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이번달 카드 금액이 얼마야?"
"왜 물어 보는데......"
그래도 이젠 '상관마!' 란 소리는 조금 줄어 들었다.
자기도 생활 해보니까.......
어릴때부터 부유함을 모르고 자란 나지만, 그렇다 할 불평의 소리를 크게 해본적이 없다.
아버지의 심한 가부장적 생활이 불만이 많을 때도 있었지만, 커가면서 모든것이 자연스레 잊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크면 해결된 문제였으니.....커가기만 바랬다.
그런데...
결혼이란 그런것과 차원이 달랐다.
내가 해볼수 없다는 포기도 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맞서기도 너무 힘들었다.
처음 둘이 만난건 어느 지하 다방이었다.
맞선자리가 낯설지 않을만큼 많이 보았기에, 별 의미를 두려 하지 않았고, 상대편도 퍽이나 눈에 든것 같지 않아 그냥 또 한번 차였다는 생각으로 넘기려 했다.
그런데, 연락이 왔고, 또 한참동안의 침묵 후에 연락이 와서 만나기 시작한게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둘다 반기거나 달가워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어디까지나 둘은 노총각 노처녀였으니...
그렇게 시작한 결혼생활은 그래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내 견해와, 어쩔수 어벗이 가진 가정이니 달아나고픈(?-사실 확인이 되지 않지만, 행동으로 봐선) 신랑의 생활이 아이 없을땐 그런데로 괜찮았다.
첫째가 태어나고, 그와 동시에 내가 직장생활을 그만 두면서부터 둘의 갈등은 시작되었다.
원인은 언제나 시댁 어른들......
당신 아들 월급여가 많으면 얼마나 많고, 그것 가지고 생활하기에 여유를 가지면 얼마나 가진다고, 이렇네 저렇네 동네 소문은 다 내고 다니며 뒤에서 흉을 보기 시작했다.
당신 아들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지고 간다고는 절대 믿으려 하지 않았고, 오직 가난한집 딸이 홀어머니 두고 왔으니 그 돈의 새는곳이 뻔하다는 논리였던것 같다.
둘째가 곧바로 태어나고, 연년생을 키우는 며느리야 언제나 편한 위치였고, 아들은 죽어라 일했는데, 시댁 어른들은 전혀 돌보지 않는다는 식으로 내뱉은 말들이 멀리 돌아 내 귀에 들어올땐 정말 죽고 싶었다.
그렇다고 당신 아들 가정적이어서 아이들 한번 제대로 안아주냐면, 날마다 새벽에 들어오기 일쑤였고, 집안 행사도 내가 애들 둘 데리고 버스타고 1시간 이상 다니며, 해야 하는, 하고 나면 언제나 잘했네 못했네를 동네 방네 떠들고 다니는 그런 수모를 겪어야 하는 일들 뿐이었다.
시부모는 생활에 대해선 나몰라라 했고, 신랑은 그런 부모님에 대해선 나몰라라 했다.
오직 며느리가 제대로 행동 못하니 그런다는 식으로 몰아부칠 뿐이었다.
친정일은 두손 놓고 오히려 아이들 데리고 가서 받고만 와도 시댁에선 아이들 때려가면서 일을 해야 했고, 아이들 때려도 당연시 여길뿐 누구하나 돌봐주는 이 없었다.
큰 아들, 큰며느리, 큰 손자였는데도 말이다.
올해만 참으면, 아이들이 재롱떨면, 우리집이 조금만 더 나으면.....이란 생각으로 보낸지도 어언 6년 난 모든걸 포기했다.
남편도 포기했고, 시댁도 포기했고, 오직 아이들만 바라보고 살기로 했다.
벌써 아이들도 5살이 넘어가니 내가 혼자 벌어서도 이정도는 먹고 살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부터 조금씩 집이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하루 한번씩은 꼭 울다시피 하던 내가 차분한 마음을 가지고 애들을 대하면서 아이들도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외박을 해도 아무말도 않고 지내니 신랑도 화내는게 조금씩 줄어들었다.
난 학원에 등록했다.
아이들을 놀이방에 시간제로 맡기로 시작한 학원생활에 재미를 들이면서, 차츰 기능도 익혔고, 1년 6개월 동안 많은 성격 변화도 보았다.
6년동안 고립하다시피 지낸 생활이 끝내면서 누군가 이야기 할 상대를 찾았다는 기쁨과 함께, 익힌 기능으로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내 사회생활도 시작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밖으로 돌던 남편도, 이젠 가족의 소중함고, 아이들에 대한 정을 느끼기 시작했고, 당신의 부모님에 대한 나의 대우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하면서 나에 대한 배려도 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여....
지금은 예전처럼 씀씀이가 크진 않지만, 그때의 후유증이 조금은 남았다.
마지막 빚을 청산하는 일이 남았고, 아직 시댁에 대한 일들이 낯설음이 남았으며, 내가 나서서 해야 할 이들이 아직까지 발생하지 않는것도 좀 더 성숙해져야만 하는 이유이다.
그래도 지금은 신랑의 부단한 노력과, 가정에 대한 배려도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40여년의 생활중 결혼 6년 동안이 가장 힘들고 어렵고, 답답했던것 같다.
앞으로의 생활도 화려하진 않고 또다른 방법으로 시련이 닥치겠지만, 지금까지의 생활이 나를 지탱해주리라 믿는다.
더불어 앞으로는 좋은일 많이 생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