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 3일 늦은 8시 24분.
8시간의 진통 끝에 윤하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탯줄도 자르지 않고, 태지도 제대로 걷어내지도 못한
모습으로 내 배위에 얹혀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눈물과 함께 하느님을 연신 찾아대며
누군지도 모를 이에게 감사했고,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도 나와 다를 바가 없었다.
모든 부모에게 자신의 아이는 특별하겠지만,
우리 부부의 첫아이는 나름의 남다름이 있어
더욱 감동스럽고 특별했으리라..
결혼 후 1년을 꽉 채우고 우리는 첫 아이를 임신했다.
주변의 사람들 중 아이 낳고 키우는 것에 큰 문제가 있었던
사람이 없었던 지라 나는 장거리 출.퇴근, 반복 되는 야근 등에도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다. 또한 업무가 과중한 편이기는 했으나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기에 태아에게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도 역시 하지 않았다.
그 정도의 스트레스는 어느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고 여겼었으니까…
첫아이 임신 중 시아주버님 한 분이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친정 아버지가 큰 수술을 받으시고, 전세 계약까지 만료에 가까워
만삭의 배를 안고 이사까지 하게 되었다.
결국, 임신 기간 중 크고 작은 일을 연이어 계속 치른 셈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그래도 어느새 예정일을 3주 남겨 놓았을 때였다.
퇴근하는데, 뱃속의 아이가 심하게 꿈틀거리는 거였다.
그리고는 하루 동안 태동이 없었다. 병원을 가 볼까 하다가 이틀 후가
정기 검진일이라 기다리고 있었는데….
참,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세상에 그런 일도 있나….
낳을 날 만을 손가락으로 세고 있었는데, 태아사망…유산이란다.
정확히 말하면 사산이라고 봐야 한다나….
나는 나흘동안을 촉진제 맞고 유도분만을 해서 울지도 못한 첫아이를 낳았다.
진통 중인 나흘동안을 눈물을 흘리고, 분만 때에도 눈물만 흘리고,
퇴원할 때에도 만삭이 였던 배는 훅 꺼져 있건만,
내 손과 가슴 안에는 있어야 할 내 아기가 없었다.
그로부터 한달 이상을 눈물로 세월을 보냈던 것 같다.
그렇게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우리의 아픔은 한동안 지속됐다.
힘들어 하는 나를 위해 내색 한 번 제대로 못하고 가슴으로 울음을 삼켜야 했던
남편과 가족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보다 더 힘들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6개월 후.
우리는 다시 아이를 갖게 되었다.
이번에는 미련없이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회사 측에서도 나의 사정을 알고 있는 터라 뭐라고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태교도 태교지만 마음을 편히 하고, 무엇보다 뱃 속의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 부부는 많은 노력을 했다.
그리고 열달 후 그 아이는 우리의 또 다른 의미의 첫아이로 세상에 나왔다.
지금 윤하는 우리 부부에게 너무도 큰 행복을 주고 있다.
17개월이 된 요 개구쟁이 아들녀석 크는 모습이 너무 아깝다면 남들이 웃을까?
젖만 찾다가 젖을 떼고, 숟가락에 익숙해 지고….
뒤집기도 힘들어 했던 아기가 기어다니고, 걸어다니고,
이제는 뛰기까지…
모든 음식을 으깨주고, 즙을 내 주었었는데, 지금은 사과도 혼자 와삭
베어물고…
응애 응애 울기만 하던 녀석이 이제는 의젓하게 엄마, 아빠를 말하고
감탄사를 연발하면, 안돼, 아냐 등 제법 말다운 말을 할 줄 알게 되다니...
이렇게 자라나는 과정의 모습들이 순간순간 놓쳐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행복한 투정이겠지만…..
나중에 윤하가 크게 되면 자신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행복을 안겨준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인지를 자주 말해 주고 싶다.
그리고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