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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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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첫눈오던 날을 기억하니?(2)


BY 개망초꽃 2004-12-06

내 글을 다 읽고 자리에 앉았는데도 내 몸은 바람에 떨고 있는 문풍지 같았다.

“친구와 첫눈을 비교하며 잘 썼네. 글재주가 있었구나.”
서울에 와서 처음으로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다. 내게 산골에서 왔다고 무시하던 반 친구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친구들의 눈에 비친 나라는 존재는 어? 제법인데? 하는 눈빛이었다. 교실 창밖은 눈이 더 쌓여 시멘트로 덧발라진 도시가 아닌 산골 풍경이 되어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일었다.

강원도 골짜기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2학년 때 동두천으로 전학을 왔을 때 반 아이들이 "감자바위" 라고 놀렸고, 동두천에서 살다가 다시 고향으로 전학을 갔더니 "서울깍쟁이"라고 나랑 놀아 주지를 않았다. 내가 우등상을 받아도 그림 상을 받아도 서울에서 왔기 때문에 준거라고 복도에 붙은 내 그림을 지적하며 수근덕 거렸다. 다시 5학년 때 서울 작은집으로 전학을 왔을 땐 더 이상 나의 감정을 발견할 수 없는 약간은 모자른 듯한 내가 키만 웃자라고 있었다. 응달 아래서 식물들이 탈색되어가며 키만 껑충하게 자라듯 다리만 황새다리처럼 길고 목은 털을 벗겨 논 닭 모가지처럼 징그럽게 야위어가고 있었다.

보배는 항상 두 갈래로 머리를 묶고 다녔다. 난 그런 보배가 깔끔하고 예뻐 보여서 작은엄마한테 두 갈래로 땋아 달라고 했더니 머리채를 잡아 당기며 너 같이 마른 것은 풀어놓고 다니는 것이 낫다며 욕만 하셨다. 그래서 보배한테 너처럼 두 개로 묶고 다니고 싶다고 했더니 보배가 두 갈래로 정성껏 땋아 주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내가 봐도 청순한 소녀 같았다. 보배도 어울린다고 맨 날 자기가 땋아 준다고 했다. 그때 그 모습으로 보배랑 같이 보배네 집 꽃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었는데, 몇 년 동안 내 책갈피 속에 있다가 어디로 도망을 가버렸는데 없어지고 말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가서 내가 엄마와 같이 살게 되어서 왕십리로 이사를 갔었는데, 그래도 한동안은 보배네 집에 놀러도 가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에 어떤 이유로 보배랑 연락이 끊어졌는지 지금까지 기억해 내지 못하고 있다.

첫눈이란 제목의 글을 읽고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은 뒤부터 나는 애벌래에서 날개를 단 곤충이 되어 있었다. 6학년이 되면서 성적도 계단을 밟듯 올라가고 내가 그린 그림은 항상 선생님 손에 들려 교실에 걸렸고 붓글씨도 잘 썼다고 교실 뒤에 붙게 되었다. 잠시 내가 버려진 상태가 되었다가 글짓기로 인해 마지막 초등학교 시절은 나의 감정을 발견해 나갈 수 있었고, 나의 감성을 느긋하게 푸는 실마리가 되었다.

6학년이 끝나갈 무렵 작은집은 구멍가게를 얻어 장사를 하게 되었고, 나는 엄마와 살게 되어 왕십리 시장 통으로 이사를 했다. 왕십리도 작은집처럼 풀 한포기 자랄 수 없는 시멘트 바닥에 부엌도 없는 더 나을 것도 없는 환경이었지만 작은어머니 눈초리에서 벗어 낫다는 것만으로도 어디든 날아갈 꿈이 내 두 겨드랑이에 붙게 되었다. 도회의 창백한 형광등 불빛과 높다란 담벼락의 황량함도 엄마 옆이라서 그래도 참을만했다. 산골에서 도회로 접어들기까지의 몇 년이란 기간은 내게 있어 무엇보다 지루하고 끔찍한 시련기였다.

보배는 어디로 갔는지 아직까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헤어지던 그 시기에 뚜렷이 기억나는 몇 가지가 있을 뿐. 보배네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넓은 마당과 여러 개의 방이 있던 집을 팔고 미아리 고개를 넘어 마당이 없는 방 두 칸짜리 산꼭대기 집으로 이사를 했다는 것과, 언제나 밝게 동그란 얼굴로 나를 대하던 보배의 얼굴이 검게 찌그러들고 있었다는 것과, 왕십리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보배는 차창 밖에서 내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던 모습......이것이 보배와의 인연의 끝이었다.

얼마 전 매장에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새로운 손님이 두 분 오셨었다. 한 손님이 같이 온 친구에게 이름을 부르는데 보배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내 친구 보배가 생각나서 혹시 성이 장씨세요? 하고 물었더니 아니요 김 씨인데요 했다. 손님은 왜 그러시냐는 표정이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제일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름이 장보배였거든요 그래서.....보배라는 손님은 그래서 그랬구나하는 얼굴로 몇 초였지만 서로 마주 보며 무언으로 대화를 나눴다.

작은 집은 구멍가게를 시작으로 조금 더 넓은 수퍼로 살림을 늘리게 되었다. 작은 아버지는 한쪽 다리를 절룩거렸지만 장사를 하시는데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작은 어머닌 살림이 윤택해지니까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셨다. 내 손을 잡으며 착한 너를...미안하다 사는 것이 힘들다보니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오늘 첫눈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왔다간 흔적도 없이 인도는 말라 있었고, 하늘은 푸르게 낯을 닦고 있었다. 오늘 첫 눈 속에 얽힌 어린시절은 보배로운 친구를 발견하게 되어 가치 있는 추억으로 정리했다. 하루가 굴곡없이 밋밋하고, 젓은 청바지를 입고 있는 것처럼 묵직할 때, 어린시절을 떠올리면 그런대로 재미가 있고 행복의 온기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