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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새댁과 시어머니


BY 최현옥 2004-10-31

새댁과 시어머니

최현옥



나이가 들면 사람 마음 자체가 조금은 나약해지고 순수해지는 것 같다.
시골생활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 여자가 시골 남자를 지아비로 정하여 시골 환경 이라고는 처음 접해 본 시골 풍경, 지금부터 19년 전 시집오던 때의 이야기다.
우리 시댁은 지금도 시골이지만 그 땐 정말 말 그대로 시골이었다.
도로포장도 되어 있지 않던 그 시절, 버스는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한 대쯤 오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것이 익숙지 않아 버스 삯보다 훨씬 비싼 낡은 택시를 대절해서 타고 가던 기억이 떠오른다. 덜컹거리며 엉덩방아 찧어대고 달리는 낡은 택시 앞뒤로 뿌연 먼지가 안개처럼 앞 뒤 분간이 어려운 그런 곳이었다.
시골생활에 숙달되지 않은 도시 며느리로써는 난감한 것이 한 가지 두 가지가 아니었다. 뒤가 급해서 ‘화장실’이라 적힌 나무문을 밀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 엄마야!’ 소리를 연발하던 일명 ‘퍼세식 화장실’은 정말 앞이 캄캄했다. 그래도 어쩌랴, 생리적인 현상이 날 그리로 밀어 넣는 것을…. 나무 판 두개 덩그란히 올려져 있는 그 곳에 한 발 한 발 올라서면 다리가 후덜후덜 떨리는 것이 그 때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쭈빗쭈빗 선다.
불편함을 생각하면 부엌도 만만치 않았다.
요즘은 시골도 너무 발전하여 도시 생활과 특별이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지금이야 가스레인지로 밥도 하고 국도 끊이지만 그 시절엔 연탄도 아닌 아궁이에 불을 때며 가마솥에 밥하고 국 끊이고 했었다. 밥을 다 짓고 나면 아궁이 깊은 곳의 불덩이들을 고무래로 끌어내 아궁이 입구로 가져와 그 곳에다 생선을 굽기도 했다. 장작은 가끔 때는 것이고 짚불을 때며 눈이 매워 눈물을 흘리며 ‘이런 곳이 시골 이라는 곳이구나!’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시골의 아침풍경은 참 아름다웠다.
방문을 열면 바로 마당이 있고 마루에 서서 내다보면 집집마다 아침밥을 준비하느라 집집마다 밥 뜸들이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굴뚝에서 나오는 하얀 연기, 이른 새벽부터 들에 나가 일하시는 어르신들 모습…. 정말 한 폭의 그림 같고 동화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어려서부터 시골이라고는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신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당황하면서 지나온 세월이 벌써 19년이나 흘렀다.
고생 모르고 자란 도시 며느리가 아무것도 없는 시골 농촌으로 시집와서 행여 달아나지는 않을까, 다치지는 않을까, 조바심 반 걱정 반으로 친딸보다 며느리를 더욱 챙기셨던 시어머니….
지금은 며느리이기보다 어쩌면 딸보다도 더 가까운 고부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 시어머니 그땐 새색시 같더니 이제는 주름도 많이 생기고 할머니가 다 되어 버렸다. 그렇게 지나버린 세월이 밉다.
시골은 언제나 풍성하다.
반찬거리도 걱정 없다. 소쿠리 하나 들고 시어머니 따라 밭에 가면 그 곳은 바로 채소 시장이다. 어머니의 땀이 곳곳에 고스란히 비료가 되어 싱싱하게 자라나 있는 고추, 깻잎, 가지, 상치, 쌉쌀한 맛이 나는 머위 잎, 옥수수 , 부추, 대파, 잔파, 참외, 방울토마토까지 없는 것이 없다. 이랑 따라 쭉 한 바퀴 돌고 나면 어느새 소쿠리 가득 넘치는 어머니의 미소…. 저녁상이 푸짐하다. 정신없이 먹어대는 아들 며느리 손자들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시며 먹지 않고도 배가 부르다고 하시는 어머니….
어머니 흘린 땀을 맛있다고 연발하며 먹는 모습이 이쁜 지 ‘이런 것도 도시에 가면 다 돈 주고 사 먹제?’ 하시며 챙겨주시는 걸 받다보면 돌아오는 손은 봉지 봉지 손가락에 다 걸 수도 없을 정도로 봉지의 숫자가 자꾸만 늘어만 간다.
돈으로 따지면 몇 천원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것을 어찌 값으로 따질 수 있겠는가?
그것은 시어머니께서 자식에게 자신 있게 건네 줄 수 있는 값진 당신만의 땀방울이기에, 설혹 챙겨 주시는 것 중에 간혹 흠이 있는 것이 들어 있다 할지라도 시어머니께서 주시는 것을 마다해 본적이 없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싸 주신 냉장고 서랍 속 까만 비닐봉지 속에 들어있는 상치며 풋고추를 접시에 담다가 올 여름 햇볕에 시커멓게 그을린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 밥상을 차리다 말고 전화기 앞으로 달려가 꾹꾹 전화번호를 눌렀다.
한참 만에 ‘여보세여’하는 어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어머니 뭐하고 계셨어요. 식사는 하셨어요.”여쭈니
“어야, 내는 방금 밥 묵었다. 너거는 밥 묵었나?” 하신다. 다시 한 번
“어머니”하고 부르니
“와, 뭔 일 있나?” 물으시며 걱정이 먼저 앞서신다.
“아니에요, 어머니! 아무 일 없어요. 혼자 계신다고 아무렇게나 해서 드시지 마시고 장날 가셔서 맛있는 생선이라도 사서 찌개라도 따뜻하게 해서 드세요.” 하고 말씀 드리니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애비하고 에미 너랑 그라고 아이들이나 잘 챙겨 먹어라! 돈 번다고 고생하는데…." 하며 말꼬리를 흐리신다.
언제나 당신보다 자식 걱정 먼저 하시는 그 마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저녁을 먹는 식구들의 숟가락 소리와 상추 쌈 씹는 소리가 아싹 아싹 들린다.
고마우신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