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 언제나 부담스럽다. 그저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옮겨 보려 해도 하루 종일 머리에 떠돌던 말들도 모니터를 대하면 어느새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려 컴퓨터를 꺼버리기 일쑤다. 그래도 잃어버리기 전에 무언가 남겨두어야 할 것 같은 사명감에 컴퓨터를 켜곤 한다.
12월 둘째 주 시험이 끝나고 3개월의 방학이 시작 되었다. (3월에 시작되는 학교이기도 하지만 그때쯤 앞으로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결정이 나기에) 지난 5년 공부에 메 달려 돈을 번다는 것을 일단 왜면 하고 살아온 나였지만 그 공부 란 것의 결과가 뻔히 온전히 돈을 낭비한 결과가 된 이상 호사한 생활에만 젖어 살 수는 없는 셈이 된 것이다.
나이가 40이 훨씬 넘었고 할 수 있다는 것 컴퓨터를 만질 수 있다는 것이 고작인 나는 컴퓨터 기본을 가리키는 일은 일단 접어 두기로 하였다. 남을 가리킨다는 것 도무지 성미에 맞지 못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웹사이트와 지역신문을 뒤져 보았지만 마땅히 시도해 볼 곳이 없었다. 일자리라곤 고작 청소, 주방보조, 홈 청소 인데 3개월 후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일을 시작하기엔 무모한 일들이었다. 농장 일이 힘이 들지만 임금이 꽤 괜찮다는 말을 들은 적 있지만 도무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건축현장…. 타일, 페인트, 마루 놓기 등등이 주 신문광고 내용이었다. 여기 저기에서 전화 번호를 모아 걸어 보기 시작 했다. 첫 번째는 이미 사람들 구했다고 한다. 두 번째 전화, 남자분을 찾고 있냐는 나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말에 시작된 대화는 몇 일하고 그만 두게 되면 곤란하단다. 그럴 리가 있겠냐고 나이를 이만큼 먹었으니 그리 무책임 한일을 하지는 않지 않겠냐고…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고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힘이 들고 어렵다는 예기도 기억나고 혹시 힘든 일에 몸을 상하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한국에선 아마도 감히 생각도 하지 못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아들 과외비를 위해 파출부로 몰래 일한다는 것이 옛날 이야기처럼 기억나기도 했다.
사무실에서 만난 사장은 내가 할 일을 설명해 주었다. 페인트 보조, 차로 아침에 인부들을 현장에 실어주고 데모도 (보조)일을 하고 일이 마쳐지면 인부들을 집에 데려다 주고, 기름값을 줄 것이며, 하루 100불을 지불할 것 이며, 작업화를 사야 한다고… 개인 사정은 묻지 않았다, 할말 도 없었지만 짐작엔 무척 어려운 상황일 것임을 단정하고 있는듯하였다. 다른 일들 보다는 페인트 일이 힘이 적게 든다고, 다른 일 들이란 것은 아마도 타일, 마루 놓기 등등을 말한 것 일께다.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에 잠을 재대로 자지 못 한 체 일찍 일어나 아들 도시락을 싸고 차를 몰고 간 곳에 기다리며 엔진 오일을 열어본 순간 아찔 하였다. 엔진 오일이 거의 바닥에 있는 것이 아닌가? 지난 몇 개월 기차로 학교에 등교했기에 엔진 오일이 그리 적을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여러 궁리를 해 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오늘 하루 견뎌 보기로 했다. 엔진 오일이 없으면 큰일이 날것이란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기다리고 있자니 한 사람이 나타났다. 다가가 한국말을 건넨 나는 중국인임을 알게 되었고 그 와중에 그가 뒤에 나온 사람들이 한국인들이라고 알려 주기에 바로 찾았음을 알 수 있었다. 두 중년 남자들을 태우고 가자고 하는 데로 가서 한 중년 여자 분을 태우고 가자고 하는 데로 차를 몰고 가기 시작 했다. 주소를 알려 주지 않아 오로지 그분들의 방향 지시에 따라 가던 난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그 동안 그들의 말투에서 연변 조선족이라 느낌을 받기도 하였지만, 대번에 그 여자분의 큰 목소리에 위대한 여성동지였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마침내 길을 잃자 길을 인도 하던 두 사람은 큰 소리로 싸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기가 막혀서… 지도 책을 들고 헤매는 나에게 안경이 없다는 핑계로 아무도 지도 책으로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에 약간의 절망감을 느꼈다. 나중 알게 된 것은 호주에 산지 꽤 되는 그들은 영어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어찌 어찌 하여 현장에 도착한 우리는 진짜 사장님을 만나게 되었고 다행히 그리 늦지 않았다. 안전화 (앞부분에 쇠가 들어있어 단단하고 무거운)를 벗고 흰색 티 셔츠로 갈아 입으란 말을 남기고 한 남자 인부를 자기 차에 싣고 다른 현장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나의 첫날 노가다, 페인트 데모도일이 시작 된 것 이다. 첫 번째 일은 이미 칠해진 화장실 벽장문을 샌드 페이퍼로 샌딩를 하라는 것이었다. 멀쩡한 문을 왜? 눈치를 보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다는 나에게 한번 만져 보라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센딩을 하지 않은 곳은 보기에 멀쩡해 보이지만 거칠다는 것을 매끄럽게 살짝 센딩를 하고 마지막 페인트를 칠해야 할 곳이었다. 그리고 화장실 바닥에 페인트 묻어 있는 것 긁어 내기, 페인트 붓 씻기 등등 새로 짓고 있는 5개의 연립 주택이었다. 뭐 그리 힘이 들 것 같지 않는 생각이 들기 까지 했다. 돌아 오는데 비가 엄청 내려 긴장의 연속이었다. 집에 돌아와 엔진 오일을 넣고 씻고 잠시 몸을 뉘었던 난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모발 폰 소리에 잠이 깬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기다리던 인부들이 사장에게 연락을 하고 사장이 전화를 한 것 이었으니… 지금 가도 되겠냐는 말에 그냥 현장으로 바로 오라는 말에 도시락에 밥을 푸고 참치 통조림을 넣고 부리나케 운전을 하여 현장으로 달려 갔다. 다행히 짤리지는 않을 것 같은 예감에 진정하며…. 그렇게 나의 노가다가 시작 되었다.
시드니에 살고 있는 서영신 입니다. 저희 사는것 궁금하시면 cindyinsyd.com으로 방문해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