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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없는 길 .... 오지산행을 다녀와서


BY 동해바다 2004-12-06



삼척시 노곡면 마읍리 중마읍분교 - 삼밭골 - 두리봉(1072m) - 주지리 - 중마읍
(09시 출발 - 17시 하산)


12월 마지막 한달을 남기면서 첫날부터 연이틀 고된 행군을 마치고 돌아왔다.

경북 봉화군의 아름다운 산세와 수려한 자연을 병풍삼아 자리잡고 있는 청량산,
그 유명한 청량사를 멀리서나마 한눈에 넣으며 조선중기 주세붕이 명명하였다던 
산봉우리중 5개를 넘어 하산한 6~7시간의 산행 첫날, 힘든줄 모르고 다시 배낭 속에 
먹거리와 월동준비를 마치고 다음 날 있을 오지산행에 도전하였다.

어느 잡지사의 오지산행 소개차 내려 올 기자와 만나기 위해 산악회원 10명은 삼척시 
노곡면 마읍리에 위치한 중마읍분교로 향한다.
이번 산행은 회원 중에서도 어느정도 체력이 뒷받침 되어주는 사람을 뽑아 동참하게 된 
산행인지라 기대감과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다.
청량산에 올랐던 피곤함은 어디로 갔는지 다리에 힘이 주어진다.

학생수가 몇 안되는 분교에 차를 세우고 산골마을의 차가운 공기를 호흡한다 (8:40)
기자와 함께 타고 올 태백산악팀은 아직 이른 시각이었는지 서리내린 학교 운동장엔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산에서 흐르는 물은 힘없는 소리를 내면서 졸졸 흐르고 몇 되지않는 가구들이 힘겨웁게
산을 이고 있었다. 조금후 도착한 일행들과 함께 가벼운 목례를 나누며 움직임이 시작된다.



태풍피해 후 새로이 복구된 길 위에 우리들의 저벅거림이 마을의 고요함을 깨운다.
예전에는 삼을 많이 재배하였다는 삼밭골 뒤로 산은 버티고 있었다. 
닦여진 길 끝머리에 200년 족히 된 듯 소나무가 오지산행의 무사고를 비는 듯 겸허한
자태로 우릴 배웅한다.



기자의 나침반과 지도에 의해 가는 길이 정해진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오지를 소개하는 잡지내용의 특성상 교통편과 시간표, 지도
등을 세세히 들여다보며 기록하는 기자의 꽁무니를 따라가려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같이 가는 일행들도 이날만은 고된 산행이 아닌 일종의 휴식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둘러보면서 오지산을 감상할수 있는 기회를 누리라 하였다.

일보 또 진일보한다.
2, 3년전 지나간 루사와 매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사람발길 전혀 볼수 없는 오지,
길게 누운 수명다한 소나무와 제멋대로 쓰러져 있는 수많은 나무 사이로 길 없는 길을
헤쳐 나가며 길을 만든다.



인적드문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앞서간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미 만들어진 길 
위를 우리는 쉽게 걸어갈 수 있었다. 헌데 지금 우리가 그 길을 만들고 있지 않는가.
수북히 쌓인 낙엽 위에 발을 올려 놓으니 그 깊이의 정도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스틱이 없으면 낙엽이 감춰 준 돌과 돌사이 홈에 빠져 다치기 쉽상일듯 싶어 조심조심
발을 옮긴다.

길없는 산 속에 내가 있다.
12월이긴 하지만 가을의 정취가 흠씬 풍겨나는 삼척오지의 산 속 ...
의지할 나무가 힘없이 부러지고 칡넝쿨에 걸려 넘어져 절대절명의 순간에 돌입할
지언정 오지에 발을 내딛고 정상에 우리들의 흔적을 남긴다는 생각에 모두의 얼굴은
밝기만 하다. 
계곡마다 놓여진 암반이 살얼음옷을 입었다.
바위 위에 흙과 함께 쓸려내려온 씨앗하나가 꽃 한송이를 피워내고 있다.
앙증맞게 피어있는 달맞이꽃, 꽃이 계절을 상실한 것일까. 
초가을 지천에 깔려 흰꽃 세상 만들어 주던 개망초꽃과 진달래도 볼수 있었으니
어디 동장군이 얼굴 내밀고 찾아올까.
작은 꽃들의 화사함이 땀흘려 오르는 우리들의 피로를 싹 풀게 해준다.



