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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리고 회초리


BY 선물 2004-10-18

어린 시절, 집 앞마당에는 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었다. 그 중 과실수였던 석류나무가 특히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짙은 붉은 색 석류열매는 복주머니 모양을 하고 있는데 제대로 익으면 입을 떡하고 벌려준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발그레한 빛 곱게 비치는 투명한 석류 알이 옥수수 알처럼 빼곡하게 박혀있어 앙증맞은 느낌이 들곤 했다. 보기만 해도 절로 침이 고이게 만드는 석류 알은 심심할 때마다 입안에서 톡톡 터지며 새콤달콤한 맛을 선물해 주었다. 그 외의 나무들도 각기 다른 결실들로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하지만, 유독 석류나무가 지나간 기억들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나를 바르게 자라게 한 스승의 역할을 했던 까닭이라 생각된다.

아버지는 회초리가 필요할 때면 주로 부러진 석류나무가지를 이용하셨다. 나무는 그렇게 회초리라는 이름으로 옷 갈아입고 아버지를 통해 우리에게 귀한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올곧게 자라는 나무들처럼 당신의 자녀들도 반듯하게 자라주었으면 하는 아버지의 염원이 거기에 깃들여 있었으리라. 평소에는 비교적 자상한 성품이셨지만 일단 나무랄 일이 생기면 아주 엄한 모습으로 따끔하게 혼을 내시는데 그런 아버지께 나뭇가지는 정말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겁이 많아 자꾸만 감추려들고 거짓말을 하려했던 나에게는 회초리의 기억이 특히 더 많이 남아 있다. 거짓말에 관해서는 어떠한 예외도 없이 회초리를 사용하셨던 아버지의 완고함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런 아버지의 가르침은 종아리 위에 선연하게 남아 있던 회초리 자국만큼이나 또렷하게 내 가슴 깊은 곳에 새겨졌다. 아버지는 드러내놓고 사랑을 표현하시는 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엄하셨던 그 이상으로 깊은 속사랑을 느끼게 하는 기억들도 참으로 많다.

6학년 때, 경주로 수학여행 가던 날의 일이다. 꾸무룩 잔뜩 찌푸린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였다. 잠시 하늘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긴 아버지는 곧 자전거를 꺼내 뒷자리에 나를 태우셨다. 학교까지 바래다주시고 싶은 마음에 흐린 날씨도 아랑곳 않고 자전거를 꺼내신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늘은 후둑후둑 빗방울을 토해내더니 장대비를 쏟아 부었다. 아버지는 준비해 둔 우산을 내게 주셨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우산을 쓰려했지만 아버지는 멀리 떠나는 내가 젖으면 안 된다며 기어이 우산을 마다하셨다. 비에 젖어드는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혼자 우산을 받쳐든 나는 나머지 한 손으로 아버지의 젖은 허리를 뒤에서 감싸안았다. 덕분에 비교적 보송보송한 모습으로 차에 오를 수 있었지만 마음은 그와 달리 비와 함께 촉촉이 젖어들고 있었다. 차창 밖에 비치는 아버지의 흠뻑 젖은 모습이 아련한 아픔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아버지는 가끔 자잘한 애정 표현 이상으로 깊은 사랑을 느끼게 하는 일이 많으셨다. 어디서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사오셨는지 예쁜 목걸이를 내 앞에 불쑥 내미시며 어색해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그 깊은 사랑을 깨닫게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결혼 후에는 더더욱 아버지를 애틋하게 느낄 일이 많았다. 세월과 함께 아버지는 어느덧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셨지만, 그리고 예전의 엄하심은 간 데 없고 오히려 내 마음이 측은지심으로 아버지를 뵐 때가 많아졌지만 그래도 언제나 아버지는 내게 소중한 것을 주시며 나를 가르쳐 주시고 지켜주시는 분이다.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나이기에 회초리에 대한 아픈 기억도 지금은 달디단 고마움으로 새길 수 있는 것이리라. 그렇게 아버지라는 이름의 의미는 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참으로 크고 아늑한 울타리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옛날 우리네가 가졌던 아버지에 대한 경외 심을 찾아보기가 점점 힘들어짐을 느낄 수 있다. 얼마 전 결혼한 여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여덟 살 조카아이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인 자신에게 존대어를 쓴다며 은근슬쩍 자랑을 하는 것이었다. 방학과제로 주어진 것이 부모님께 존대어 쓰기였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아이가 여러모로 의젓해졌다는 것이다. 확실히 요즘 아이들은 존대어를 쓰는 경우가 드물어 보인다. 엄마 아빠라는 호칭은 물론이고 친구에게나 사용할 법한 정도의 낮춤말을 부모에게 내뱉는 경우도 태반이다.

어쩜 말이라는 것이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어떤 말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마음가짐도 달라짐을 생각해 볼 때 말속에는 형식 이상의 보다 중요한 의미가 깃들어있음을 깨닫게 된다. 물론 아버지라는 존칭 속에는 자상함이나 따뜻함보다 어떤 권위의식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엄마라는 이름은 덜 어렵고 덜 무섭고 그래서 때로는 만만한 생각까지 들지만 아버지라는 이름은 그와는 달리 늘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아이들에게도 아버지라는 호칭을 다시 찾아 주고싶다. 그 자리를 대신한 아빠라는 이름이 아무리 가깝고 친근하다 할지라도 정말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그 무언가를 주기에는 왠지 부족하다는 느낌이 자꾸 들기 때문이다.

정말 사랑은 지천으로 넘쳐나는데 오히려 세상은 점점 삭막해지고 있다. 샘솟는 대로 절제 없는 사랑이 퍼부어지는 까닭이다. 생기는 대로 걸러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사랑만이 사랑은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랑은 오히려 사람을 체하게 만들 수도 있다. 비록 살갑고 자잘한 사랑은 아니라 할 지라도 영혼을 바르게 하고 세상에 대한 어려움과 조심성을 갖게 함으로써 예절이 살아 있는 인성을 배우게 하는 그런 훌륭한 사랑이야말로 생명을 생명답게 만드는 거름과 같은 참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흔들리고 있는데, 아이들은 마음 둘 곳 몰라 헤매고 있는데 이들에게 반듯한 중심을 잡아줄 어른들은 사실 점점 사라져 가는 듯한 시절이다. 아버지의 부재, 어른의 부재는 결국 우리 모두를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아버지를 어려워 할 줄 알고 어른들의 가르침에 반발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야 할 것이다.

한 때, 아버지는 회초리라는 이름의 나무로 나를 가르치셨지만 그것은 나약한 나를 지탱해준 훌륭한 거목이 되어주었다. 또한, 지금은 비록 앙상하게 마르고 쇠약해지셨지만 여전히 내겐 든든한 울타리로서 손색이 없으신 분이다. 한결 부드러워지신 눈빛으로 지친 때 기대앉을 수 있는 밑동이 되어주시고, 애틋한 사랑으로 촉촉하게 나를 적셔주심으로써 더운 마음 식힐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신다. 비록 아빠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던 적은 드물었으나 그래도 언제나 아버지는 나의 편이었고 나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으로써 사랑하고 있다.   

엄마와는 또 다른 아버지의 사랑이 빛나는 세상을 그린다. 흔들리는 세상 중심에 아버지가 우뚝 설 수 있다면 좋겠다. 그로 인해 세상도 함께 우뚝 설 수 있기를 또한 진실로 바라는 마음이다. 아빠를 아버지로 만드는 힘. 거기에는 엄마의 힘도 크게 한몫 하리라 생각해본다.