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흔 넷 여자와 산다
"왜 결혼했어요? 차라리 혼자 살지." 잔소리가 조금이라도 귀에 거슬린다 싶으면 여자는 십 년이 넘게 써먹어 닳고 닳은 레퍼토리를 어김없이 토해낸다. 고국에 계신 어머니도 여자와 비슷한 말을 했었다. 이쯤되면 나라도 혀나 끌끌 차고 뒤돌아 앉아 버리면 그만일 것을 이에 질세라 시시콜콜한 연애시절 일까지 들추어내고 만다. "허 참, 소가 웃을 일이네. 먼저 꼬리친 건 당신이야. 아줌마, 알고 있어?" "어머머! 웃기는 남자네. 결혼하자고 먼저 말한 사람이 누구였는데." 급기야, 말다툼은 닭이 먼저 일까? 계란이 먼저 일까?로 논쟁하는 것과 비슷하게 전개되고 서로를 향해 언성을 높이면 둘의 얼굴엔 금새 혈색이 흥건해 진다. 유년시절, 부모님의 말다툼이 벌어지면 나치스의 돌격대보다 무서웠다. 싸움의 대부분은 아버지의 급한 성격 때문에 비롯됐지만 결과는 언제나 아버지의 일방적인 승리로 종결되었고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처럼 아버지는 큰소리부터 내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 때마다 자식들은 숨도 마음 놓고 쉬지 못할 정도로 초긴장 상태로 돌입해야했고 아버지의 고함소리는 저승사자의 목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으르렁대는 소는 받지 않는 법이다. 받을 것처럼 으르렁대는 소는 실제로는 받지 않는다는 뜻으로 능력이 없는 사람이 공연?큰소리를 치거나 허세를 부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천만 다행인 것은 아버지는 그렇게 큰소리를 치면서도 어머니에게 단 한 번도 손찌검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자식들은 이제 서로 무언의 사인을 주고받고 각자의 방에 들어가 신속하게 책을 펼쳐 들고 눈은 책으로 귀는 문밖의 상황을 체크해야 한다. 자식들이 이렇게 행동을 통일하는 것은 고래싸움에 새우의 등이 터지는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부모님은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자식이 공부하는데 일부러 꼬투리를 잡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찍이 터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 문밖에선 아버지의 언성이 잦아들고 어머니의 낭랑한 목소리가 귓전을 스치는 날은 운수 대통한 날이었다. 자식들은 패자가 이미 그라운드를 떠났다는 것을 감지하고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喜喜樂樂, 보던 책을 집어 던지고 구멍 난 비닐봉지에서 구슬이 쏟아지듯이 방을 나왔다. 이처럼 어머니가 승리한 날이면 자식들은 마음이 편했지만 해가 지도록 계속되는 승자의 잔소리는 케케묵은 전리품을 늘어놓은 것 같아 무척이나 귀에 거슬리기도 하였다. 부모님의 부부싸움은 그리 잦지는 않았지만 가끔 언성이 높아지면 담 넘어 사는 여자친구라도 들을까 나는 조마조마했고 저렇게 서로 으르렁거리며 어떻게 자식을 셋도 아닌 여섯 남매나 낳았을까? 늘 궁금했다. 때문에 어린 나이에 터득한 것도 많았다. 물 열 길속은 알아도 사람 한 길속은 모르듯이 부부간의 일도 마찬가지며 겉모습만 보고 타인의 가정을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는 것도 실감했으며 부부싸움 또한 칼로 물배기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부부싸움이 결코 자식들에게 악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장차 경험할 부부생활의 일부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화가 나면 큰소리 몇 마디 지르면 그만이었다. 사실 나도 급한 성격의 아버지의 피를 물려 받았기 때문에 잔소리하는 것에 그리 익숙하지 못하다. 파충류가 낡은 허물을 벗어 놓은 듯 집안 여기저기에 팽개쳐진 옷과 물건들은 더 이상 두고 볼 수없을 때 가끔 언성을 높이는데 여자는 이것조차 잔소리로 치부해 버리고 때로는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대강 치우고 살면 됐지, 까다롭기는 옹생원 똥구멍이라는 것이다. 기실, 여자는 내놓고 내게 옹생원 똥구멍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지만 표정에는 이보다 더한 언어폭력이 난무하여 남자 자존심을 무자비하게 무너뜨릴 정도다. 이런 상황에 침묵한다면 나는 바보가 아니면 비굴한 것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나는 여자가 더 이상 변명을 늘어놓지 못하도록 집안 구석구석에 정리되지 않고 쌓여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들춰 내며 고래고래 소릴 지른다. 여자는 더 이상 말을 잃고 장승처럼 서 있지만 속내는 개운해 할 것이다. 여자는 안다. 상황이 이쯤되면 내가 물건들을 깔끔하게 정리할 것이라는 것을. 급한 성격 때문도 있지만 산만한 것을 방관하지 못한 나로서는 어쩔 수없이 집안 대청소까지 하게 되지만 비를 들고 가만히 생각하면 여자가 너무 영리한 것 같아 화가 저절로 치민다. 때문에 시시콜콜한 과거사까지 덩달아 들추게 된다. 하지만 여자는 도울 생각은 않고 아직 쓸만한 물건인데 왜 버리느냐며 언성을 높인다. 세월은 여자를 변화무쌍하게 만들었다. 신혼 초, 여자는 작은 살림이지만 꽤 정갈하게 꾸렸었다. 옷장 정리도 잘하고 한겨울에도 깔끔하게 다림질한 와이셔츠를 아침마다 챙겨 주었었다. 하지만 아이를 가지면서 여자는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청소하고 정돈하는 일까지 소홀해 때로는 설거지, 세탁, 다림질까지 내가 해야 했지만 배부른 여자에게 차마 불평을 늘어 놓지는 못했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는데 그 때부터 여자는 주부로서 해야 할 일을 망각하고 집안정리를 나에게 미루는 버릇이 생겼으며 그 때마다 생긴 사소한 언쟁들이 이제는 부모님의 부부싸움처럼 진화해 버렸다. 돌이켜 보면 그 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여자는 이제 내가 아무리 큰소리를 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나서서 집안정리 할 때를 끈질기게 기다린다. 한마디로 기다리는 데는 표범도 부러워할 정도로 프로선수다. 견디다 못해 내가 큰소리를 치면 마지 못해 걸레를 들지만 그것도 잠시 동족방뇨凍足放尿, 언 발에 오줌누기다. 철없던 시절, 서로가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눈을 잃은 것처럼 답답하여 아름답게 살겠노라 다짐하며 결혼까지 하게 되었지만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아이들의 행동은 유년시절 나를 닮고 여자는 어머니를 닮고 나는 아버지를 닮아 간다. 좋은 점을 닮아도 시원치 않는 상황에 가족모두가 부모의 잘못된 것만 답습한다고 생각하니 불혹지년不惑之年을 넘긴 나이가 심히 부끄럽다. 손잡고 가야할 남은 한 평생이 아직도 지평선 너머에서 기다리는데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고 포기할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내 인생이 천근만근이다. 그래도 한마디는 해야겠다. 옆에서 듣고 보지 않은데 무슨 말을 못할까. "그렇게 쓸만한 물건이면 왜 방치해 놓고 먼지 뒤집어쓰게 만들어? 도대체 살림을 하는 여자야, 고물상을 하는 여자야!" 휴! 속이 다 후련해 진다. . . . 뉴저지 포트리에서 인연... 나이아가라 폭포 입구에서 마흔 넷과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