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서 1000km가 떨어진 호주 남단 한켠의 빅토리아주의
수도 멜보런. .
자동차 주차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호텔근처에서 기차를 타고
시내에 나왔다.
영국의 날씨 비슷하다고는 하였으나 어제 그제 날씨가 좋아
오늘도 생각없이 적당히 짧은 옷을 입고 나왔는데,
갑자기 바람 불고 비오고 작은 얼음덩이가 퍼붓기도 하고 말
그대로 날씨가 엉망이다.
적당히 걸칠 세타가 있나 가게를 기욱거려 보고 싶었지만 ..
지독히 적은 일본 간이식당에 들어가 우동의 뜨거운 국물로
몸을 데우고 아무쪽으로나 가는 전차를 탔다.
아마도 세계에서 전차가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시내길 가운데 오가는 철로 4개가 깔려있다.
덕분에 소음이 적고 공해도 적을터이고 차가 빨리 달릴수가 없어
조용하고 사람들도 여유롭게 느껴진다.
시내의 분포도로 그리 넓지 않았다.
마침 탄 전차가 멜보런 대학을 지나 조금 벗어나니
묘지가 길게 한 구역을 다 차지하면서 길게 늘어져 있었다.
뒤로는 크고 높은, 앞쪽으로는 나즈마한 각기 다른 모양의
비석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곳을 지나 내려 다시 시내로
들어 왔다.
이번에는 시내를 도는 전차에 몸을 실었다.
한 30여분 도는 것 같았다.
한바탕씩 세차게 소낙비가 퍼붓기도 하고 개이기도 하고.
아예 전차에 앉아 시내구경을 하기로 하였다.
2번을 연거퍼 돌으니 볼만한 것도 다 보고.
시드니 보다 먼저 생긴 도시여서 오래된 고풍스러운
건물을 간직하고 있었다.
전차안에서 적당히 사진도 찍고.
오후 늦은 시간 점심은 멕도날드에서 해결하기로 하였다.
필요할것 같아 빌려간 핸드폰의 벨이 울렸다.
시드니에 계신 아버지께서 손녀 미리가 어디 있느냐고,
어디에 물난리가 난모양으로 걱정을 하셨다.
별 생각없이 호텔에 들어와 뉴스를 보았다.
처음에는 스리랑카와 타일랜드의 사고현황이 연이어 나왔다.
저녁을 중국식당에 나가 먹고 다시 들어와 뉴스를 보니
인도 그리고 인도네시아등 이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이틀전 딸아이가 있는 사우스 인디아 고아에서 다른 지역으로
구경 갈거라는 말이 있은후 연락이 없었던 것이다.
고아에 있기만 하면 안전한데 혹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나 걱정이
물 밀려오듯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분명히 괜찮을 것 같은데 어디로 떠났는지 연락을 받을수만 있었지
할 수가 없어니 참으로 난감하였다.
연결이 되게하고 핸드폰을 갖고 갔는데 뭐가 잘못되었는지 쓰지를
못하고 있었다.
아들한테 전화가 왔다. 동생 연락처를 알수가 있는냐고.
같이간 친구 엄마의 전화번호를 적은 것이 집에 있어 찿아보라
하였더니 찿을 수가 없다고.
비바람이 불고 있어 한밤중에 돌아가자 할수도 없고.
안절부절하고 있으려니 남편이 돌아가잖다.
시간은 11시 40분. 다행히 비는 멈추었고.
무사 할 것이라는 확신에 마음은 편안하였지만 그냥 빨리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이곳으로 내려올때는 어느 지역에서는 메뚜기떼가 마치 작은 비행접시가
날아오듯 마구 차에 부딪혀 적지만 누런 부산물을 쏟아놓고 떨어지고,
10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는 간혹 걸리는 것들이 있었지만 밝은 낮이고
길이 좋아 괜찮았는데 밤길은 조금은 겁이 났다.
계속 보이는 차에 치인 캉가루와 작은 짐승들,
그들은 불빛을 보면 뛰어 든다고 하니 불현듯이 뛰어 들지나
않을까하는 조바심이 함께 하였다.
한참을 달려도 다른 차를 보기 힘든 호젓한 밤길.
다행히 보름달보다는 적은 하얀 달님이 달리는 차앞을 비취주며
앞서가고 있었다.
새벽 3시.
빅토리아와 뉴사우스웰즈 경계에 다다를즈음 핸드폰이 울렸다.
딸아이였다. 공중전화에 나와 하여야 하여 밤에는 다니지 말라
심심부탁 하여 이렇게 늦게 전화온적은 없었는데.
그곳은 아무일 없다고 고아에 그냥 있다고.
같이 있던 한 친구만 사우스로 떠났다고 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있다는 말에 미안해 하며 다시 돌아가서
즐기다 오라 하였지만 그럴 생각도 없었고,
어쨌던 한밤중 전화하여준 딸아이가 한없이 고맙기만 하였다.
나중에 다시 전화할 때 알았지만 그곳은 싼 호텔이여 사무실도 없고
TV로 없고. “수나미”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커피 두잔으로 잠을 깬 남편은 밤새 차를 몰았고 옆에서 자면 운전에
방해가 될까봐 감기는 눈을 억지로 크게 떠고 있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쉬지 않고 달려온 남편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오전 10시 되어 집에 도착하니 주위의 아는 친구들과 이웃들의 걱정
전화와 인터넷에 시달리느라 새벽이 되어서야 잠에든 아들.
걱정으로 밤새 못주무신 아버지 그리고 식구들.
이제는 이틀에 한번씩 같은 시간에 전화하기로 하여 저녁 나들이도
걷어치우고 기다려야 한다.
2월 3일에 돌아온다던 계획을 1월 10일로 바뀌어 온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오랜만에 2주간 휴가를 받아 푹 쉬고 싶다던
남편이 조금은 안스러워 당일치기로 가까운 곳을 다니기로 하였다.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나 놀지,
별로 노는날 없이 일만 하던
사람이 놀아 볼려니 그도 잘 안되네.
숫한 인명피해를 끼친 이번 사건을 통해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
비명에 간 불쌍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올해는 좀더 겸허한 마음으로
주어지는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근신하는 마음으로 또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