙였다.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 해 봄이 그리운 것이 아니고 그와 함께 했던 그 봄이 그리운 것처럼
사계절 같은 추억을 간직한 내 탁자가 그리울 뿐이다.
봄,여름,가을 그리고 겨울동안 새겨진 낯익은 흔적들이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