계곡따라 두어시간 올라가니 임도(임산물의 운반 및 산림의 경영관리상 필요하여 설치한 
도로)가 나타났다 (11:30).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작은 웃음소리를 공중 위로 던져본다.

간식과 사진촬영, 그리고 담소를 나누며 우리가 경험하는 오늘 이 산행이 '사람과 산'
이라는 잡지의 신년호에 소개되어 산악인들에게 첫선을 보인다고 한다.
살며 겪는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평범하지 않은 산행에 동참할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희열을 느끼는 듯 했다.

임도 50여미터 쯤 걸었을까 다시 경사진 산으로 엉거주춤 엎드려 나무뿌리를 잡으며
올라간다. 암벽이 아닐 뿐 산을 타고 오르는 모습이 흡사 그와 똑같다.
40여분을 땀 뻘뻘 흘리며 오르니 완만한 능선이 나타난다.
키 큰 진달래가 옆가지를 얼마나 뻗었는지 얼굴을 가리고 가야할 정도이다.
사정없이 얼굴과 온 몸을 때리는 진달래가 능선 지천이다.
따스한 봄날이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상상하니 그 화사로울 베품에 나를 때리는 
진달래 가지마져 예쁘기 그지없다.

땀 흘리며 산 오르는 여인들의 기백이 사뭇 매혹적이다.
상기된 얼굴과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이 어디 편안한 자리에서 만들어질까. 
일상을 훌훌 턴다며 나선 산행에 묵은 찌끼들을 오지에 던져 버리는 오늘 하루,
하늘은 내내 찌푸려 있다.
평평한 위치에 자릴잡고 중식시간을 갖는다 (12:50)
땀이 식기전 외투를 걸쳐입고 한술 뜨기 시작하는 점심시간은 달디 달다.
밥도 뜨끈뜨끈한 국도 가슴속까지도 달기만 한 시간, 숭늉까지 싸온 회원에게서
마무리로 한컵 얻어 마시니 포만감에 졸립기까지 하다.

정상지점을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다시 산에 오른다.

멧돼지가 남겨놓은 흔적을 기자님의 설명과 곁들여 마음의 지식을 하나 동냥한다.
냄새를 한번 맡아 보라고 하지만 내코가 막혔는지 낙엽냄새인지 동물냄새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새끼를 낳아 다른곳으로 이동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기자의 말이 덧붙여진다.

조금 더 올라가니 정상을 알리는 삼각점이 발견된다.
그냥 지나치면 모를 그 지점을 어찌 발견해 낼까. 역시 산사람이 아닐수 없다.
낙엽과 나뭇가지가 쌓여 반은 가려있는 사각의 돌멩이가 파묻혀 있다.
1072m의 정상 두리봉에 간단하게 제를 올리며 다녀감을 알린다.
말라붙은 허연 넝쿨하나를 발견한다. 산더덕이다.
관심있는 회원 한명이 파기 시작했는데 대장까지 가세하여 파도 끝이 없다.
가져간 스틱으로 나뭇가지를 깎아 파내려가다 그만 더덕이 반토막 부러지고 만다.
50년 정도 되었을 귀한 더덕이란다. 아까운지고...
하얀 진이 나오는 반토막 더덕에 코를 가져다 대니 향긋한 냄새가 난다.
이 더덕이 과연 누구의 주머니로 들어갈까..



