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저, 배아파요."
"배가 왜 아프니? 엄마가 새벽시장에서 옷사러 갔다 올때 다 됬으니 조금만 참았다 병원에 같이 가거라."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어머님은 도착을 했습니다.
으슬으슬 춥고 배도 아파서 8 월 한여름에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쓰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하면서 혼자 뻘뻘 힘들어 하는 중이었습니다.
한참후 어머님이 오셔셔서 "너 왔니? 나 마중 나왔구나! 내 옷만 사왔다고 샘 내지 마라."
"아이고, 배고프다, 점심부터 먹자."
어머님은 서둘러 점심상을 차리라 하쎴고, 아버님은 호통치실 준비중 이쎴습니다. 드디어
"당신 밥 먹지마! 새애기 아까부터 배아프다고 고생하는 중이니 빨리 병원 부터 택시 타고 다녀와요."
"어느병원?"
"산모니까 산부인과 데려가야지"
"애 나올때 멀었는데 무슨...."
"당신이 안 아프다고 그러는가? 잔소리 말고 빨리 다녀와요."
저는 부모님의 말다툼과 어머님의 투정소리를 들으며 힘겹게 발을 옮겼습니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봉고차르 몰고 지나가던 후배가
"누나! 왜그래?, 내가 병원 까지 태워다 줄께요."
덜컹거리는 봉고차 뒷좌석에서 나는 드디어 진통다운 진통을 느꼈다.
이를 악 물고 병원에 도착하니 , 그날따라 왜 그리도 애 낳으러 온 사람이 많은지 접수하기도
힘든 상황 이었습니다.
대기실에 앉아있는 하얀 얼굴의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아픔을 이기고 있었지요.
아기 낳는 상식은 커녕 말 조차 듣도 보지도 못했던 나는 엉거주춤 엉덩이를 반쯤들고
완전히 동물적인 감각으로 참고있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미련 곰탱이지요.
그러는 와중에도 어머니는 어김없는 수다한판을 펼치고 계셨죠.
바로 옆에 계시던 할머니 한분이 나의 얼굴과 어머니 얼굴을 한번씩 번갈아 보시고는
어머니께 "시어머니유, 친정어머니유,"]
"산모 얼굴이나 보면서 수다를 떨지 그러우, 딸이라면 저지경 속에서 수다를 떨수 있겠수?'
그러자 여러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꼿히더니 한 말씀씩 하시더군요.
"산모 다 죽어 가네 , 시어미 앞 이라고 참고 있나봐, 어지간 하네 둘다."
그제서 정신이 들으셨는지 어머님은 서둘러서 간호사를 찿고 분마실로 옮겨 졌습니다.
진찰결과 이미 양수도, 이슬도, 다나온 상태고 설상 가상 애기 머리까지 보인 다고
그 자리에서 힘을 주라네요. 아주 길고 힘껏이요.
"엄마~~~~~~, 나 똥 쌀 것 같 아~~~~~~~,"
그렇게 하늘이 노래지는 힘을 길게 주고 우리의 표주박 머리를 가진 첫 아들을 낳았답니다.
그러나 기쁘기는 잠깐 팔삭동이에 저체중으로 엄마손에 안겨보지도 못하고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서 소아 아동 병원 으로 후송이 되었답니다.
결혼한지 3개월만에 태어났으니 얼마나 소란스럽던지.
시누이는 조태하고 병원으로 오면서 줄곳 "고모" 를 녹음 하면서왔데요.
많이 듣는 말을 먼저배운다고하면서요.
군에있는 시동생은 우연히 전화하고싶어서 했다가 소식듣고 당장 휴가받아 올거라고 하고
아버님은 호적정리며 족보 갱신까지 해야겠다고 전화기들고 작명소 찿고 사전 찿고
어머님은 미역국 끊여야한다고 시장봐야 한다고 이리뛰고 저리뛰고
친정엄마는 그제서 기저귀 만든다 , 이불 만든다 ,
신랑은 젖병사고 딸랑이사고 등등ㅡ등,
정신없는 전쟁터가 따로 없었죠.
한달후 우리는 소아아동병원으로 아기를 보러갔죠.
아무 이상이 당연히 없을 거라 믿고 면회 신청을 했습니다.
아빠 이름이 아닌 할아버지 성함으로 "이 문 세" 이름표를 창문 앞에 대는 순간 간호사들의
호기심으로 순서도없이 일착으로 보여주더군요.
머곳으로부터 인큐베이터안에 있는 아기의 모습이안보이자 간호사들이 앞으로밀어오는
순간 머리에는 주사를 맞고 있고 팔 다리는 앙상하고 너무 애처로웠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편 을 콕찍어 놓은듯 너무쏙 빼닮아서 신기해했었죠.
시댁식구들은 모두 즐거워 하며 좋아 했습니다.
문제는 저의 똥 고집이 발동 했지요, 당장 퇴원시키고 싶었습니다.
여러사람의 설득에도 굴하지않고 각서까지 쓰면서 데려왔습니다.
데려온후 깨끗이 씻기고 만 하루를 조심히 들여다만 보았죠.
하루가 지나자 배고프다고 빼꼼히 하품 비슷이 하며 눈을 살짝 윙크 하듯이 뜨더군요.
그동안 여러 책을 읽은 상식으로 젖병에 우유를 타고 먹였더니 신기하게도 너무 잘먹고
씩웃는 것이 아닙니까? 얼마나 신기하던지 경험 하신 분들은 아실거예요
첫 아이의 첫경험이 얼마나 가슴 졸이는 시행 착오가 많았는지 ........,
밤새는 일을 밥먹듯이 했던 기억이 엊 그제로 생생한데 벌써 고등학교에 간다네요.
지금껏 씩씩하고 건강하고 똑똑하고 야무지게 말잘듯는 아들로 잘 자라 주었습니다.
이제는 아빠 키도 넘어서 "비" 닮았다고 인기도 짱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