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거실에는 지난 추석 성묫길에서 꺾어온 감나무가지가 걸려있다.
오랫동안 보려고 벽에 걸어두었는데, 우리 집에 놀러온 막내가
두 개 밖에 남지 않은 붉은 홍시를 뚝 따버렸다.
물론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내게 묻지도 않고 따버리는 막내를
의아하게 바라보다 꿈을 깼다.
임신 중인 막내 동생이 태몽을 아무도 꾼 사람이 없다며 아쉬워했는데,
그래서 꿈을 꾼 것일까?
막내에게 꿈 얘기를 했더니 ‘붉은 홍시‘감은 딸 꿈인 것 같다며 무척 좋아했다.
어릴 때 내 무릎에서 놀았던 막내가 어느새 시집을 가더니 임신을 했고
올 여름 내내 입덧으로 고생을 했었다.
살이 쭉 빠져 안쓰러웠는데, 다행히 지금은 입덧이 가라앉아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어 양 볼에 조금씩 살이 오르고 있다.
막내는 예쁜 딸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겠다며 유난히 딸을 기대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막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기쁨이 가득 묻어있는 들뜨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초음파 검진했는데~~ ㅎㅎ~~ 의사에게 살짝 물었거든,
출산준비물 때문에 그러는데요. 뭐예여? ㅎㅎ
그랬더니 첫 아이니까 무난한 걸루 준비하세요. 하는 거야.
그래서 얼른 우린 딸을 원하고 있어요. 했지.
그랬더니 의사가 그럼 그렇게 준비하시면 되겠네요. 하는 거야.
언니 딸인 것 맞지?ㅎㅎ“
-그래 딸이다. 축하한다.
-언니 꿈이 맞았어, 홍시 감 꿈 말야.ㅎㅎ
나는 속으로 꿈을 떠올리며 웃었다.
- 막내야. 내 꿈속에선 니가 홍시 감 두 개를 땄거든. 그럼 딸 둘인데...
- 그럼, 딸 하나 더 낳아야 돼?
-그래야할 것 같은걸,ㅎㅎ
-ㅎㅎ 나중에 봐서 딸 하나 더 낳지 뭐.ㅎㅎ
유난히 배가 이쁘게 불러오더니 딸이었구나. 막내와 전화를 끊었지만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결혼을 할 때 남편과 약속을 했었다. 이쁜 딸 하나 낳아 잘 기르자고....
그런 우리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아 이쁜 첫 딸을 낳았다.
임신중독증이 심해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일주일을
병원에서 지내야 했지만 산후조리를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교대로 해 주셔서 몸도 빠르게 회복되었다.
저녁이면 병원으로 곧바로 퇴근한 남편은 딸아이를 들여다보는 재미에
집에 가서 푹 자라는 시어머니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선잠을 자곤 했었다.
흰 피부에 이목구비가 오목조목해 앙증맞고 귀여웠던 딸아이는 온순했지만
잠투정이 심했고, 입이 짧아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퇴원후에도 친정어머니가 가까이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늘 잠이 부족했다.
그래서 밤이면 녹초가 되어 곯아떨어지곤 했는데,
신기했던 것은 잠을 자면서도 온 신경이 곁에 있는
아기에게로 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잠결에도 아기의 세미한 보챔이나 칭얼거림까지도
민감하게 감지해 잠에서 깨곤 했으니까,
이런 능력은 하나님께서 모든 엄마에게 부여해주신
특별한 은사라는 생각이 든다.
설레임 가운데 임심사실을 알게 되고 열 달간 인내의 시간을 지내며
아기를 맞을 준비를 한 뒤. 새 사람을 만들어냈다는 경이로운 기쁨으로
첫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의 감동은 아마 평생 동안 못 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