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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냉장고에 담긴 겨울 행복


BY 소나기 2004-12-06

윙--

툭,

김치냉장고 소리

긴 동면에 앞서 바지람으로 채비한 겨울이 가득 담긴 넉넉한 소리다.

"남들처럼 부식 가게나 백화점에서 사다 먹으면 그만일 걸 왜 사서 고생이람."

20포기나 되는 배추를 소금에 절일 때만해도 입에 달고 살던 투덜거림이 다 사라지고 마치 만석꾼이 된듯 뿌듯하다.

 김치 냉장고 가득 채운 배추 김치를 선두로 무김치,갓김치, 동김치, 순천이 원조인 고들배기 김치까지 그득그득 채워져 있으니 요즘은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하지만 대한 민국 주부들 다 통감하는 일이겠지만  겨우내 먹을 김장 앞에선 웬지 돌덩이 같은 중압감을 어쩌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 김장 때가 되면  일주일 전부터 걱정으로 잠을 설친다. 하지만 어쩌랴. 귀신 같이 산 김치인줄 알고 젓가락 가는 횟수를 줄이는 네로 황제의 까다로운 입맛도 입맛이지만 웬지 남의 손이 간 김치는 못 미더워 결국 내 손으로 직접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 성격도 문제는 문제다.

 요즘은 산 김치도 맛과 품질 면에서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지만서도 김치란 장맛과 같아서 집집마다 장맛이 다르듯 그 맛이 달라 독특한 맛을 내니 어쩔 수 없다.

우리 네로 황제, 재료 고르는 것부터 열과 성을 다한 솜씨 좋은 어머님의 손맛으로 길들여진 사람이라 웬간한 김치엔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양근  고추에, 잘 숙성된 젓깔은 물론이고 싱싱한 토하(민물새우), 속살이 얇으면서도 잎이 노란 단 배추고르기, 알맛게 매우며 달콤한 무는 김장의 맛을 더한층 깊게 한다고 김치를 담그실 때면 몇번이고 되새김질하신 시어머님 덕에 이제는 네로황제의 입맛을 사로 잡을 수 있지만서도 그 힘듬은 아는지 모르는지 김치 냉장고까지 사 주며 은근 슬쩍 김치를 많이 담그라는 충동질을 해댔다.

밤새, 고들빼기 다듬는 모습 안보이나.

남들처럼 배추도 대충 절이지 않는 내 성질 알면서,

그 철없는 충동질 힘입어 20포기되는 배추 2등분으로 잘라 물 간 한 후 켜켜 소금 뿌려 절인 뒤 풀이 죽었다 싶으면 간물 빼내고 (그렇지 않으면 씁쓸한 맛 남) 통닭처럼 밑둥을 아래로 세워 고루 간이 들게 하였다. 잘 절여진 배추 씻어 건진 뒤 바구니에 차곡차곡 쌓아 하룻밤 물을 뺀뒤 잘 다듬은 후 배, 양파, 멸치젓, 마늘, 생강, 새우젓, 생새우(토하나 일반 새우),고추 간것에 찹쌀 풀 간 것을 섞어 휘휘저은 뒤 액젓으로 간한다.  좀 묽다 싶으면 고춧가루로 걸죽하게 농도를 맞추었다. 그리고 밤새 준비한 속 재료(무채, 갓,파, 채썬 배, 밤,(밤 없으면 밤고구마 채썰어도 됨). 미나리에 본 양념과 참깨를 섞어 버무려 둔 뒤 배추 하나하나에 남은 양념을 한 뒤 켜켜로 속을 넣어 예쁘게 옹송그려 김치통에 넣었다.

이런 와중에도 엄마 김치가 최고라며 우리 공주는 김치 가닥을 뜯어 참깨에 듬북 찍어 와삭와삭 먹어댄다. 이를 질세라 김치는 매워 싫다는 왕자도 덩달아 김치 먹기에 여념이 없다.

 배추 김치가 다 된 뒤 무우를 넓고 납작하게 썬 것을 버무려 켜켜로 배추김치 사이에 넣고 갓도 멸치젓 듬뿍 넣어 감칠맛 나게 버무려 김치 통에 차곡차곡 채워두니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뿌듯했다.

 저녁엔 먼 조도에서 일주일간 손수 된장국 끓여먹으며 생활한 네로황제를 위해 보쌈을 준비했더니 네로황제 반주로 소주 한 병을 마시며 한마디  하사했다.

 "역시, 당신이 담근 김치가 최고야. "

"어디 어머님 솜씨만 하겠어?"

"아냐. 우리 학교 선생님들도 당신 김치면 다들 넘어갔잖아. 나도 인정해."

"맞아, 엄마 김치가 최고야 최고!"

아부 잘하는 우리 왕자, 공주 합창하듯 소리쳤고 네로황제는 엄마 김장담그느라 힘들었으니  내일 낙안 민속촌으로 놀러가는 하사품을 추가했다.

그러나 이것도 병인가.

낙안 민속촌에서 꽁보리밥만 먹고 구경만 했으면 오죽 좋으련만 그놈의 고들빼기가 웬수지. 그만 내 눈에 딱 뜨인거라.

"에라. 모르겠다. "

눈 지끈 감고 1300원 달라는 걸 1000원씩에 10포기 사서 왔지요.

산 것 까지는 문제가 없었는데 뿌리까지 갉아가며 다듬는 것이 보통일인가. 밤 12시가 넘도록 다듬어 씻은뒤 간하고 보니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그래도 쌉쌀한 그맛이 사람 죽이는 것을 떠올렸다. 연 이틀을 우러낸 고들빼기에 배추 양념과 같은 양념에 쪽파, 당근채를 썰어 찹쌀풀을 넉넉하게 부어버무린 뒤 설탕 약간, 참깨 넉넉히 부어 다시 버무려 한 입 먹어보니 쌉쌀한게 입맛을 확 돌게 하는 것이 옛날 임금님 진상품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내친김에 다하자 싶어 동치미까지 담그기로 마음 먹고 알맞은 크기의 무를 세단 사와  무청 부드러운 무청 몇가닥만 남기고 잘 다듬은 뒤 씻어 소금을 고루 뿌려 간했다.

 무를 간 한 뒤 삼일이 지난 다음 독에 물을 붓고  소금으로 간 한 뒤 양파 주머니에 찰밥. 마늘, 생강 다진것, 쪽파 뿌리 씻은 것을 담아 입구를 묶은 뒤 항아리 깊숙히 잠기게 넣었다. 그리곤 생고추(파란것, 붉은 것 다섯 개씩 동동 띄워두었다.

"이제, 김장 끝 !-----"

 하여튼 네로황제의 은근한 충동질로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힘든 며칠이었지만 김치 냉장고 가득 채워진 김치로 겨울을 넘어 여름까지 행복할 것 같다.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날 잘익은 동치미국물에 냉면을 말아 후루룩. 생각만해도 군침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