삼척에 살면서도 듣도보도 못한 지명과 동네들이 수두룩하다.
기자의 선택은 능선이 아닌 하산길로 접어들어 주지마을로 내려가자는 지시를 내린다.
하산하여 주차해 놓은 중마읍까지 걸어 들어가기로 했다. 
그 거리가 오랜시간 걸릴 것이라는 것을 전혀 모른채 길없는 산 내리막을 한없이
내려간다 (14:00)

습지가 많아 바위마다 나무마다 이끼옷을 두텁게 입고 있다. 
얼마나 깨끗하고 촉촉한지 그 촉감이 부드러워 한웅큼 뜯어낸다.
잘 일어난 누룽지처럼 쉽게 뜯어지는 이끼를 비닐봉지에 집어넣는 여유까지 있는걸
보니 어제에 이은 오지산행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나보다.
스스로의 체력증강에 놀랠 정도이다.
기자와 태백산악회원, 그리고 우리대장은 뒤에서 오고 여성산악회원 9명이 길을
개척하며 내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곧장 내려가라는 기자의 지시였지만 어찌 곧장 내려갈까.
가파른 절벽, 계곡의 바위들이 중간에 끊기고 허리까지 들어가는 낙엽밭은 위험
천만 수위다. 아무리 오지를 소개한다 해도 누가 이런 산을 찾아올까 싶을 정도이다.

길없는 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고 잔뜩 찌푸린 하늘에선 간지러운 빗방울이 마른
바위에 점을 찍어 놓는다. 삼삼오오 나눠지면서 앞사람이 보이지 않으니 앞서간
발자국이 보이질 않아 내가 새로운 길을 만들며 가게 되었다.
불안함과 두려움이 잠시 스친다.
끊어진 일행의 모습이 언뜻 보이자 이내 반가워 발걸음이 빨라진다.

얼마쯤 내려갔을까
"길이다"라고 소리치는 회원의 외침이 왜그리 반가운지 모두가 환호성이다.
스스로 길을 찾아 내려왔다는 자긍심에 모두가 마음에 하이파이브를 하며
잘 닦여진 도로를 눈앞에 두고 숨을 고른다 (16:50)
반듯한 길을 보니 죽은 사람 살아 돌아온 것처럼 반가워 눈물이 다 나올 정도라고
말하던 회원의 말에 모두가 응수한다. 
"맞아 맞아"

엉금엉금 기어 아스팔트 길 위로 손에 손잡고 올라가 산행의 종지부를 찍고 
앞으로 있을 어둠 속 끝없는 길을 예감치 못하고 뒤에 올 일행들을 기다린다.
30여분 늦게 모습 보여준 일행들은 우리가 내려온 계곡이 아닌 산 위에서 신호를 
보낸다. 아마 능선따라 내려왔음인지 신호를 보낸 10분 뒤쯤에야 하산하여 우리들과
합류한다.
이미 어두워진 아스팔트 위....
이젠 도보행진이다 (17:40)



분명 차도임에도 차한대 지나가질 않고 인가 한 채 보이질 않는다.
우리들의 발자국만이 어둠 속 정적을 깨트린다.
저만치 불빛이 보이면서 개짖는 소리가 들린다.
30여분 더 내려가야 한다는 말에 발걸음은 더욱 빨라지고 뒤쳐진 기자와 태백산악
회원들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마음이 급하니 더욱 빨라질 수 밖에...
길없는 길을 따라 하루종일 걸었는데 편편히 닦아놓은 길 몇날 며칠을 못갈까. 
다시는 오지산행을 안한다는 회원이 없을 정도로 그 묘미에 빠져버린 여인들...
정상에서 코스를 잘못 잡은 탓에 주차해 놓은 곳 반대편으로 하산하여 긴 거리를
걸어야 하는 잘못된 계산이 옥의 티랄까 이런 경험 하나쯤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 놓는 것도 괜찮을 듯 싶었다.

어둠 속에서 내려오는 차를 한 대 잡아타려는 우리들의 계산에 지나치는 차는
엑스표만 그어댄다. 한참을 지난후에 기자와 그 일행들이 도착하고 마음씨 좋은
여자 오너로 인해 차를 가져온 몇명이 얻어타게 된다.
기다리고 있으니 차 넉대가 흘러 내려온다.

하루를 마감하고 너무 늦은시간까지 오지산행으로 특별한 경험 하나씩 안겨놓고 
다음을 기약한다. 뿔뿔이 흩어지면서 각자 타고온 차 안으로 나눠 오른다.(18:40)
길없는 길에 발자국 남기며 내려왔지만 곧 없어질 우리들의 흔적이다.

어느 누가 우리의 뒤를 이어 이 오지의 산을 선택하여 흔적 남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