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유난히 어린아이를 좋아하였다.
농사 일에 바쁜 엄마 일손은 덜어 줄 생각을 하지 않고 남의 집 아기 업어주는 일에 열심이었다.
엄마에게 야단을 맞아도 살짝 숨어 아기가 있는 집에 가서 아기를 들여다보는 일이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엄마는 내가 사라지고 없으면 아기가 있는 집으로 찾으러 왔었다.
결혼한 후 십일년 째 비로소 첫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는 엄마 이야기를 듣고 결혼도 하기 전에 나도 그러면 어쩌나 미리 걱정을 하기도 하였다.
내가 그토록 기다리는 것을 알았는지 결혼하고 잠시 후 입덫이 시작되었다.
지독한 입덫이었다.
입덫하는 동안 내 몸무게는 52킬로에서 43킬로로 줄었으니까...
그래도 나는 씩씩했다.
내 아이를 갖게 된다는 기대에 부풀어 먹는대로 토해도 불평도 하지 않고 견디었다.
남들은 불안해 한다는 출산을 앞에 두고도 용감했다.
골반은 작고 아이는 커서 힘든 출산이었다고 의사는 그랬지만 난 아이를 얻는 기쁨에 그정도 고통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행여 아이가 부정 탈까 염려된다고 친정어머니는 소미역국을 끓여 주었다.
나는 친정어머니에게 큰소리쳤다.
"그런 소리 하지마. 내가 아들 낳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소미역국을 먹게 생겼어? 빨리 고기 사다 넣고 고깃국 끓여 줘."
친정어머니가 아이 목욕시키는 것이 내 눈에 시원치 않아 보였다.
"이리 줘, 내가 씻길 거야."
그리고 아이 낳은 지 사흘 후 부터 아이 목욕 시키는 것도 내가 하였다.
아이 욕심이 많은 내가 아이를 씻기는 기쁨을 내것으로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모유 수유를 고집하였다.
젖꼭지를 물고 나를 바라보는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면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 기쁨을 위해서라면 참을 수 있었다.
퇴근 길에 퉁퉁 불은 젖이 흘러 치마가 다 젖어 창피했던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엄마 마음을 아는지 아이는 가리지 않고 낮에는 우유를 먹고 밤에는 엄마젖을 먹었다.
참으로 순한 아이였다.
아이로 인해 밤잠을 설친 기억이 없을 정도로 순한 아이였다.
연년생으로 둘째가 생겼을 때 할머니가 큰애를 데리고 주무시겠다고 하였다.
낮에 일해야 되는데 둘을 데리고 자면 너무 힘들다고...
며칠 후 남편에게 말했다.
"건너방에 가서 애 데려 와, 나 한숨도 못자도 좋아. 낮에도 못 보는데 밤에라도 데리고 잘테야."
두 녀석을 양 옆에 누이고 속으로 다짐했다.
'누구에게도 안 뺏길거야. 내가 낳았는데...'
걸음마를 시작하고 제법 잘 걷게 되었을 때, 퇴근해서 돌아오는 날 멀리서 보고 두 팔을 벌리고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하지만 귀밑머리가 바람에 날릴만큼 빠르게, 내게 달려올 때 내 가슴은 뛰었다.
연애할 때 남편을 보고 뛰던 가슴보다 더 세차게 뛰었다.
'아, 이런 것이구나. 엄마가 된다는 것은...'
너무도 좋아서 눈물이 날 만큼 행복했다.
출근하는 날 붙들고 가지 말라고 할 만큼 자랐을 때, 아이를 꼬드겨보려고 사탕을 주면 사탕을 내던지고 소용없으니 가지 말라고 사정하였다.
떼어놓고 돌아서는 마음이 천근만근이었지만 한편 가득차는 기쁨이기도 하였다.
'어느 누가 그만큼 날 사랑하고 필요로 할 것인가?"
네 살, 세 살, 두 아이를 돌봐 주던 사람이 갑자기 그만 두겠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시할머니는 화가 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도 내일 시골로 내려 갈란다."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으로 뒤돌아 앉아 아이에게 실없는 하소연을 하였다.
"어떡하니? 할머니도 내일 시골 가신다고 하네..."
내 말에 블럭쌓기를 하고 놀던 큰 녀석이 말했다.
"엄마, 걱정하지 말고 출근 해. 내가 동생 잘 데리고 놀테니까..."
고 녀석 제 나이도 모르고 내 형편만 헤아릴 줄 알았다.
'어느 누가 나를 위해 자기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일을 해주겠다고 선뜻 말해 줄까?'
눈물이 핑 돌았다.
카세트 테잎을 통해 동화를 듣던 녀석이 불쑥 물었다.
"엄마, 엄마는 보석이 어디있어?"
결혼 반지라고 가느다란 실반지 하나 끼고 있는 엄마가 이상했던 모양이다.
"음, 엄마 보석? 엄마 보석은 너랑 네 동생이야."
얼굴이 환해지면서 녀석은 다시 확인한다.
"정말?"
"그럼, 정말이지..."
내게 자기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녀석은 짐작도 못하면서 그래도 좋단다.
'그럼, 너는 내 인생 최고의 보물이지. 내가 세상을 살면서 얻은 것 중 최고의 것이고 말고...'
그 이쁜 녀석이 사춘기를 혹독하게 겪었다.
녀석 덕분에 생전 가 본 적이 없는 법원도 가 보고, 정신 병원도 가 보고...
사랑한다고 하면서 인간들이 서로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사는 지도 알았다.
어려서 준 기쁨이 컸으니 그로 인해 받는 아픔도 수용해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아팠다.
커다란 아픔을 내게 주어도 되갚아 줄 수 없기에 그 아픔이 더 컸다.
되갚아 주기는 고사하고 아무리 커다란 아픔을 주어도 나는 사랑할 수 밖에 없음을 발견하고 슬폈다.
그리고 그 아픔을 통해 비로소 알에서 부화하듯 새로운 삶을 볼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가 자란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 공감하게 되었다.
내게 기쁨과 껍질이 깨지는 아픔을 동시에 준 녀석,
날 한단계 성숙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준 녀석.
그래, 넌 내 보물이야.
네가 나에게 준 기쁨도 아픔도 모두 내 인생을 풍성하게 해주었지.
넌 내 인생 최고의 보물이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