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골(09:00) - 소문수봉(1465m) - 문수봉(1517m) - 천제단(영봉 1567m) - 단종비각 - 반재 - 당골광장(15:00) 2005. 1. 5 새해 첫산행 민족 영산인 태백산의 품 속으로 들어간다. 한겨울 추위속에 따뜻한 내 집이 최고이건만 산이 품안아 주는 포근함을 느끼기 위해 혹독한 바람부는 겨울산으로 들어가는 여인들이다. 눈꽃축제를 준비하기 위한 인공눈이 공중 위로 춤추며 사뿐히 내려앉는다. 눈을 뿜어내는 작업이 분주히 일어나고 있는 당골광장에서 문수봉을 향한다. 낙엽송들이 전혀 흐트러짐없이 쭉쭉 뻗어 산들머리에 선 산행인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방학을 이용하여 단체로 산행 온 학생들과 그 외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었다. 역시 예상했던 기후와는 다른 세상이었던 태백산의 기온은 바람한 점 없는 늦가을같은 날씨였다. 소문수봉으로 향하는 오름길은 철쭉숲을 사이에 둔 너른 길이여서 산길인지 평지길인지 모를 정도로 완만한 경사의 등산로가 우리를 쉽게 받아들이고 있다. 며칠 전 내렸던 눈을 곱게 받아 품안에 안고 있는 산죽들이 하얀융단 위에 올려져 빛을 발하고 있었고 자작나무의 은빛 껍질은 미풍에 살짝 일어나 춤추고 있었다. '크고 밝은 뫼'라는 뜻의 태백산은 그 웅장함이 널리 알려져 초보자들이나 남녀노소 즐겨 찾는 명산이기도 하다. 모든 산의 뿌리이기도 한 1567m 높이의 태백산에는 단군을 위한 제단 '천제단'이 있으며 철쭉제와 눈꽃축제로도 유명하다. 겨울의 눈과 설화가 환상적인 태백산에 아직 눈의 여왕은 납시지 않고 하인들만 잠시 다녀 갔음인지 산길만이 하얗게 뽀드득 소리낼 정도의 두께로 덮여 겨울산임을 잊지 않게 해 주고 있었다. 귀를 찢는 비행기가 몇분 간격으로 쉼없이 지나가 우리들의 말소리까지 빼앗아 도망가고 있다. 찢어지는 소리에도 대자연은 눈에 뵈지 않는 고통을 감수하고 묵묵히 성장하나보다. 민감해하는 인간의 볼멘 투정이 자연앞에 굴복하고 마는 순간이기도 하였다.1465m의 소문수봉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동서남북을 둘러본다. 소백산 설악산 함백산이 펼쳐져 있었으며 이름은 붙어 있으되 알수없는 수많은 봉, 재, 령.. 이 모든 산들의 모태 속에 내가 서있었다. 군락을 이루고 있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들이 각기 명찰을 두르며 번호를 지정받고 있었다. 성스런 산 속에 주목은 그 영험한 기를 받아 웬지 모를 신비스러움을 내뿜고 있는듯 보였다.
문수봉에서 능선따라 이어지는 천제단까지의 코스는 과수원길을 걷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부드럽고 완만한 산길이었다. 12시경 도착한 제단에 시산제를 지내고 봄날같은 햇살아래 점심을 펼쳐놓는다. 겨울은 겨울인지라 손이 시려워 먹는속도 또한 빨라진다. 뜨끈뜨끈한 물로 먹거리들을 쓸어 내리니 몸의 온기가 퍼지는 듯 하다. 천제단이 있는 망경대의 높이가 1567m 고산이지만 해발 800미터 지점에서 출발 하다 보니 거리또한 그리 길지 않아 힘이 남아도는 산행처럼 느껴진다. 천제단에 올라 사위를 둘러본다.
다른 산과는 달리 태백산에 올라오면 내게 다가오는 어떤 기운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눈에 펼쳐진 그림들을 담으면서도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작은 소망을 꺼내어본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듯 오랜 세월을 자리하면서 천제를 올렸던 곳 천제단... 민족의 영산인 이곳에서의 기원은 꼭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하산길로 접어든다. 정상 바로밑에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창시했다는 망경사가 위치하고 있다. 절터는 산이 포근히 품어 안아주는 자리좋은 곳에 세워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등산객들의 숙식을 제공해주면서 쉬어갈수 있는 쉼터의 몫을 대신해 주고 있던 망경사의 규모는 그리 대단치 않았다. 눈으로 훑어보며 조금 내려오니 단종비각도 눈에 뜨인다. 살아 숨쉬는 우리의 역사가 숨어있는 태백산.. 양옆 줄로 의지하면서 가속이 붙어 어느새 반재를 지나 단군성전이 있는 당골까지 내려오니 하얀 인공설이 펼쳐있는 광장이다.
1월과 6월이면 가장 많이 찾는다는 태백산을 한번 더 올 계획을 잡고 있다. 함백산과의 경계인 화방재에서 시작할 백두대간코스가 또 기다려진다. 하산하면서 바로 다음 산행이 기다려지고 서울일정을 곧 마치고 다음날 있을 산행을 위해 부리나케 내려오는 나의 모습에서 '꾼'을 발견하곤 한다. 산속에서 한겨울을 느끼며 눈과 함께 할수 있는 다음 산행이 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