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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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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건망증[2]


BY jerone나나 2001-10-18

전철에서
얼굴에 뽀얗게 분칠을 하고 입술을 새빨갛게 바른 할머니가 황급히 다가와
내 한손을 할머니 두손으로 감싸 잡고 빠른소리로 뭐라뭐라 한다
너무 가까이서 침을 튀겨
내 한손으로 얼굴을 쓱쓱 닦으며 여유있게 할머니를 쳐다봤다

(좀 전에도 어떤 멀쩡한 젊은이가 내게 다가와 구구절절 어려운 사정이야기하며
아기를 사흘이나 굶겨서 죽어간다고 우유값 좀 보태 달래서 외면했는데..
이할머니는 또 왜 이러시나.. 궁시렁궁시렁..)

가스불에 보리차를 올려놓고 잊어먹고 나오셨단다
얼른 내 손전화기 한번만 빌려달라고..

할머니가 전화를 걸어 누군가에게 가스불 잠그라고 이야기하고
내게 5백원짜리 동전을 손에 쥐어준다
할머니 왜이러셔요... 하하하하하
내옆에 앉은 할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달싹거리는 모양이
자신의 경험을 떠올려 참견하고 싶은가보다
보리차 올려논 할머니는 다음 정거장에서 곧 내려버렸다


80년대 초 어느 한 날..
잠실종합운동장 메인스타디움이 생기고 그 안에 수영장이 처음 생겼을 때
자랑스런 1번아줌마 극성아줌마

전날 가까운 잠실 언니네서 밤잠도 설치고 새벽3시 운동장에 달려가 줄서기..
호떡집에 불난 듯 엄청 복잡할줄 알았는데.. 줄은커녕.. 아무도 없었어
혼자 쓸쓸한 가로등아래 몇시간을 보냈던가
6시가 지나서야 콧노래 흥얼거리며 시커멓고 등치 큰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화들짝!' '깜짝!' 얼마나 놀랬다고.. 하하
몇 년전 사직공원 수영장에서 국민학생 몇 명속에 섞여 개인지도 받느라
아푸아푸할 때 바로 그시절 내 개인교수가 아니던가..

그 강사는 또 이곳 강사로 스카웃 되어
그날 새벽 강습생모집 사무보러 새벽출근 중이라니
천만 다행인 것이 난 벌써 2시간 넘도록 밖에서 오들오들 떨며 가로등아래 있었어..
강사와의 뜻하지 않은 반가운 만남으로 난 횡재한 샘이였어
사무실로 따라들어가 따끈한 차도 마시고
오늘 개장하는 국제수준의 초현대식 고급시설을 여기저기 브리핑 받으니
마치 높은사람 같았어.. 하하하
그렇게해서 잠실수영장 개장 1번손님이 된 극성아줌마

날이 날마다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내던 어느 한날..
그날도 배영하느라 옆구리가 아프도록 수영장 물을 마셔
들어갈 때 딱맞던 바지 허리가 나올때는 작아져
지퍼를 올리다말고 꽉눌러 고정시키고
혹시나 지퍼가 터질새라 걸음걸이 조심하면서
사부작사부작 새색시걸음으로 걸어 버스에 올라
졸린눈 꾸벅거리며 눈앞이 가물가물해 후딱 내려보니
이미 집하고는 몇정거장 떨어진 먼곳에..
다시 길건너 버스를 또한번 더타고 집에 여유있게 집에 오니..

좁은아파트 좁은 계단, 입구부터 연기가 자욱해
'이거 웬일..? 암튼 요즘 젊은여자들 살림을 어째하는건지..'
'태워먹기도 잘해.. 거 참 정신을 어디다 팔고 사노.. 쯧~!'

연기는 층계를 올라갈수록 색깔이 더해지며 고소~한 것이
누룽지타는 냄새를 동네방네 피우는 것이였어
3층 내집 문을 여니 뿌연연기가 한꺼번에 쏟아져나와 뒤로 주춤 물러서며
깜짝!화들짝~! 뿅~~@#$%^&!?

아침에 유리주전자에 보리차를 올려놓고
LPG가스 한통 다 떨어지도록 태워먹은 것이다
주전자는 가만있고 속에있는 내용물만 타다 못해 새까만 숯덩이가 톡톡튀는 것이야
클날뻔했어..
저~ 강건너 남의 이야긴줄만 생각했다.. 하하하하하
그시절 독일제 유리약탕기 엄청 튼튼했어
그 사건 후에도 몇 년을 더 쓰다가 찬물에 닿아 깨트렸지 싶다

오늘아침 딸내미가 고구마 썰어넣고 밥해달라는데
아들이 싫다해서 고구마를 다 꺼내 따로 삶는다는 것이
냄비속에 소쿠리 넣고 소쿠리 속에 고구마 담고
그새 컴속에 좀 있다 온다는 것이..
또 깜빡^^

아들이 나와 불을 끈다는 것이..
좀 일찍 끌 것이지 이게뭐야.. 또 숯덩이잖아..
난 지금 숯이 되고 남은 고구마 속에서
노랗게 남은 알갱이를 숟가락으로 파내 먹는다

냠냠쫍쫍.. 헤헤헤

움... 맛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