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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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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원의 행복...


BY 김영란 2004-11-17

 

오늘 아침

 

남편과 저금통을 쏟아붓고 오백원짜리 동전부터 하나 둘 세어갑니다..

 

 

지금은 여섯살인 딸 아이가 백일 때 쯤..

 

그러고보니 아마 요맘때쯤 이었을 겁니다..

 

남편이랑 백화점에 갔다가 사려고 했던 물건들의 비싼가격표 때문에 움찔거리며

 

이것저것 기웃거리기만 하다.. 저렴하면서도 아주 키가 큰 저금통을 하나

 

구입 했습니다..

 

그때 남편이랑 그렇게 약속을 했었죠..

 

이 저금통을 오백원짜리로 가득채우자

 

그래서 동전이 가득찼을 때 그걸로 어디든 하룻길이라도 여행을 다녀오자~ 라고

 

말이죠..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였을까요?

 

남편은 그날 저녁부터 동전을 보기가 무섭게 저금통에 넣기 시작했고

 

가끔은 불시검문으로 제 동전지갑안의 동전을 모조리 털어가기도 했답니다~

 

동전지갑을 열고 저금통에 동전을 넣는 사소한 일에도 부지런함이 인색한

 

제가 혼자 모았으면 몇 년이 걸려도 어림없었을텐데

 

부지런한 남편덕에 매일매일 저금통에서는 쨍그랑쨍그랑~ 경음악 같은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한 일년만에 저금통 입구까지 동전이 가득 올라왔습니다~

 

남편과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은 어느 날 밤

 

아이를 재워놓고 우리는 부엌에 신문지를 몇장이나 깔아놓고 동전을 쏟아

 

부었습니다.. 처음 동전을 넣긴 시작할때는 오백원짜리만 넣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쏟아놓고 보니 백원짜리 그리고 오십원과 십원짜리가 골고루 섞여있었죠

 

하지만 금빛과 은빛으로 반짝이는 동전 무더기를 보는 우리에게 백원짜리와

 

오십원짜리 동전이 섞여있다는 그 사실은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었죠~

 

흥분한 우리는 우선 오백원짜리를 열개씩 한묶음으로 나란히 세우고 다음엔

 

백원짜리 스무개를 한묶음으로.. 그리고 오십원과 십원짜리를 차곡차곡

 

쌓아갔습니다..

 

서로 말도 잊은채.. 하나 둘 셋 넷.. 동전을 세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우리의 가슴 한켠이 따뜻해졌던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그 동전속에 우리의 생활이 고스란히 묻어있다는 것과 또  그것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많은 추억들 때문이었겠지요

 

아직 대학원생이던 남편이 돌아올 시간에 맞춰 보골보골 된장찌개를 끓이기

 

위해서 감자 몇알과 호박한개..

 

그리고 두부 한모를 사고 남았을 백원짜리 동전 몇 개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던 딸아이 손을 붙잡고 슈퍼에 들러 아이스크림 한 개

 

쥐어주고 거슬러받았을 오백원짜리 동전 한 개

 

그리고 남편이 버스비를 아껴서 넣었을 동전들 몇 개

 

가난하지만 알뜰했던 우리의 일년들은 그 안에 동전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다는

 

행복은 참 저렴하면서도 단순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분이 좋아졌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그때는 지금보다 가난했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찾고 느끼는

 

여유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동전들을 모아서 세어보니.. 아마 십육만원 가량

여행요~?

물론 못갔죠~ㅡ ㅡ

한나절 바다로도 보고왔으면 좋았겠지만..

그땐 지금보다 빠듯하던 때 라.. 추억이 담긴 그 동전들을 은행에서 빳빳한 지폐로

바꿔서 먹고 사는데 보태쓰며 결혼이란 낭만보다 생활이라는 걸 실감 했겠지요

그렇게 여섯번을 저금통에 동전을 채우고.. 쏟아 정리하고를 반복하면서…

소중한 아이도 하나 더 생겼고 그때보다 조금은 더 넓은 전세집으로 이사도

하게 되었습니다

또 그만큼 키다리 저금통도 처음 살 때 보다는 색도 바라고 나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화장대 한켠에 자리를 잡고 오늘도 우리의 일상을 땡그랑~ 소리로 받아

먹으며 추억을 저축해 주고 있습니다

언젠가.. 저금통 안의 동전을 쏟는 날이 여행을 떠나는 날이되는 그런 낭만적인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또 그럴려면 키 큰 저금통을 몇 개는 더 마련 해야겠지만...

 

여행이 아니라 생활을 위해 저금통을 터는 이 아침..

그래도 오백원짜리 동전들 덕분에 부자가 된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