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남편과 저금통을 쏟아붓고 오백원짜리 동전부터 하나 둘 세어갑니다..
지금은 여섯살인 딸 아이가 백일 때 쯤..
그러고보니 아마 요맘때쯤 이었을 겁니다..
남편이랑 백화점에 갔다가 사려고 했던 물건들의 비싼가격표 때문에 움찔거리며
이것저것 기웃거리기만 하다.. 저렴하면서도 아주 키가 큰 저금통을 하나
구입 했습니다..
그때 남편이랑 그렇게 약속을 했었죠..
“이 저금통을 오백원짜리로 가득채우자…
그래서 동전이 가득찼을 때 그걸로 어디든 하룻길이라도 여행을 다녀오자~” 라고
말이죠..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였을까요…?
남편은 그날 저녁부터 동전을 보기가 무섭게 저금통에 넣기 시작했고…
가끔은 불시검문으로 제 동전지갑안의 동전을 모조리 털어가기도 했답니다~
동전지갑을 열고 저금통에 동전을 넣는 사소한 일에도 부지런함이 인색한
제가 혼자 모았으면 몇 년이 걸려도 어림없었을텐데…
부지런한 남편덕에 매일매일 저금통에서는 쨍그랑쨍그랑~ 경음악 같은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한 일년만에 저금통 입구까지 동전이 가득 올라왔습니다~
남편과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은 어느 날 밤…
아이를 재워놓고 우리는 부엌에 신문지를 몇장이나 깔아놓고 동전을 쏟아
부었습니다.. 처음 동전을 넣긴 시작할때는 오백원짜리만 넣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쏟아놓고 보니 백원짜리 그리고 오십원과 십원짜리가 골고루 섞여있었죠…
하지만 금빛과 은빛으로 반짝이는 동전 무더기를 보는 우리에게 백원짜리와
오십원짜리 동전이 섞여있다는 그 사실은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었죠~
흥분한 우리는 우선 오백원짜리를 열개씩 한묶음으로 나란히 세우고 다음엔
백원짜리 스무개를 한묶음으로.. 그리고 오십원과 십원짜리를 차곡차곡
쌓아갔습니다..
서로 말도 잊은채.. 하나 둘 셋 넷.. 동전을 세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우리의 가슴 한켠이 따뜻해졌던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그 동전속에 우리의 생활이 고스란히 묻어있다는 것과 또 그것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많은 추억들 때문이었겠지요…
아직 대학원생이던 남편이 돌아올 시간에 맞춰 보골보골 된장찌개를 끓이기
위해서 감자 몇알과 호박한개..
그리고 두부 한모를 사고 남았을 백원짜리 동전 몇 개…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던 딸아이 손을 붙잡고 슈퍼에 들러 아이스크림 한 개
쥐어주고 거슬러받았을 오백원짜리 동전 한 개…
그리고 남편이 버스비를 아껴서 넣었을 동전들 몇 개…
가난하지만 알뜰했던 우리의 일년들은 그 안에 동전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다는
행복은 참 저렴하면서도 단순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분이 좋아졌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그때는 지금보다 가난했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찾고 느끼는
여유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동전들을 모아서 세어보니.. 아마 십육만원 가량…
여행요~?
물론 못갔죠~ㅡ ㅡ
한나절 바다로도 보고왔으면 좋았겠지만..
그땐 지금보다 빠듯하던 때 라.. 추억이 담긴 그 동전들을 은행에서 빳빳한 지폐로
바꿔서 먹고 사는데 보태쓰며 결혼이란 낭만보다 생활이라는 걸 실감 했겠지요…
그렇게 여섯번을 저금통에 동전을 채우고.. 쏟아 정리하고를 반복하면서…
소중한 아이도 하나 더 생겼고 그때보다 조금은 더 넓은 전세집으로 이사도
하게 되었습니다…
또 그만큼 키다리 저금통도 처음 살 때 보다는 색도 바라고 나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화장대 한켠에 자리를 잡고 오늘도 우리의 일상을 땡그랑~ 소리로 받아
먹으며 추억을 저축해 주고 있습니다…
언젠가.. 저금통 안의 동전을 쏟는 날이 여행을 떠나는 날이되는 그런 낭만적인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또 그럴려면 키 큰 저금통을 몇 개는 더 마련 해야겠지만...
여행이 아니라 생활을 위해 저금통을 터는 이 아침..
그래도 오백원짜리 동전들 덕분에 부자가 된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