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나절, 아이들 학교 보내고 부리나케 등산 준비를 했다.
오늘 오전은 흐리다가 오후엔 비가 온다는 날씨 정보다.
하늘은 벌써 희뿌연 안개 구름이 가득 들여차 있고 희미한 햇살만이
그 틈새를 헤집고 살며시 삐져나오고 있다.
'오전에 금방 다녀오면 될 성싶다. 혹여 비가 오더라도 그리 나쁠건 없다.
비가 오면 오는데로 산은 또 멋드러진 풍경을 연출할께 틀림 없으니까.'
오늘 행선지는 갓바위다.
갓바위는 팔공산 줄기에 자리잡고 있으며 우리집에서 차로 30뷴 정도 거리다.
정상까지는 해발 960m 내 도보로 1시간이면 충분하다.
나는 갓바위에 자주 간다.
우선 가까운 것이 가장 큰 이유겠고 정상도 그리 높지 않고 또 등산객이 많아
혼자 가기에도 아무 부담이 없다. 거기에 또 하나 배고플 때는 절밥도 얻어 먹을 수
있어 좋다. 히~
찬이라곤 시래기국에 무짠지 달랑이다 . 아! 어쩌다 운이 좋으면 강낭콩 조림이
한 번씩 나올 뿐인데 밥 맛은 정말 꿀맛이다. 등산하느라 허기진 배가 입맛을
돋구는데 한 몫도 하겠지만 하여튼 무지 맛있다.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다. 그런고로 시주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하여 절밥 얻어 먹기가 왠지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가끔씩 나의 지인들 중 불교 신자와
동행한다. 이들이 내는 시주에 내 밥값도 얹혀있다고 애써 자위를 하며 죄송한 맘을
달랜다...^^
갓바위는 평일에도 불공 드리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요즈음은 수능시험이 임박하니 자녀들을 위해 불공 드리러 오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갓바위 산자락 입구에 다다르면 목탁소리와 함께 불경소리가
구수하고도 은은하게 들려오고 이내 내 마음도 편안해진다.
불경 소리와 함께 숨을 고르며 돌계단을 하나씩 오른다.
일상에서의 찌든 마음과 지꺼기를 걸러낸다는 의미와 앞날에 대한 작은 소망들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돌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오른다.구지 어느 종교에 편향되는
기원이 아니라 그저 편한 마음으로 다만 우주의 절대자에게 지향한다.
평소 나는 예수든, 석가든.마호메트...등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이 우주의 절대자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어느 종교든 가지가 갈라졌을 뿐이지
그 뿌리는 하나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물론 그에 대한 어떤 근거도 이론도 제시할
수 없다. 그냥 내 느낌일 뿐이다...^.*
이젠 가을의 막바지인가 보다.
나무에 잎들은 거의 다 떨어지고 가지마다 듬성듬성 남은 잎만 바람에 달랑거린다.
돌계단 위와 계단 사이사이에 낙엽들이 덮여 발 밑이 폭신폭신하다.
연신 내 눈은 노랗고 붉은 낙엽으로 덮은 숲을 바라보며 헉 헉~ 오르고 또 오른다.
후~ 큰 숨을 한번 내 뱉고 잠시 걸음을 멈춘다.
내가 올라왔던 계단들을 내려다 본다. 아득~하다. 햐~ 내 다리가 대견하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다시 계단 하나 하나 오른다.
약사여래불~ 약사여래불~ 불경 소리가 들린다. 이제 다왔다.
갓을 쓴 돌부처님이 정좌해 있고 그 아래서 합장한 채 연신 절을 해대는 중생들.
저 중생들은 어떤 염원들을 품고 있을까?
나는 난간에 기대어 조용히 눈을 감는다. 부처님께 예를 갖추고 난 다음 뒤돌아서
산 풍경을 맘껏 음미한다.
오늘은 안개 구름으로 가득메운 하늘과 함께 산 봉우리들이 온통 안개에 휩싸여
하늘과 산능선 구별이 어렵다. 간간이 부는 바람따라 안개들이 쏴~ 밀려갈때면
살짝살짝 봉우리들이 자태를 드러낸다.
신비스럽기 그지 없다. 아~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이다.
불경소리가 아득해지고 정신이 아찔해진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고 가슴에 품을 수 있음에 감사 또 감사하며
다음을 또 기약하면서 아쉬운 발걸음 옮긴다. 오르기가 힘겹지 내려오는 건 금방이다.
돌아오는 도로가 떨어진 은행잎들은 마치 노란 카펫트 마냥 길게 늘부러져있다.
한잎이 지나가는 바람에 날려 운전석 앞 유리창에 부딪쳐 흐느적거린다.
부슬부슬 비가 흩날린다.
이 비가 오고 나면 이제 추워지겠지?
저만치 겨울이 오고 있나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